[기고] 금융기관이 알뜰폰사업에 진출하면 안 되는 이유
정부는 지난 4월12일 혁신금융서비스 1호로 지정되었던 KB국민은행의 알뜰폰사업 지정기간을 연장해줬다. 그뿐만 아니라 알뜰폰사업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해 ‘은행법’상의 부수업무로 특례를 부여해줬다. 현재 금융기관은 금산분리와 전업주의 원칙으로 인해 비금융 일반사업인 알뜰폰사업을 영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부의 특례 부여로 KB국민은행이 알뜰폰사업을 부수업무로 신고하고, 금융위원회가 부수업무 공고를 통해 법령을 정비한다면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되어도 금융기관들은 알뜰폰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와 중소알뜰폰사업자들은 정부가 금융기관의 알뜰폰사업 허용정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이 도입된 이후 재벌과 금융권들은 이를 허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기업들의 민원을 수용해 조금씩 완화시켜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을 ‘붉은 깃발법’에 비유하면서 금산분리 원칙을 대폭 완화시켜버렸다. 대표적으로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소유와 재벌·대기업 일반지주회사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보유 허용, 금융기관의 알뜰폰사업 진출 물꼬를 터준 금융규제 샌드박스 도입이었다. 덕분에 KB국민은행의 알뜰폰사업은 문재인 정부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혁신금융서비스 1호로 지정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정부는 출범부터 금산분리 완화를 국정과제에 넣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의 금산분리 완화가 매우 고마웠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 은행법령 개정을 통해 알뜰폰사업과 배달플랫폼 등 비금융사업들을 부수업무에 넣는다면 금융기관의 일반사업 진출 교두보가 완성되는 것이다.
전 정부에서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서인지 최근에는 금산분리 원칙을 허물 때 항상 ‘혁신’이라는 단어를 앞세우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시에도 ‘금융혁신’을 내세웠고, 알뜰폰사업 역시 ‘혁신금융서비스’라며 지정을 해줬다.
그런데 시민의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무슨 혁신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인터넷전문은행, 알뜰폰사업, 배달플랫폼 모두 기존에 해오던 사업 영역으로 새롭거나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한 사업도 아니다. 자본력만 있으면 가능한 사업군이다. 더군다나 인터넷전문은행은 약속했던 저신용자에 대한 중금리대출도 하지 않았고, 이른바 ‘메기효과’도 없었다. 고객 대출 나눠먹기에 불과했다.
은행의 알뜰폰사업 역시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알뜰폰시장의 발전보다는 통신정보와 금융정보의 결합으로 인한 개인정보의 독과점화와 상업화, 대기업 중심의 알뜰폰시장 재편으로 인한 중소사업자의 몰락, 은행의 건전성 리스크만 키울 것이다. 백번 양보해 알뜰폰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면 단순히 자본력이 있는 다른 산업의 진입을 허가해 서비스 경쟁을 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인 원인을 진단해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지금도 알뜰폰시장은 통신3사의 자회사 등으로 인해 중소알뜰폰사업자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력이 막강한 금융자본까지 끌어들인다면 중소알뜰폰사업자들은 설 곳이 없어질 것이다.
금융자본은 위험을 관리하거나 평가하는 측면이 있고, 산업자본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투자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두 개의 산업은 결합할 경우 리스크가 커진다. 이러한 리스크를 방지하고자 금산분리 원칙이 있다. 이런 원칙은 금산복합그룹의 경제력 집중, 금융회사의 건전성 훼손, 금융리스크의 전이, 대주주의 사금고화, 고객과 지배주주 간 이해상충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으로 인한 문제는 이미 동양그룹 사태에서도 잘 드러났었다. 따라서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려 우리 경제의 리스크를 키울 금융기관의 알뜰폰사업 진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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