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89]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맨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2023. 6.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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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차노’라는 이름은 여러 장소를 연상시켜 준다.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사람들이라면 우선 토스카나 지역의 ‘카스텔로 디 베라차노(Castello di Verrazzano)’를 떠올릴 것이다. 피렌체에서 222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와이너리다. 햇볕이 잘 드는 키안티(Chianti) 지역의 언덕에 자리 잡아 13세기부터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루비색에 잘 익은 체리와 산딸기 향이 일품인 산조베제(Sangiovese) 품종의 대표적 브랜드 중 하나로, 라벨에는 이 가문 출신 조반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zano)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Castello di Verrazzano)’ 와이너리. 13세기부터 산지오베제(Sangiovese) 품종의 키안티(Chianti) 와인을 생산하던 곳이다.

베라차노는 16세기 초에 최초로 뉴욕 항만과 북미 대서양 일대를 발견한 탐험가이자 지적 호기심을 지녔던 르네상스맨이었다. 뉴욕의 브루클린과 스태튼아일랜드를 연결하는 ‘베라차노 내로스 교(Verrazzano-Narrows Bridge)’가 바로 이 탐험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다리다. 1964년 다리가 완공되던 날엔 기념우표도 발행되었고,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의 타이틀도 지녔었다. 매년 가을 열리는 뉴욕마라톤도 이 다리 아래에서 출발한다. 뉴욕을 방문하는 이탈리아인들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성지 순례 코스다.

뉴욕의 ‘베라자노 내로스 교(Verrazzano-Narrows Bridge)’. 브루클린과 스태튼아일랜드를 연결하는 다리로 1964년 다리가 완공되던 날엔 기념우표가 발행되고,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의 타이틀도 지녔다.

마지막으로 서울의 청담동에도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베라차노’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카스텔로 디 베라차노’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고 이름을 사용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레스토랑이다. 2002년 문을 열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지한 와인 애호가들을 초대했으며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라벨을 단 다양한 와인이 전시되어있던 2층에 위치한 라이브러리에는 베라차노의 초상화 액자도 걸려 있었다.

청담동 ‘베라짜노’의 라이브러리 공간. 2002년부터 2023년까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와인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던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의 ‘카스텔로 디 베라차노’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고 이름을 사용했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레스토랑이었다

베라차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500년이 되었지만 토스카나 지방부터 뉴욕, 그리고 서울의 청담동까지 세 국가의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이 이탈리아 탐험가의 여정은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계속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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