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89]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맨
‘베라차노’라는 이름은 여러 장소를 연상시켜 준다.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사람들이라면 우선 토스카나 지역의 ‘카스텔로 디 베라차노(Castello di Verrazzano)’를 떠올릴 것이다. 피렌체에서 222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와이너리다. 햇볕이 잘 드는 키안티(Chianti) 지역의 언덕에 자리 잡아 13세기부터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루비색에 잘 익은 체리와 산딸기 향이 일품인 산조베제(Sangiovese) 품종의 대표적 브랜드 중 하나로, 라벨에는 이 가문 출신 조반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zano)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베라차노는 16세기 초에 최초로 뉴욕 항만과 북미 대서양 일대를 발견한 탐험가이자 지적 호기심을 지녔던 르네상스맨이었다. 뉴욕의 브루클린과 스태튼아일랜드를 연결하는 ‘베라차노 내로스 교(Verrazzano-Narrows Bridge)’가 바로 이 탐험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다리다. 1964년 다리가 완공되던 날엔 기념우표도 발행되었고,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의 타이틀도 지녔었다. 매년 가을 열리는 뉴욕마라톤도 이 다리 아래에서 출발한다. 뉴욕을 방문하는 이탈리아인들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성지 순례 코스다.
마지막으로 서울의 청담동에도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베라차노’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카스텔로 디 베라차노’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고 이름을 사용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레스토랑이다. 2002년 문을 열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지한 와인 애호가들을 초대했으며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라벨을 단 다양한 와인이 전시되어있던 2층에 위치한 라이브러리에는 베라차노의 초상화 액자도 걸려 있었다.
베라차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500년이 되었지만 토스카나 지방부터 뉴욕, 그리고 서울의 청담동까지 세 국가의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이 이탈리아 탐험가의 여정은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계속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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