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진보정당’의 정치연합을 기대한다

기자 2023. 6.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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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엎치락뒤치락 뉴스만 쏟아지는 가운데 언제부턴가 ‘진보정당’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은 여의도에서 낯선 이름이 돼버렸다. 민주노동당이 어느 날 당당하게 제도 정치의 한 축으로 존재감을 뽐내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때를 기억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김태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민주노동당은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교육·무상의료 등 진보 의제를 보편화하면서 정치개혁을 추동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같은 담론을 보수정당이 수용할 정도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상가임대차 보호법,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 진보정치의 성과가 지금 무색하다. 진보정당은 우선 조직적으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다. 분열을 거듭하면서 어느 조직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헷갈릴 정도다. 그렇게 나누어져야 할 정체성과 가치의 차이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 물론 이렇게 갈라지고 흩어지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대표하고자 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렇게 찢어져야 할 까닭을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가장 불안을 느끼는 이는 진보정당에 의지하는 민중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이익을 지켜줄 정치세력이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심각한 혼란을 겪는다. 진보정당이 힘을 다 합해도 거대 양당에 괄목상대할 역량이 될까 말까 할 정도인데 저렇게 나누어져 있으니 어느 진보정당을 지지하더라도 자신들을 잘 대표할 것 같지 않다는 무력감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현재의 진보정당들 너무 존재감도 없고 정치 역량도 없고 실천적 어젠다도 안 보이고 유의미한 영향력도 없다.” 진보정치 실천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온 한 원로 정치인이 낙심에 젖어 한 말씀이다. 그런데 진보정당이 자신을 대표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이보다 훨씬 더 참담할 것이다. 자신의 대표자를 갖지 못하는 사회적 존재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보정당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여러 진보 정치세력의 힘을 한곳에 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민중의 이익을 대표할 현실적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책임이다. 진보정당들 사이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할 수 있는 점을 찾아서 힘을 모으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정치평론가는 정치세계에서 다른 점을 찾아내고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것을 즐기는 직업이지만, 정치인은 작은 것이라도 같은 점을 찾아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을 덕목으로 하는 직업이다. 그런 능력이 있어야 훌륭한 정치인이다.

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은 힘을 합쳐서 당면한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종국에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형성해 대응해야 한다. 연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연합에는 여러 가지 수준이 있다.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방식을 모색할 수 있는데,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선거용 단일정당을 구성해 진보정당의 단일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좋긴 하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여러 수준의 정치연합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도모할 때 중요한 것은 다른 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담아내고자 하는 가치는 다양하고 서로 다른 점이 많다. 진보정치에서 노동의 가치가 기본이라고 하지만 젠더, 생태, 기후,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전환기적 가치에 대한 관심사를 모두 담아내야만 한다.

의제의 우선순위 설정이나 전략 설계에 서로 다른 의견들이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직적으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권한의 배분을 무난하게 해내는 것이 연합의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다수결주의가 능사가 아니라 협의를 통한 포용과 배려가 힘이 약한 참가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진보정당의 정치연합 실험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되면 이분법적 양당체제를 넘어서는 온건 다당제의 틀을 구성해 우리나라 정치를 훨씬 더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진보정당 연합은 보수 국민의힘과 리버럴 민주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국 정치가 적극적인 개혁정치의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이익에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충분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진보정당의 정치연합을 이루어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다시 추슬러야 한다.

김태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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