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미션 1, 지하철을 타라!”

임미다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2023. 6.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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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알려 주지 마세요. 다시 해볼게요.”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독서 후 활동을 하다 보면, 아이들한테 자주 듣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하는 아이들의 고심하는 눈빛과 앙다문 입술 모양새를 좋아한다. 어쩌고 있나 들여다볼라치면 검지를 들어 입술 근처에 대고 저만치 가 있으라는 뜻을 전하기도 한다.

책과 관련된 장소를 탐방할 때,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우는 아이들이 스스로 목적지를 향해 가도록 한다. 아이들은 ‘팀별 미션’을 수행하고, ‘우승자’와 ‘탈락자’를 뽑아 시상을 해달라고, ‘우승할 자신 있다’며 호기롭게 시작한다.

세 팀이 잠실역에서 각각 출발해 경복궁역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선생님을 안내해 목적지까지 데려가기’ 임무가 주어졌다. “몇 정거장 뒤 3호선으로 갈아타면 돼요. 잘 따라오세요” 하고 아이들이 앞서간다. 얼마 후 갈아타겠다고 내린 아이들이 그 자리에 서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눈다. 말없이 따라가기로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다음 전철이 들어서고 문이 열리자 아이들은 그대로 같은 노선의 전철을 탄다. 물어보니, 천진한 얼굴로 “갈아타기로 했잖아요”라는 답이 왔다. 정말! 아이들 입장에선 다른 차로 ‘갈아탄 것’이 맞기는 했다. 반대 방향으로 한참 갔다 돌아온 팀이 있었고, ‘경복궁행’을 기다리느라 ‘대화행’ 전철을 여러 번 보내고 온 팀도 있었다. 서울에 처음 와 신촌역을 가겠다고 ‘신촌역행’ 지하철을 두 시간이나 기다리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등장인물 ‘삼천포’는 우리 아이들 사이에도 여러 명 있다. 보호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녔기에 막상 앞서서 해보려니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도 있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처음엔 다른 팀보다 앞서는 것을 목표로 서두르던 아이들은 차츰 차분해지고 과정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굳이 우승자를 가릴 필요도 없다. 책과 박물관의 전시 내용을 머리로 아는 것뿐 아니라 실제의 생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겐 신체 활동이 필요하고, 함께하는 어른에게는 기다림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 가만히 돌아본다.

※ 6월 일사일언은 임미다씨를 포함해 신유진 작가·번역가,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정다정 메타 인스타그램 홍보 상무, 이진혁 출판편집자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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