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풍요로운 땅과 무역路…시리아를 비극으로 내몬 지정학적 저주

입력 2023. 6. 1. 00:26 수정 2023. 6. 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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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지정학적 위험과 시리아
고대 이집트부터 로마·오스만제국까지
오랜 피지배 끝에 1944년 독립했지만
쿠데타·내전으로 국민들은 고통의 삶
지진 계기 국제사회 복귀 길 열렸어도
지정학적 위험 여전해 미래 낙관 못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위치는 변하지 않지만 상황은 변한다. 우리가 최빈국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이 땅에 냉전이라는 아름다운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두 명의 걸출한 리더가 이어달리기를 했기 때문이다. 해서 지정학적 위기 운운은 자신감 결핍이거나 안목 부족이다. 지정학적으로 위험하거나 저주받은 나라들의 공통점이 있다. 먼저 풍요로운 땅이다. 누구나 침을 흘리기에 해당 지역 주민들은 침략과 환란을 끼고 살아야 한다. 풍요로운 땅이 교통의 요충지일 경우 심난(甚難)함은 몇 배가 된다. 딱 찍으라면 시리아다.

중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막 국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시리아에는 남유럽 분위기가 나는 초원지대도 제법 있고 심지어 눈이 내리는 지역도 있다. 지중해와 맞닿는 지역의 풍광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불모의 땅, 전혀 아니다. 풍요로운 곡창지대가 있어 다른 아랍국들에 비해 자원은 다소 빈약하지만 사람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고대에는 이집트,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셀레우코스, 로마, 동로마, 이슬람 제국, 십자군 왕국,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피지배의 역사가 유구하고 점령자의 목록이 긴 것은 시리아가 경제적으로도 얻을 게 많은 동시에 교통 요지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교류하기 위해서는 죽으나 사나 이 땅을 통과해야 하며 특히 주요 도시인 알레포는 유럽과 아나톨리아(튀르키예 동부), 그리고 중동을 연결하는 무역의 핵심지대였다.

시리아 내전의 상징, 옴란 다크니시. 공습으로 무너져내린 건물에서 구출된 뒤 병원 응급차에 앉아 있는 다섯 살 아이는 울지도 않았다.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 살 많은 미국 소년이 옴란을 동생으로 삼겠다며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은 유명하다. 한경DB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벗어난 시리아 아랍 왕국은 1920년 독립을 선언한다. 자기들끼리 기분 한번 내 본 것이었고 얼마 안 가 프랑스 밑으로 들어간다.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고 식민지 포기가 ‘대세’가 되는 바람에 194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허가’받는다. 그러나 잇단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소요사태, 쿠데타로 날을 지새웠고 국정은 표류한다. 1958년 이집트의 나세르는 아랍의 연대를 주장한다. 말 그대로 연대 수준이었는데 시리아는 통 큰 역제안을 한다. 국가 간 연대가 아니라 아예 통합을 요청한 것이다. 아랍연합공화국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불만의 소리도 있었지만 얻을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카이로로 옮겨 온 시리아 관료들은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반면 다마스쿠스로 건너간 이집트 관료들은 시리아 관료들을 밀어내고 요직을 차지했다. 1961년 시리아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시리아 독립을 선언한다. 1970년 드디어 현재 시리아를 지배하는 아사드 집안이 등장한다. 하페즈 아사드 대통령은 무슬림 형제단이 반란을 일으키자 망설이지 않고 1만여 명을 학살한다. 2000년 아사드가 사망하고 그의 둘째 아들 바샤르 아사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된다.

바샤르 아사드가 집권했을 때 국제정세는 불안의 절정이었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가 미국에 테러를 가한다.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져내렸고 펜타곤 옆구리에 구멍이 났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알카에다 지원 혐의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을 지목한다. 지목하고 지목당한 당사자들끼리 싸우면 어디가 덧나나. 미국은 시리아에도 동참을 권유했고 시리아는 거절한다. 미국은 시리아에 경제 제재를 안겨준다. 시리아 경제가 흔들린다. 아래쪽에 있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문제였다. 이미 네 차례 중동전쟁을 통해 원한은 다져둔 지 오래다. 시리아는 레바논의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인 헤즈볼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견제하려 했고, 이렇게 시리아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적이 된다. 국제 사회에서 혼자 살 수는 없다. 고립에 지친 시리아는 이란에 손을 내밀었고 이란은 기꺼이 시리아의 손을 잡아준다. 이란은 이라크와 함께 미국에 ‘악의 양대 축’이다. 시리아의 운명이 최악으로 가는 순간이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시작된다. 튀니지에서 시작돼 아랍과 중동국가로 불씨가 날아간 반정부 시위의 물결은 시리아에서도 타오르기 시작했고 아버지에 이어 이번에는 아들이 자국민을 모질게 짓밟았다. 이슬람 형제 국가라는 이유로 어지간한 만행은 묵인하던 중동 22개국 아랍연맹까지 질려 시리아를 쫓아낸다. 아사드 정권은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으로 연명했다. 지난 2월 발생한 대규모 지진은 시리아에 숨통을 틔워줬다. 시리아에 대한 긴급 지원으로 아사드 정권은 국제 사회와 대화 채널을 복구했고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가 라이벌 이란과 외교를 정상화하면서 사우디와 외교 관계도 회복 중이다. 얼마 전 아랍연맹이 시리아의 복귀를 결정하는 것으로 상황은 2011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나라의 앞날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치도 환경도 그대로여서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인 내전은 또 시작될 것이며 국민들의 삶은 칼날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이런 게 지정학적 위험이자 저주다. 함부로 그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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