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리더십 흔드는 ‘각국도생’

손우성·최서은 기자 2023. 5. 3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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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12개국 정상들, 달러 대신할 지역공동화폐 도입 논의
중동▶ UAE, 이란의 유조선 잇단 나포에 “미국 방관” 항의
유럽▶ EU, 대중국 통상 전선에서 미 강경론에 동조 안 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의 우방들이 흔들리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남미와 중동, 유럽에서 미국과 엇박자를 내는 움직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부는 중동의 ‘탈미국’ 바람을 타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미국에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냈으며, 남미 정상들은 한자리에 모여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서겠다고 천명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인 유럽마저도 대중 전략에서는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친 상황에서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동맹 규합에 힘을 쏟고 있지만, 미국이 세운 줄에서 이탈해 각자도생을 꿈꾸는 ‘블록화’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다.

9년 만에 브라질에서 열린 남미정상회의에 참석한 남미 12개국 정상들은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지역 공동 화폐를 도입하고 공동 에너지 시장을 구축하는 등 미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자고 뜻을 모았다.

브라질 매체 G1 등에 따르면 개최국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개회사에서 “우리는 이념이 우리를 분열시키고 통합 노력을 방해하도록 내버려 뒀다”면서 “우리가 함께 행동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며 지역 통합을 강조했다. 특히 룰라 대통령은 달러 대신 지역 공통 화폐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자고 밝혔다. 취임 전 가칭 ‘수르’(SUR)라는 구체적인 화폐 명칭 구상까지 밝혔던 그는 지난 3월엔 중국과의 무역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 및 브라질 헤알화를 쓰기로 합의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역시 “상황이 변하고 있다”며 위안화 확장 추세에 동참하겠다는 취지의 신호를 보냈다.

가장 상징적인 남미의 ‘탈미국’ 조짐은 이날 정상회의에 참석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존재였다.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던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룰라 대통령의 지원 속에 보란 듯이 국제 무대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 UAE는 지난 4월과 이번달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에서 잇따라 발생한 이란의 유조선 나포 사건과 관련해 미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부는 중동의 ‘탈미국’ 바람이 UAE까지 미치는 모양새다. UAE가 미국에 문제를 제기한 사건은 두 번째 나포다. 나포된 파나마 선박이 출발한 곳이 UAE 두바이이기 때문이다. WSJ는 “전 세계 원유의 3분의 1 이상이 통과하는 페르시아만 안보를 미국이 책임지는 상황에서 UAE는 미 정부가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여기며 분노하고 있다”면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불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UAE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지만, 지난해 예멘 내전에서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은 이후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미국이 예멘 내전에 투입할 전투기 지원을 지연시키자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나흐얀 UAE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미국은 UAE를 달래기 위해 중동을 담당하는 미 해군 5함대를 지난 23일 호르무즈해협에 투입하는 등 경계를 강화했지만 끈끈했던 양국 관계는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이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인 유럽도 대중 전선에서는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통상 담당 고위 당국자들은 이날 스웨덴에 모여 중국 대응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으나 24장 분량의 공동성명 초안에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현재까지 단 두 차례에 그친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회의에 앞서 공동성명 조율 과정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 미국 측은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어조로 미-EU 간 협력방안이 명시되기를 희망했으나 EU가 반대해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EU 내에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을 새로운 대중 전략으로 제시한 이후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프랑스는 미국식 대중 압박 전략에 거리를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U는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EU에서 추출·처리된 전기차 핵심 광물도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핵심광물협정’ 최종 합의 타결을 희망하고 있으나, 이 역시 최종 타결안 확정을 두고 양측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우성·최서은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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