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 명분, 언론 옥죌 도구 됐나

김희진·김혜리 기자 2023. 5. 3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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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국회 압수수색 논란
한동훈 장관 인사청문 자료를
개인정보라며 보호 대상 간주
전문가 “유력인 위해 법 악용”
법 자체에 한계 있단 지적도

경찰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개인정보 유출 건으로 MBC 기자의 주거지와 국회 사무처를 압수수색하고 MBC 보도국을 압수수색하려고 한 것을 두고 개인정보보호법이 입법 취지와 달리 고위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찰의 압수수색은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국회에 제출된 한 장관의 주민등록초본 등 자료가 새어나간 정황이 있다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서 비롯됐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호, 존엄과 가치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다만 제58조 1항4호는 ‘언론, 종교단체, 정당이 각각 취재·보도, 선교, 선거 입후보자 추천 등 고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집·이용하는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다양한 정보보호 의무 등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입법 목적도 중요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고위공직자인 한 장관이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우고, 경찰이 대대적으로 압수수색에 나서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취지에 반하는 법 집행이라고 지적한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1일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부와 기업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개인이 제대로 된 협상이나 합의를 할 수 있도록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며 “도리어 힘이 센 정부가 개인들을 잡으려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인사청문 자료를 경찰이 개인정보보호법의 보호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공직자 검증 기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사청문 자료는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데 기초가 되는 자료로, 관례적으로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자료가 제출되면 언론사는 후보자 검증을 위해 이를 입수해왔다. 물론 고위공직자의 정보를 다루면서 위법한 행위를 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MBC 기자가 자료를 입수한 과정부터 문제 삼는다면 고위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 자체가 어려워진다.

김기중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처리자의 잘못된 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법인데, 검증자료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검증자료를 이용하는 행위를 규율하는 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면서 “오히려 유력 인사의 활동을 보호하려 개인정보보호법을 악용하는 사례”라고 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자체가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비판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제58조에서 언론에는 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지만 면책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거짓이나 부정한 수단,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처리에 관해 동의를 받는 경우’(제59조 1호),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행위’(제59조 2호) 등은 예외적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경찰은 이번 압수수색 때도 개인정보보호법 59조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김희진·김혜리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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