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의대반’ 열풍에서 1020세대의 상처를 읽는다

한겨레 2023. 5. 3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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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한 반에서 공부를 한다면 과연 이것이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 자아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삶을 집중한다는 것은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는 인상보다는 어린아이들을 입시라는 현실에 매몰시켜 그들이 생각하고 꿈꿔야 할 미래에 대한 설렘을 박탈한 채 입시 기계로 만들어가는 잔혹함이 느껴진다.

어린 초등학생에게 의대 진학을 강요하는 사회, 이는 사회적 유대관계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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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연합뉴스

[왜냐면] 양의모 | 교육인 출신 작가

초등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한 반에서 공부를 한다면 과연 이것이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 자아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의대 진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삶을 집중한다는 것은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는 인상보다는 어린아이들을 입시라는 현실에 매몰시켜 그들이 생각하고 꿈꿔야 할 미래에 대한 설렘을 박탈한 채 입시 기계로 만들어가는 잔혹함이 느껴진다. 장 자크 루소는 초등학생의 나이에는 독서조차 삼가라고 했는데, 그들은 모든 가능성을 배제당한 채 강요된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이 1020세대(10·20대)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우리나라의 ‘극단적 선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한때 감소하던 자살률이 최근 4, 5년 동안 다시 증가하고 있다. 고령자 자살률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1020세대의 자살률이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 우리 젊은이들은 과거보다 더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어린 초등학생에게 의대 진학을 강요하는 사회, 이는 사회적 유대관계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게 된 뒤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회적 유대 관계의 급속한 붕괴를 경험하게 됐다. “누구도 믿지 마라. 오직 네 직업과 수입만 바라보고 살아라.”

교실에서 옆에 앉은 친구는 내신 올리는 데 방해되는 적이고, 대학 학우는 취업 경쟁 라이벌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래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직업에 대한 동경심이 극도로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부탁이야. 지혜로운 친구, 날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해.” 1020세대는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단 한 사람이 없어 결국 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있다. 그 뒤에는 물질 만능주의가 야기한 사회적 유대 관계의 파괴로 인해 ‘마음을 지키기 어려워진’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유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은 가난해서도, 병이 들어서도 아니고 고립과 소외로 인한 절망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물질 만능주의로 인한 사회적 유대 관계의 파괴는 뛰어난 스펙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1020세대를 고립과 절망에 빠뜨리고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의대 진학 교실에서 미래의 의사를 꿈꾸는 아이들의 마음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의대 진학에 실패한다면 그로 인한 상실감이 가져올 마음의 상처를 그들이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성경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23절)는 구절이 있다.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고도성장과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우리는 마음의 행복보다 물질적 행복에 치우쳤다. 유명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결코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초등학생들의 의대 진학 열풍과 1020세대의 극단적 선택 증가라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우려하는 사람이 필자 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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