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히로시마 G7보다 더 무거울 뉴델리 G20

2023. 5. 3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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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 셰르파로 참석했다. 셰르파는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을 뜻하며, 히말라야 산악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외교 영역에서 셰르파는 다자간 정상회의 때 정상을 대신해서 협상을 통해 최종 합의를 도출한다. 개최국 셰르파를 중심으로 수시로 소통해 정상회의 전반을 총괄하고, 막바지에는 최종 합의문을 만들고자 수일 동안 협상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위상과 역할이 높아지는 것을 목도하며 성취감과 자부심도 느꼈지만 아직 오를 산이 높고 갈 길이 멀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히말라야 산을 오를 때 체력과 기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등반해서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신의 체력에 맞는 산을 고르고 기상예보를 잘 살펴서 등반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본 체력을 키워야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히로시마 시내를 내려다보며 두 가지 생각에 잠겼다.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원자폭탄에 대해서다. 원자폭탄이 사용된 것은 78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최초이자 아직까지 유일하다. 당시 원자폭탄 개발에서 투하 결정까지의 과정에 관련됐던 많은 사람의 고뇌와 결단이 느껴졌다. 원자폭탄이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킨다는 긍정적 측면과 원자폭탄이 궁극에는 인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 측면 가운데 양자택일해야만 했던 갈등의 무게다.

다른 하나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앞당기고 우리나라의 광복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게 독립을 되찾은 우리나라가 G7 정상회의에 초청돼 히로시마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국제 질서와 개발도상국 지원을 주요 국가들과 논의한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불행했던 우리 역사의 시간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오늘을 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가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역할을 하고 기여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다이내믹한 경제를 만들고 충분히 재정을 확충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글로벌 이슈에서 떠맡을 짐의 무게와 역할에 대해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개도국을 지원하는 재원은 국민총소득의 0.17% 정도다. 유엔이 권고하는 0.7%에는 못 미친다. 당장 지원 규모를 대폭 늘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역량과 가용 재원을 감안해 우리가 잘할 수 있고 또 우리만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과 기여를 만들어내야 한다.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생기는 충격으로 '현타'가 왔다. 셰르파로서 9월 9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의에서 짊어질 짐의 무게와 산의 높이에 현기증이 났다. G20 정상회의에서는 이번 G7 정상회의보다 많은 나라가 참석해 더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그만큼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책을 찾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리고 이번 5월의 히로시마에 비해 9월의 뉴델리는 훨씬 더 무덥고 인파와 차량으로 북적댈 것이 틀림없다. 셰르파로서 이번 G7 정상회의 이상의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그래서 지구촌이 당면한 문제들을 주요 국가와 함께 짊어지고 한 걸음 더 정상에 다가서볼 생각이다.

[송인창 G20 국제협력대사 겸 G20·G7 셰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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