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이들 손잡고 고향 가던 곳”…문 닫는 ‘고양 화정터미널’

박대준 기자 2023. 5. 3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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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나 설날이면 아이들 손 잡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찾았던 곳인데 문을 닫는다니 아쉽내요."

31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버스터미널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텅빈 터미널 대합실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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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고양시민들 추억·만남의 장소…31일 마지막 운행
백석터미널에 밀려 수년간 경영난…시민들 아쉬움 가득
31일 경기 고양시 화정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승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화정버스터미널은 이날을 마지막으로 다음달부터 모든 노선의 운행이 중단된다. /박대준 기자

(고양=뉴스1) 박대준 기자 = “추석이나 설날이면 아이들 손 잡고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찾았던 곳인데 문을 닫는다니 아쉽내요.”

31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버스터미널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텅빈 터미널 대합실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지난 24년간 고양시민들의 발이 되어 준 화정버스터미널의 마지막 영업일이다. 당장 내일, 6월부터는 터미널 관련 모든 시설들이 폐쇄된다.

1층과 2층에 입주한 40여 개 상가 주인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한 식당 업주는 “중심 상가에 떨어져 있어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버스를 기다리다 출발 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찾는 손님들 덕에 그나마 코로나19 시기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며 “인근 중심 상가(로데오거리)에만 손님이 몰리는 상황에서 경쟁력도 떨어져 큰 일”이라고 말했다.

폐쇄된 매표소 앞에서 한 시민이 노선표를 바라보고 있다. 이곳 터미널 매표소와 운영업체 사무실은 문을 닫은 채 키오스크가 발권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박대준 기자

지난 1999년 지하철 3호선 화정역 광장 옆에 문을 연 화정터미널은 그동안 인근 덕양구 주민들은 물론 일산과 멀리 파주지역에서도 찾던 경기 서북부의 대표 여객터미널 중 한 곳이었다.

명절은 물론 주말에는 전국을 연결하는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매표소 앞에는 길게 줄을 서곤 했다.

또한 터미널 주변은 버스 도착시각에 맞춰 마중나온 가족들에 주차한 차량으로 교통정체가 벌어지곤 했다.

유희연씨(48·행신동)는 “결혼 전 혼자 고양시로 이사와 생활할 때 고향이 그리울 때면 한 달에 한 번씩 고향(전주)로 오가기 위해 찾던 곳”이라며 “경쟁의 논리에 밀려 문을 닫는 것 같아 화도 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화정터미널 여객 대기실에는 5~6명의 시민들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도착한 강릉행 버스에는 60대 여성 1명만 탑승했다. 나머지는 더위를 피해 대합실을 찾은 주변 주민들이다.

31일 화정터미널에 도착한 강릉행 버스. 인근 백석동 종합터미널에서 승차한 승객과 이곳 화정터미널 승차 승객 1명을 포함해 승객은 4명에 불과하다. /박대준 기자

최근 몇 년간 기존노선 폐쇄를 거듭하던 화정터미널은 춘천·강릉·전주·충주 등 4개 노선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하루 이용객도 30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매표소 등 운영업체 사무실과 직원들은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대신 이용객은 현장 키오스크나 앱을 이용해 표를 구매하고 있다.

매표소 앞에서 한참 동안 노선표를 보고 있던 한 30대 여성에게 다가온 건물 관리업체 여성이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라고 하자 이 여성은 “아, 몰랐네요”라며 발길을 돌렸다.

화정터미널의 위기는 2012년 인근 일산동구 백석동에 고양종합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사람들이 시설이 더 좋고 노선이 다양한 백석동 터미널로만 몰리면서 승객이 크개 감소,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터미널 운영업체는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결국 지난해 말 운영업체가 면허를 반납, 이에 고양시가 회생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업체를 설득했지만 결국 이날 운행을 마지막으로 모든 운행이 중단됐다.

고양시 관계자는 “업체의 면허 반납이 지난 25일 최종 처리됐다”며 “일부에서 임시정류장이라도 설치해 달라는 요구가 있지만 비슷한 사례의 성남시가 임시정류장을 설치했다가 정차되어 있는 버스로 인해 극심한 교통정체 몸살을 겪고 이로 인한 민원도 심각했던 점을 감안, 화정터미널의 임시정류장 설치는 검토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화정터미널 입구에 걸린 터미널 영업종료를 알리는 현수막. /박대준 기자

한편 건물과 주차장만 남게 될 터미널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비해 워낙 낡은 건물인데다 소유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도 쉽지 않다. 운영업체인 우리기업이 건물 지분의 80%를 갖고 있지만 나머지 20%는 모두 개인들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의견이 쉽게 모아지지 않아 법적 다툼도 벌어질 분위기다.

dj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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