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2027 충청 하계 U대회 왜 파국?

권종오 기자 2023. 5. 3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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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유치에 성공한 2027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하계U대회)가 시작도 하기 전에 파국을 맞게 됐습니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과 오늘(31일)까지 조직위원회 설립을 마치기로 합의했지만, 대한체육회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조직위원회 법인 설립 허가 절차를 마치려면 발기인 전원의 인감 날인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발기인이자 집행위원 가운데 1명인 대한체육회 부회장 A 씨만 인감 날인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사실상 조직위원회 출범을 막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11월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세종시 등 충청권 4개 시도가 공동 유치한 2027 하계 U대회가 조직위 출범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입니다.


충청권 4개 시도는 지난 3월 24일 창립총회를 열어 조직위에 상근 부위원장(이창섭 전 국민체육공단 이사장)과 상근 사무총장(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을 따로 두기로 하고 위촉장까지 수여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별도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사무총장 선임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충청권 4개 시도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거세게 반발한 근거는 2021년 6월 대한체육회와 4개 시도가 체결한 협약서입니다. 이 협약서에 따르면 "개최 도시로 확정된 후 체육회와 협의하여 대회조직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2년 전 협약서에 서명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3개 시도 자치단체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낙선했고 이시종 충북지사는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충청권 4개 시도 자치단체장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입니다. 대한체육회는 "2년 전 협약서는 자치단체장이 개인 자격이 아니라 시장이나 지사 자격으로 서명한 것이어서 비록 자치단체장이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에 따라 체육회 협의 없이 사무총장을 선임한 사실을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반발이 계속되자 4개 시도는 대한체육회와 여러 차례 협상 끝에 상근 부위원장에게 사무총장 업무까지 맡기기로 합의하고 윤강로 사무총장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습니다. 상근 부위원장과 상근 사무총장 2인 체제에서 상근 부위원장 단일 체제로 변경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윤강로 사무총장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공모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선임됐는데 합당한 이유도 없이 그만두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법적 대응을 선언했습니다. 윤강로 사무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청원서까지 제출했습니다. 윤 총장은 이 청원서를 통해 "공정과 상식이 아니라 사적 감정과 부당한 압력으로 일방적으로 해임 통보를 받았다"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을 정조준했습니다.

상황이 악화하자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섰습니다. 법적 검토 결과 이미 위촉장까지 수여한 마당에 특별한 이유 없이 윤강로 총장을 해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원안대로 상근 부위원장, 상근 사무총장 2인 체제를 유지할 것을 충청권 4개 시도에 요청했습니다. 충청권 4개 시도는 문체부의 요청을 수용해 원안, 즉 상근 부위원장과 상근 사무총장 2인 체제로 조직위를 구성하기로 하고 대한체육회를 설득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직 대한체육회 부회장 가운데 1명인 A 씨가 법인 설립 허가를 위한 인감 날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대한체육회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대한체육회는 왜 윤강로 사무총장 선임을 수용하지 않고 있을까요? 단지 체육회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국내 체육계 사정에 정통한 B 씨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윤강로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스포츠외교 전문가이다.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친분도 두텁다. 탁월한 영어 실력을 비롯해 외국어 능력도 출중하고 업무 역량도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체육계 주류 세력으로부터 이른바 '기피 인물'로 평가돼왔다. 그가 왜 '기피 인물'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어찌 됐든 이기홍 회장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윤강로 씨가 윤석열 대통령에 보낸 '사적 감정'이란 것이 바로 이기흥 회장의 자신에 대한 '사적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윤강로 씨가 이 청원서에서 이기흥 회장을 직격하면서 일이 더 크게 돼 현재 이 회장도 물러설 여지가 없게 됐다."

오는 6월 5일 오후 충북 진천선수촌에서는 대한체육회 이사, 시도 체육회장, 국가대표 지도자를 비롯한 100여 명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펼치는데 대한체육회는 모든 과정을 취재진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날 연석회의는 대한체육회와 협의 없이 사무총장 선임을 결정한 4개 시도, 그리고 오락가락 행보를 펼친 문체부에 대한 성토장이 될 전망입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 대회는 2027년 8월에 12일 동안 대전 4개, 충남 12개, 충북 11개, 세종 3개 등 총 30개 경기장에서 분산 개최되는 세계 대학생의 축제입니다. 대회 개막까지 4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충청권으로서는 처음 치르는 국제종합대회여서 축적된 경험도 없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체육회는 현재로서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정부 지원, 즉 국세가 투입되는 대형 이벤트입니다. 모든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주체가 문화체육관광부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문체부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입니다. 합법적으로 선임된 사무총장을 해임할 수는 없습니다. 또 발기인 1명이 인감 날인을 하지 않고 있는데 조직위원회 법인 설립을 승인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과 IOC는 이미 우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제 망신은 이미 당할 대로 당했습니다.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출범도 하기 전에 이렇게 서로 싸운다면 충청권 하계 U대회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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