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116) 콘서트에서 못 썼던 그 이름... H.O.T. 되찾아 온 법무법인 태평양

김지환 기자 2023. 5. 3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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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SM 前대표 “H.O.T. 상표, 내 것” 소송
태평양 “업무상 저작물... SM에 저작권” 주장
이 사건 초석된 1심, 태평양 주장 다수 인용

지난 2018년 MBC의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3′가 변화의 물꼬를 튼 계기였다. 재결합을 선언한 뒤 17년 만에 토토가3에 출연한 H.O.T. 멤버들이 방송 출연을 계기로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연은 같은 해 10월 13·14일 양일간 열릴 예정이었다. 총 티켓 8만여 석이 1분 만에 매진되는 등 긴 세월 동안의 공백을 무색하게 했다. 공연 당일에는 H.O.T. 팬클럽을 상징하는 전설의 ‘흰색 우비’와 각종 응원 도구는 물론, 머리 두건까지 쓰는 등 1997년 ‘흰색 풍선 물결’이 재현됐다.

하지만 티켓과 현수막, 굿즈(goods) 등을 모은 공연 관련 상품 어디에도 H.O.T.는 없었다. 대신 콘서트장에는 H.O.T.의 풀네임인 ‘2018 Forever High-five of Teenager’를 쓴 현수막이 걸렸다. H.O.T.는 High-five Of Teenagers(하이파이브 오브 틴애이져)의 영어 앞글자를 따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H.O.T.가 자신들 이름을 쓸 수 없게 된 것은 2018년 8월 SM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를 지냈던 김경욱씨가 “H.O.T.의 상표권은 내게 있다”며 콘서트 기획사를 상대로 로열티를 요구했고, 이것이 법적 분쟁으로도 번진 탓이다.

H.O.T.를 H.O.T.라 쓸 수 없도록 만들었던 분쟁은 5년여 만인 지난달 18일에야 간신히 길고 긴 막을 내렸다. 결과는 H.O.T. 멤버들의 승리였다. 민·형사상 법적 분쟁을 모두 대리해 승리로 이끌었던 법무법인 태평양의 지식재산권 그룹 소속 박정희(사법연수원 22기)·민인기(32기)·최인경(변호사시험 2회)를 지난 25일 만나봤다.

◇”H.O.T. 상표 내가 등록... 마음대로 못 쓴다”

김씨가 상표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이 출원·등록자였기 때문이다. 이 상표들은 1996년 10월부터 1998년 6월 김씨에 의해 출원·등록됐다. SM엔터 명의가 아닌 당시 SM의 대표이사였던 김씨 개인 명의로 상표들이 특허청에 등록됐다. 장우혁 등 H.O.T. 멤버들은 이 당시 김씨에게 사용을 허락한다는 취지의 동의서를 작성해주기도 했다.

김씨 측과 콘서트 기획사 측 간의 로열티 협의도 진행됐지만, 금액 차이가 워낙 컸던 탓에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콘서트가 예정대로 진행되자 김씨는 민·형사상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해 12월 콘서트 기획사 솔트이노베이션과 장우혁을 상대로 상표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과 H.O.T. 상표를 쓰지 말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 측은 이듬해 1월에는 경찰에 상표법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까지 진행했다. 음악공연업과 음악방송업 등으로 등록한 H.O.T. 서비스표과 도형 로고 1건 등 총 3건을 무단 사용했다는 취지다.

지난 10월 13~14일 열렸던 H.O.T.의 콘서트를 앞두고 입구에 걸린 대형 현수막. 현수막에 ‘H.O.T.’ 대신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High-five Of Teenagers)’라고 쓰여 있다./ 김민정 기자

◇”H.O.T.가 H.O.T.라고 쓰는데 왜 침해입니까”

태평양은 우선 ‘H.O.T가 H.O.T. 상표를 사용하는 것’이란 논리로 상표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상표법 90조 1항 1호는 ‘자기의 성명·명칭 또는 저명한 아호·예명·필명과 약칭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상표에는 상표권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H.O.T. 상표를 등록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떠나 본인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태평양은 김씨가 H.O.T의 저작권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도 펼쳤다. 김씨가 자신이 창작하였다고 주장했던 H.O.T의 그래피티 로고는 지난 1997년 7월 발매된 H.O.T 2집에서 처음 사용됐다. 태평양이 앨범 크레딧 등에 로고의 원래 제작자 이름을 찾았고, 조사 끝에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당시 미국의 한 작가에게 의뢰하여 창작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 태평양은 김씨가 설령 저작자이더라도 해당 로고는 업무상 저작물이기 때문에 회사에 귀속된다고 했다. H.O.T 활동을 위해 만든 업무상 저작물이므로, 설령 그 창작자가 김씨라고 하더라도 회사에 저작권이 있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작권법 9조에 따르면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되는 업무상 저작물의 저작자는 계약 등에 정함이 없을 때 법인 등이 된다.

태평양의 이 같은 주장은 앞선 사건에서의 승소가 바탕이 됐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10월 ‘소녀시대’라는 명칭은 걸그룹 소녀시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는데, 이 판결 또한 태평양이 이끈 바 있다. SM이 2007년 7월 소녀시대라는 그룹을 공개하면서 상표로 등록했는데, 김모씨가 놀이용구 등에 소녀시대 명칭을 사용하겠다며 상표등록을 한 것이다. 특허법원은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대법원은 ‘소비자들의 오인 염려’를 이유로 원심을 파기했다.

◇1심 판결 이전에 사실상 정리됐던 분쟁

태평양은 장우혁과 솔트이노배이션이 피소된 형사사건에서부터 이 같은 주장을 펼쳐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2019년 9월 ‘불기소’를 결정했다. 검찰은 “장우혁 등이 H.O.T. 상표를 사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고소인(김씨)의 상표권 효력이 미치지 않고,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불복한 김씨가 재정신청을 냈지만,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법 형사31부는 2020년 4월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신청인(김씨)의 진술만으로는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설령 신청인의 저작물이더라도 당시 지위에 비춰볼 때 소속 가수의 홍보를 위한 것으로, 업무 범위 내에 이뤄진 것이므로 업무상 저작물에 해당하고, SM 측에 저작권이 있다고 보는 게 상당하다”고 했다.

태평양의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사법 절차를 통해 법원의 판단을 한 차례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2018년 12월에 김씨가 제기한 상표권 침해 소송의 1심은 길어졌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법관 출신 박정희 태평양 변호사는 “서울고법의 판단 자체가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일찍 마무리되길 기다렸는데, 상대방 측에서 절차를 많이 늦췄던 것으로 생각 된다”고 설명했다.

이 소송이 제기될 당시인 2018년 12월 H.O.T. 측은 특허심판원에 김씨가 출원한 상표들에 대해 등록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이때 특허심판원은 6개월여 심리 끝에 H.O.T.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2020년 6월 2심 격인 특허법원은 김씨의 상표 출원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듬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심은 해당 상표들이 무효라고 판단되면서 김씨의 상표권 위반 주장을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상표가 등록무효로 확정됐기 때문에 이 주장을 살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저작권법 위반 주장에 대해서는 태평양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김씨가 이 로고 상표를 창작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이후 항소심을 거쳐, 지난 18일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왼쪽부터 박정희, 민인기, 최인경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태평양 “잘못됐던 관행, 바로 잡아 다행”

이 사건을 주도한 태평양 지식재산권 그룹 소속 민인기 변호사는 “그룹에 대한 상표권을 회사나 그룹 멤버들이 아닌 대표 개인이 보유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라며 “과거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초창기여서 권리관계를 명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쟁이 생겼다”고 했다. 이어 “이런 사건들이 판례로 쌓이면서, 철저한 지식재산권 관리·운영이 필요하다는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약 40명으로 구성된 태평양 지식재산권 그룹은 로펌 시장에서 손꼽히는 강자다. 외국 기업의 국내소송과 국내 기업의 해외소송 사건을 다수 진행하고 있다. 과거 대만 LED(발광 다이오드) 제조업체인 에버라이트와 서울반도체 간의 특허 무효심판에서 에버라이트를 대리해 승리를 이끌었다. 또 셀트리온의 바이오젠 특허 등록무효 소송에서도 셀트리온을 대리해 1·2심 모두 승소 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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