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전도사가 보는 생성형AI의 법조계 영향 [세상을 보는 창]

박희준 2023. 5. 3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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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의 인공지능 챗봇 ‘챗GPT’ 열풍 속에서 그가 생각났다. 8년 전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전자메모 ‘에버노트’의 세계로 이끌어 준 그다. 이어령 교수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쳐 만든 ‘디지로그’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강민구(64)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다. 그는 1988년 판결에 컴퓨터를 활용했을 정도로 정보기술(IT) 흐름에 밝다. 만년필 수기로 판결문을 쓰던 시절 초임지 의정부지원에서 계산기로 며칠 걸리던 교통사고 사망 피해자의 장래 수입 계산표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손쉽게 작성했다.

‘IT(정보기술) 전도사‘로 불리는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지난 22일 법원 사무실에서 생성형 AI(인공지능) 등장으로 인한 법률 시장 변화 등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가 2017년 1월 부산지법원장을 마치면서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은 누적 조회 136만뷰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요즘도 디지털 마인드와 앱 사용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면서 ‘디지로그 명심보감’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최상수 기자
지난 35년간 강 부장판사가 관여한 재판의 판결문은 1만156건. 35년 경력의 판사들이 대체로 6000건 안팎인 것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판결 업무를 하지 않은 7년을 빼면 27년간 매년 380건이니 하루 1건씩 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한 주 3건, 3주간 9건의 판결문을 쓰고 마지막 한 주 쉬어간다는 요즘 판사들 눈에는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은’ 일중독자로 비칠 것이다. 비결은 ‘IT’다. 자주 쓰는 판례와 문구를 상용구로 등록하고 판결원본을 조사해 양형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형량을 산정하는 등 방식으로 일하니 판결문 작성이 빠를 수밖에 없다. 2014년부터는 아예 자판이 아니라 음성인식 엔진을 활용해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달 초 인터뷰 일정을 잡은 이후 그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자료 양이 엄청나다. 수시로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리는 단상 글, 유튜브 ‘디지로그’  동영상 등···. 충실한 인터뷰는 답변보다 좋은 질문이 핵심인 만큼 ‘적절하고 창의적인 질문’을 기대한다는 뜻이었다. 거대한 부담감의 쓰나미가 확 밀려왔다. 그나마 “펜이나 노트북, 아무 것도 없이 오면 된다”는 말이 위안이었다. ‘IT 전도사’답게 인터뷰 내용을 녹음해서 녹취록을 풀고 텍스트 파일로 바로 정리해 줄 테니 좋은 질문만 준비해 오라는 것이다. 

지난 22일 ‘소화불량’ 상태에서 인터뷰를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사무실을 찾았다. 책상 위에는 법률정보시스템과 개인 문서를 띄워 놓은 모니터 5개와 구술로 문서 작성할 때 쓰는 USB 마이크가 눈에 띄었다.

―엄청난 판결문 기록이 워라벨을 중시하는 MZ세대 판사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다. 

“후배 법관들이 제 지난 세월을 보면 일정 부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웰빙과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한 지 꽤 됐고 법관 사회도 이런 흐름에서 동떨어지기 어렵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와 소송대리인, 국민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다. 시스템을 개선해서 법원 내부용으로 ‘생성형 판결작성AI’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생성형 AI 관련 글을 블로그와 유튜브에 자주 올리던데.

“현재 챗GPT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 구글 바드가 전쟁 중이다. 아마존과 페이스북(메타), 일론 머스크의 X.AI 등도 가세 중이고. 국내에서는 네이버를 필두로 카카오, LG, SKT, KT 등이 생성형 AI의 기반인 거대언어모델(LLM)을 자체 구축하고 있다. 세계에서 LLM을 구축한 나라는 미국과 중국, 이스라엘, 한국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법조 영역에도 생성형 AI가 올해 중에 개화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2000여 개 리걸테크(*‘법(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법률 서비스) 회사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법조 분야에서 AI를 막을 수 없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바드가 챗GPT보다 늦게 나오지 않았나.

“지난 2월 구글의 바드 시연에서 제임스웹 천체 망원경 질문에 허블 망원경을 설명하는 대답을 내놓아 세계적 조롱 대상이 된 적 있다. 그 후 구글은 절치부심해 영어 버전을 개선해 3월 영어권을 대상으로 공개하고 지난 11일 한국어와 일본어 등 40여 개국 언어 중심으로 세계 180개국에 공개했다. 3월부터 지난 11일까지 아침마다 바드 한국어 버전을 시험해보고 있다. 유튜브의 ‘디지로그 명심보감’ 시리즈 동영상에 자세하고 올려 놓았다. LLM 기반의 외국 생성형 AI의 진격이 두렵기까지 하다.”

―직접 생성형 AI를 활용하면서 느낀 점이 궁금하다.

“최근 바드를 구동해 이혼 사유를 제시하고 소장을 써보도록 요구하니 거의 완벽한 소장이 여러 형태의 선택지로 나오더라. 가벼운 학교폭력 고소장도 뚝딱 내놓더라. 교통사고를 내고 피해자에게 명함만 내고 현장을 떠났을 때 해야 할 행동 수칙을 물었더니 법률적 답변이 자세하게 나왔다. 빙은 소장 작성을 해주진 않고 일반적 설명만 해 준다. 이제 한글이라는 한국 고유의 방어막 내지 절대반지의 공력이 컴퓨팅 기술에 의해 완전히 녹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 법률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인지.

“국내 법조인이 3만여명이다. 바드와 빙 등의 진격이 걱정이다. 앞으로 간이사건에서 변호사 없이 하는 ‘나홀로 소송’이 급증할 수 있다. 변호사도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인건비와 시간을 크게 절약해 수임료를 저렴하게 받으면서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쓰나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법률송무 시장도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벼운 사건 소장이나 준비서면 작성 등을 인공지능 AI에 다 뺏길 것이다. 우리가 바드나 빙의 진격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엄청난 ‘퍼펙트 스톰’에 맞서 ‘디지로그 명심보감’ 시리즈를 통해 계속 휘슬을 불고 있다.” 

―생성형 AI가 판사의 양형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보는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양형 분야는 아주 쉽게 가능하다.”

―생성형 AI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은가.

“오류 데이터를 학습해 잘못된 답을 제시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은 원리상 수반되는 부작용일 뿐이다. 생성형 AI의 기본원리와 구조에 따른 일종의 업보인데, 그렇다고  지구가 망할 듯 과도하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 정성가득한 수많은 이용자 대중이 이 시간에도 실시간 오류 답안에 대한 피드백을 AI에 주고 있고, 개발회사도 글로벌 질문지를 하루 24시간 모니터링하고 팔로잉하면서 쉼없이 피드백 학습을 시키는 중이다. 머지않아 오류답변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으로 내려갈 것으로 본다.”

―우리 사법체계의 전산화 수준은 어떤가.

“전자소송이 2010년부터 시행되면서 형사사건을 제외하고 모든 사건의 전자기록 PDF를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다. 법관업무통합관리시스템으로 업무를 전부 전자적으로 처리해 매우 효율적이다. 법률정보도 종합법률정보시스템을 통해 판례와 문헌, 판례 정보를 동시에 받고 있다. 사건 관리도 송무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처리하고 있다. 세계 톱3 수준이다. 2020년까지 공표된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민사 분야 계약이행 강제력에서 세계 1위를 했는데, 민사재판에서의 전자소송 등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형사사건 사법 전산화나 국민의 법률 접근성 향상을 위해 판결문 공개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도 일정한 절차에 의해 판결문이 일부 공개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판결문 공개는 선고 후 가장 빠른 시간에 실시간으로 판결문을 국민과 사회에 공개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판결문 전면 공개에 찬성이다. 실명이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처리를 해야 하지만, 익명 처리를 과도하게 하면 판결문이 암호 책처럼 돼버려 공개를 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7년 2월에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에서 판결문 공개에 관한 정책적 검토를 해서 500쪽 넘는 보고서를 만들어 뒀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전면적인 판결문을 공개하는 추세고, 유럽 등에서는 일부 제한해 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이 꼭 필요한데, 판결문 공개에 대한 입법부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판결문이 공개되면 법관들이 좀 더 신중하게 판결에 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 능력도 노출되므로 종국적으로 국민에게 큰 이익이다.”

―재판 노하우와 수필, 학술·논문 자료 등 판사 생활기록을 7종의 5400쪽 분량 전자문서와 영인본 종이책으로 만든 걸로 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각종 핵심 앱을 유효 적절히 활용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유튜브에 노하우를 다 올려뒀다. 에버노트에 올린 자료가 현재 1만8000꼭지다. 참고할 만한 종이 자료는 구글렌즈를 활용해 텍스트로 추출해서 에버노트에 저장한다. 윈도11에서 구동되는 MS의 한글 음성인식 엔진인 코타나를 활용해 말로써 워드에 글을 쓴다. 평소 생각나는 내용을 네이버 클로바노트로 음성인식 녹취록으로 자동처리하고 긴 영상물은 활자로 변환해서 보는 방식으로 학습 시간을 단축한다. 또 토크프리를 쓰면 전자파일을 음성으로 들으며 공부할 수 있다. 엣지 브라우저로 방대한 PDF 전자책을 소리로 듣거나 구글번역 사이트를 활용, 300쪽 미만의 외국 원문 자료를 20초 내 한글로 변환해 보는 것도 노하우다.”

―디지털 시대에 똑똑하게 살아남기 노하우를 소개한다면.

“생각하는 힘인 ‘생각근육’을 키우는 게 핵심이다. 쉼 없는 양질의 독서와 하루 한 줄이라도 적는 글쓰기의 생활화, 명상과 사고실험 생활화, 각계 전문가 고수에게 온·오프라인으로 묻고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잘 쓰는 파워 유저 습관을 만들면 디지로그 내공을 갖춘 고수가 된다. ‘디지로그 명심보감’ 시리즈 1~36부를 5분 전후의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뒀다. 유튜브에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2017년 1월 부산지법원장을 마치면서 한 강연을 올린 것으로, 누적 136만명이 시청했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동영상이 너무 길다는 댓글이 있어 시리즈로 만들었다. 작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큰 열매가 있으리라 본다.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대응하는 데 좋은 길잡이기 되리라 본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요즘 사법불신이 크다. AI가 쉼없는 피드백 학습으로 오류를 줄여가듯 판사도 상식선에 근거한 판결이 중요한 것 같다.

“송백일기(*네이버 블로그 ‘디지털 상록수, 디지털 새마을운동’에 올리는 글) 등을 통해 법관의 자세를 자주 얘기했지만, 법관이 기대어야 할 동아줄은 정치이념, 진영논리가 아니다. 헌법, 헌법정신, 법률, 확립된 판례와 선례, 공평한 정의감, 객관적 양심이 그 동아줄이다. 특히 여론, 국민정서법 운운하는 것에 소신을 무너뜨리면 법관 자질이 없는 것과 같다.(*강 부장판사는 ‘송백일기’에서 미국 육군사관학교 교훈인 ‘의무·명예·조국’을 법관의 자세로 강조한다. 한비자의 ‘법불아귀, 승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 법은 부귀에 아부하지 않고, 줄자는 스스로 굽어 측량하지 않는다)’이라는 말로써, 법관은 판결이 실록처럼 영구히 남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명예와 가치에 누가 되는 행위를 하지 말고 개인적인 이념이나 사상을 판결에 투영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내년 1월 퇴임을 앞두고 그동안 자료를 백업을 했던데.

“그동안 수십 개의 하드드라이버에 흩어진 데이터를 2테라바이트(TB) 내장 SSD에 합체해서 1.5TB로 통합했다. 외장 하드에 백업도 마쳤다. 윈도의 자체 검색 기능도 있지만, everything.exe라는 무료 어플을 PC에 설치해서 방대한 폴더 내 파일을 순식간에 찾는다. 에버노트 앱에 저장된 정보도 앱에 내장된 찾기 기능으로 순간적으로 접근 가능하다.  20만 장이 넘는 자료가 24시간, 365일 제 두뇌에 암기된 것과 같은 효과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보는 업데이트가 중요하지 않는지.

“각종 데이터 정보는 복사를 하더라도 최초 생성 날짜 정보를 기억한다. 각종 폴더 이름을 적절하게 만들어 놓고 검색 앱을 잘 쓰면 업데이트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클라우드 기반 전자메모인 에버노트, 원노트, 구글깊, 노션 앱 등을 사용하면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유지·관리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퇴임 후 어떤 삶을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과분한 격려를 받았다. 세대나 계층, 지역 간에 발생하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싶다. 변호사 사무실을 내더라도 ‘디지털 상록수협회(교실)’을 만들어 필요한 분들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널리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

―이것도 평소 좌우명으로 삼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행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의 실현인 것 같다. 정말 선을 쌓으면 좋은 일이 생길까.

“‘적선지가 필유여경’은 수학이나 과학의 법칙과 같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타인을 돕는 생활을 해 본 경험치가 축적되면 MZ 세대도 분명히 느끼리라 본다.”

박희준 논설위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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