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꼬지마[편집실에서]

2023. 5. 31. 07: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역대급 폭염을 예고하는 전망이 잇따릅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슈퍼 엘니뇨’ 현상 등 기후변화의 사정권 안에 들 것이라는 우려 섞인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각국이 이상가뭄, 기습폭우, 이상고온 현상을 보이는 등 전조가 차고도 넘칩니다. 벌써 이렇게 더운데, 한여름 무더위는 어떻게 날까 싶습니다. 정부의 냉방비, 전기료 인상 움직임까지 맞물려 시름이 깊어만 갑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덩달아 올라가는 게 있습니다. ‘불쾌지수’인데요. 주위를 둘러보면 뭐 하나 속 시원히 돌아가는 게 없는 상황. 평소 같으면 웃으며 넘길 일도 서로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 나아가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무심코 날아드는 ‘지하철 폭행 시비’ 영상 등을 보면 참 아찔한 장면이 많더군요. 코로나19 팬데믹의 종식 선언과 맞물려 비대면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을 살피는 여유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절실하겠지요.

요즘 지하철 승객이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자리가 날 확률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다리 힘을 더 키워야겠다, 다짐하곤 하지요. 운 좋게 자리에 앉아도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다리를 꼬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답니까. 허리 건강에도 안 좋고 무릎 관절에도 안 좋다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너도나도 앞다퉈 다리를 꼬는 걸까요. ‘쩍벌’(지하철 등에서 양쪽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옆자리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까지는 아니어도 옆사람한테 민폐이긴 매한가지입니다. 다행히 쩍벌은 많이 줄었지만, ‘다리 꼬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점점 늘어만 가는 듯합니다.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취객들의 잡담과 승객들의 장시간 통화, 고막을 찢을 듯 큰 소리로 울려퍼지는 지하철 안내방송과 광고의 홍수, 신형 전동차 도입으로 객실 내 선반이 사라지면서 어떻게든 백팩을 메고 서 있어야 하는 현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은 팽팽한 긴장의 연속입니다.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덜컥 다리라도 꼬기 시작하면 아, 정말 초긴장 모드로 전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차량의 덜컹거림에 장단을 맞춰 미세하게 흔들리는 옆사람의 발끝은 언제라도 제게 와서 ‘툭’ 하고 닿을 것만 같습니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다리도 한껏 모으고, 군기 바짝 든 모습으로 자세를 바로잡아 보지만 그럴 때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습니다.

인간관계도 건강하게 오래 가려면 적절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지요. 대중교통 이용자끼리도 서로가 적정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 감수성’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요즘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국회의원·고위공직자들의 ‘이해충돌’만 문제가 아닙니다. 날도 더운데, 다닥다닥 붙어 앉은 지하철 안에서 굳이 서로 물리적 충돌까지 일으켜가며 불필요한 화를 자초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