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장관 “노동개혁 불편하다고 안 하면 미래 없어… 노사 상생 나서야” [세계초대석]

이우승 2023. 5. 3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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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개편 이뤄내야
실제 근로시간 줄이기 위한 제도 개편
추진과정서 국민에 충분한 믿음 못 줘
설문조사 바탕 실효성 있는 방안 강구
법치주의 근간 바로서야
‘노란봉투법’ 투쟁적 관계 조장 가능성
시위·집회도 법 지켜야 권리 보장받아
노사관계 근간 87년 체제 극복이 과제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을 이끌고 있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사대주의자’(사회적 대화 주의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2015년 노사정 대타협의 주역으로,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계 입장을 대변했다. 노동계 잔뼈가 굵은 그가 윤석열정부 첫 고용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노동계에서는 기대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은 미래세대의 일자리,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한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노정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친정인 노동계에서는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이 장관의 개혁안이 노동개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개혁의 첫 단추 격인 근로시간 개편안이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노동계는 거리로 나서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개혁의 동력이 꺾였다는 평가 속에 개각설까지 나왔지만, 이 장관은 윤석열정부 집권 2년 차의 노동개혁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만난 이 장관은 “국민들은 개혁을 원하고 있다”며 “개혁이 불편하다고 하지 않으면 (미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소신을 밝혔다.

―근로시간 개편안 발표 후 노동개혁이 주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근로시간 개편은 주 40시간제(8시간씩 주 5일 근무)를 현장에 안착시켜 실근로시간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국민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충분한 믿음을 드리지 못했다. 주 52시간제 이전의 장시간 근로로 회귀하는 건 아닌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근로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있었다. 분명한 것은 현행 근로시간 제도가 모든 산업과 직종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면서 포괄임금 오·남용과 같은 편법을 낳고 불신과 체념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다양한 업종과 직종, 근로자와 기업의 수요를 고려했을 때 현재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는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유연한 근로시간 운영이 필요한 근로자, 사용자가 선택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보완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

―의견수렴 결과에 따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도 개편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근로시간 단축에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제도 위에서 실근로시간 단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진행 중인 대국민 설문조사 등을 통해 국민과 노사의 의견, 현장의 실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겠다.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결정권을 보장하면서 현장의 악용 우려를 불식시킬 실효성 있는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
―노동개혁에서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법치가 모든 것의 기본이자 뼈대라면, 노사자치는 근육이다. 법치라는 뼈대 없이는 노동시장이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임금체불이나 공짜야근, 직장 내 괴롭힘, 고용세습과 같은 법이 지켜지지 않아 생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노동시장의 약자다. 기존의 법만 제대로 지켜져도 더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지만, 노사를 막론하고 관행이란 이름으로 방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이런 불법 부당행위는 노동시장의 상호불신으로 이어져 법과 제도 개선을 어렵게 한다.”

―최근 노동계 집회·시위와 관련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법은 정부든 노사든 모두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의식과 관행에 맞물려 있다. 우리 노사관계의 특징은 노사 모두 정부 의존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상대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지키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정부가 나서 법을 지키라고 하면 탄압이라고 외친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노동운동을 탄압했을 당시에는 국민이 그런 목소리에 공감했지만, 이제는 법을 지켜야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쟁의행위는 관련법에 따라 목적과 절차, 방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31일 총파업은 목적과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한 축인 노동계 일부에서 어려운 경제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파업과 집회를 계획하는 것에 우려가 크다.”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견을 거듭 밝혔는데.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 노사의 이익 추가, 생산성 격차, 불공정 거래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기인한 것으로 법 조항 몇 개를 바꿔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개정안은 현장에 미칠 영향이나 적합성이 면밀히 검토되지 못했다. (개정안에서처럼) 사용자의 범위를 추상적 개념으로 확대하게 되면 원청은 교섭의 대상과 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현장의 혼란과 갈등이 증가할 수 있다. 또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하고 손해배상 청구까지 제한할 경우 노사관계가 실력행사에 의존하는 투쟁적 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손해배상 소송은 특정 노조에 집중돼 있고, 그 원인이 위력에 의한 사업장 점거인 현실에서 결국 기존 노조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미조직 근로자 보호에는 취약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정부 노동정책이 노동인권감수성과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건설노조 간부의 분신자살로 노동계와의 갈등도 격화되는 양상이다.

“노동개혁은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뿐 아니라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을 위한 과제다. 노조가 만들려는 세상도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도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면 사회적 대화라는 틀에서 양보와 타협을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불법부당한 행위는 양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투명한 회계를 운영하는 것은 국고를 지원받는 기관으로서 당연한 책무다. 기부금의 세액공제를 받는 기관 중 회계공시 의무가 부여되지 않은 곳은 노조가 유일하다.”

―현재 노동개혁은 노사정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 정부 주도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부터 거의 모든 사회적 대화에 참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회적 대화의 배경과 중요성,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사회적 대화도 다층화된 노동환경에 맞게 새로운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노사정 대화만 추진할 것이 아니라 원하청, 전문가, 이해관계자, 국민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현장의 실태를 분석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노사가 이를 논의하는 것도 사회적 대화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지금도 노동개혁 과제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의견 수렴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경사노위 등을 통해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노조와 여러 차례 대화했다.
“노동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MZ세대는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미래세대 주역들이다. 이들이 창의적인 역량과 생산성을 발휘해 기업 성과에 기여해야 경제성장도 가능하다. 이들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일과 삶의 균형, 소통을 중시한다. 또 공정하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선호하고 있다. 임금이나 근로시간도 자신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노동 관련 정책에 대한 의견도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기존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정규직, 생산직 중심으로 노조가 구성돼 MZ세대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Z노조는 새로운 세대와 미조직 취약근로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핵심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내 노조 조직률은 2021년 기준 15% 수준에 그친다. 어떻게 생각하나.

“미조직 근로자나 노동 약자의 권익을 위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이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중앙 단위에서는 경사노위 내 의제별, 계층별 위원회를 운영해 미조직 근로자들이 권익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지원할 것이다. 업종과 지역 단위에서도 미조직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 다양한 형태의 참여를 확대하겠다. 그동안 양대노총이 독점적으로 참여해 온 각종 정부위원회에도 청년과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 등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게 개선할 계획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961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 경영학 석·박사 ●한국노총 기획조정국장·정책연구실 연구위원 ●노사관계개혁위 전문위원 ●노사정위 전문위원·근로자위원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건설교통부 장관정책보좌관 ●고용부 경기지방노동위 상임위원 ●한국노총 사무1처장·정책본부장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 ●경사노위 세대간상생위 근로자위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사무처장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한국기술교육대 인력개발학 초빙교수 ●제9대 고용부 장관(現)

대담=이우승 사회부장, 정리=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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