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의과학자 빈국 한국…국내 1위가 세계 3천315위"

김길원 2023. 5. 31.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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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위는 세계 7위…"바이오헬스 산업 성공은 의과학자 양성에 달려"
한국의 의과학자 순위 [출처=리서치닷컴]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요즘 대한민국 정부의 화두 중 하나는 '의사과학자'(MD-ph.D, 이하 의과학자) 양성이다. 의과학자는 말 그대로 의사이면서 기초와 임상의 가교 구실을 하는 과학자를 일컫는다. 기초과학에서 나온 연구 성과를 실제 환자 치료와 의약품·의료기기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들의 주요 역할이다.

각종 자료를 보면, 미국 의과대학의 경우 한해 졸업생 4만5천명 중 3.7%에 해당하는 1천700명이 의과학자로 육성된다. 하지만, 국내는 의대 졸업생 중 의과학자가 1%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미국이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의과학자 양성프로그램(MSTP, 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을 운영하면서 매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왔지만, 국내는 의과학자 양성에 관심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분석 결과가 공개됐다.

미국의 비영리 학술 플랫폼인 리서치닷컴(Research.com)이 최근 발표한 '2023년 전세계 의과학자(Best Medicine Scientists) 순위'에 따르면 국내 의과학자 1위는 서울대 의대에 재직하다가 2020년 정년 퇴임한 방영주 전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현 방앤옥 컨설팅 대표)가 꼽혔다.

방 전 교수는 항암치료 및 연구 분야 권위자로, 지난해 글로벌 학술 정보 분석 업체 클래리베이트(Clarivate Plc)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어 강영호(2위·서울의대), 김동완(3위·서울의대), 김동현(4위·경희대), 김효수(5위·서울의대) 등의 순이었다.

리서치닷컴 측은 기자와의 교신에서 이번 조사가 분석 대상 분야의 논문 및 인용지수, 출판물 수, 학술상 수상 경력 등을 종합해 자체 개발한 'D-인덱스(Discipline H-index) 메트릭'에 기반했다고 밝혔다. 연구 생산성과 영향력, 해당 분야에 대한 기여도 등을 지수화함으로써 순위를 매겼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국내 1위 의과학자의 전세계 순위는 어떨까.

확인 결과, 방 전 교수의 전세계 순위는 3천315위였다. D-인덱스로는 109점으로 전세계 1위인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월터 윌렛(Walter C. Willett) 교수의 398점과 큰 차이를 보였다. 점수 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국내 1위와 세계 1위의 격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대에서 역학을 전공한 윌렛 교수는 생활 습관이 주요 질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평생 연구함으로써 세계인의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번 평가에서는 이웃 일본이 의과학자 순위에서 한국을 훨씬 앞지르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일본의 의과학자 순위 1위는 시즈오 아키라(Shizuo Akira) 오사카대학 교수가 꼽혔다. 오사카 의과대학을 졸업한 아키라 교수는 그동안의 기초 연구를 통해 선천성 면역 체계를 규명한 공로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키라 교수의 전세계 의과학자 순위는 7위였다. 일본 1위가 세계 10위안에 드는 셈이다.

더욱이 일본의 경우 국내 1위보다 앞선 자리에 63명이 자리할 정도로 의과학자 양성에서 한국을 크게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최근 정부는 의과대학 소속 의사와 이공계 분야 연구자 간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를 선정하는 등 의과학자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정된 센터별로 의과학자가 연구할 수 있는 실험실 공간을 확보하고 충분한 연구 시간을 보장함으로써 차세대 신의료기술 및 신약 등이 개발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의과학자 양성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늦었지만, 모두 환영할만한 일이다. 국내 의과학자 육성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의과학자가 제대로 된 직업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의과학자의 아이디어가 실제 연구로 이어지고, 이후 창업 또는 기술 사업화 등의 형태로 의료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그동안 의과대학을 나온 인재들이 의과학 분야를 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연구 여건이나 적은 봉급보다 학위를 마치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정부 정책의 변화만으로 매년 수천 명의 의과학자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미국 국립보건원과 질병통제예방센터를 당장 따라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국내 의과대학 내 기초의학교실 교수 및 전공자 385명 중 70%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는 설문조사(2021년) 결과는 아직은 의과학자 양성에 '희망'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고무적이다.

코로나19가 한국을 강타한 지난 3년. 모든 국민이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정작 우리는 백신도, 치료제도 크게 늦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선진국의 신약 기술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고, 국내 의과학자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런 감염병은 다시 한국을 덮칠 것이다. 그때 국민을 지킬 수 있는 백신이나 치료제를 다른 나라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더욱이 정부가 제2의 반도체로 비유한 바이오헬스 산업의 성공은 의과학자 양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서치닷컴이 내놓은 이번 분석 결과를 곰곰이 곱씹어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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