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 속 20대女 시신…돈 빼간 '빨간 모자' 무죄, 21년째 범인이 없다[뉴스속오늘]
한일 월드컵 막이 오르던 2002년 5월31일, 한 여성 시신이 부산 낙동강 하구에서 발견됐다. 검은 비닐봉지에 6번, 마대에 2번 싸인 모습이었다. 청테이프로 결박당한 채 흉기에 무려 40군데나 찔린 흔적이 남았다. 피해 여성은 부산 사상구 태양다방에서 일하던 종업원 A씨(당시 22). 발견 열흘 전인 21일 밤 10시에 다방을 나서 11시쯤 지인과 나눈 통화가 그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당시 경찰은 실종 바로 다음 날 붉은 모자를 쓴 한 남성이 A씨 계좌에서 돈을 뽑아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은행 폐쇄회로(CC)TV에 그 장면이 담겼다. 그러나 공개수배에도 남성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다. 공소시효인 15년을 앞두고 법이 바뀌었다.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
이에 부산경찰청은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다시 수사에 나섰다. 15년 전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성을 붙잡았다. 목격자 증언도 받았다. 남성을 법정에도 세웠다. 해결 국면에 접어드나 싶었던 이 사건은 2019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법원이 그에게 무죄를 확정하면서다.
양모씨(당시 31)는 사건 초기부터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다. 실종 다음 날, 붉은색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양모씨가 한 은행을 찾아 A씨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가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 창구에서 현금 296만원 잔액 모두를 찾았다.
경찰이 양씨의 신원 파악에 주력하는 동안 A씨의 돈을 노리는 인물이 또 포착됐다. 다방과 멀리 떨어진 은행에서 여성 두 명이 돈을 인출해갔다. 두 여성은 A씨의 신분증을 내밀며 통장 비밀번호를 바꾸고 적금통장에서 돈 500만원을 찾았다.
경찰이 이 사건을 꺼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자 열흘 만에 'CCTV 속 여성 가운데 한 명을 안다'는 결정적인 제보도 등장했다.
수사팀은 2년간 수사 끝에 2017년 유력한 용의자 양씨 검거에 성공했다. 돈을 인출한 여성 2명을 고용한 인물도 양씨인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앞서 청소년 성매매 알선과 부녀자 강도 강간으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양씨는 경찰에 체포되면서 "영장이 있느냐"고 묻는 등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이 압수한 스마트폰에서는 '살인공소시효' '살인공소시효 폐지' 등을 검색했던 기록이 나왔다. 사건 당시 양씨가 몰던 차량을 중고로 구매한 사람에게서 "의자에 혈흔 같은 붉은 얼룩이 있어 기분 나빴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경찰은 그를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19년 1월 대법원은 중대 범죄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한 치의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 2심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결정적인 단서는 사건 당시 양씨 동거녀의 진술이었다. 2002년 5월쯤 양씨와 함께 둥글고 물컹한 느낌이 있는 물체가 담긴 마대를 함께 옮겼는데 무서워서 어떤 물건이냐고 물어보지 못했다는 자백이었다.
반면 양씨는 최후진술에서 "사람을 살해하지 않았고 피해자와 연관도 없다. 길에서 우연히 가방을 주웠고 또 우연히 통장 비밀번호를 맞췄다"며 "제2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고 말했다.
부산고법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으나 유죄를 증명할 간접증거는 없다"며 "동거녀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고 수사기관 정보를 자신의 기억으로 재구성했을 가능성이 있어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원심이 선고한 무죄를 확정했다. 일사부재리의 효력을 지닌 판결이어서 양씨가 자백하더라도,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더라도 양씨는 무죄다.
당시 부산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 관계자는 "증거 인정을 이렇게 엄격하게 하면 장기 미제사건 용의자를 잡기는 점점 더 어렵다"이라며 "다른 미제사건의 용의자들이 이번 판결을 보고 무죄로 풀려나는 방법을 터득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했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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