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예쁜 디자인에 대한 갈망…“농촌에도 일감 넘쳐요”

지유리 2023. 5. 3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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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바꾸는 로컬크리에이터] (1) 지역색 담긴 굿즈 제작하는 정유영씨 <경북 영천>
설화 속 동물을 ‘영천프렌즈’ 캐릭터로
SNS서 인기 끌며 지역홍보 역할 톡톡
특산품 로고·포장재 작업 의뢰도 봇물
서울 직장생활 번아웃 느껴 귀향 결심
풍성한 고향 콘텐츠 덕에 재능 꽃피워
경북 영천 ‘정 반장’으로 활약하는 로컬크리에이터 정유영씨.

지방소멸 시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있다. 지역 고유의 자원·역사·문화 토대 위에서 자신만의 꿈을 펼치는 ‘로컬크리에이터(Local creator)’들이다. 이들은 농부·작가·여행기획자·요리사·음악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지역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지칠 줄 모르는 도전으로 우리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의 활동 현장을 함께 찾아가본다.

정씨가 만든 굿즈들. 온라인에서 판매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영천 설화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캐릭터 ‘영천프렌즈’.

경북 영천에서 디자인회사 ‘만복기획’을 운영하는 정유영씨(36)는 직함이 여러개다. 디자이너, 마켓 기획자, 청년 활동가. 이웃 어르신들은 그를 ‘정 반장’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을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무슨 일이든 기어코 해낸다. 요즘 그의 이름 앞에 가장 자주 붙는 직함은 ‘로컬크리에이터’다.

정씨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번아웃을 겪고 2015년 내려왔다. 어릴 적 꿈꿨던 문구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고 창업할 지역을 찾다가 고향인 영천을 떠올렸다. 경쟁할 만한 디자이너나 소품가게가 없으니 잘만 하면 성공하겠다 싶었다.

“영천엔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흥미로운 설화나 도시민은 모르는 숨은 여행지도 있고요. 이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이 바로 굿즈(기념상품)예요. 영천만의 개성을 담은 캐릭터나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거죠. 이곳을 잘 알고 디자인 능력을 갖춘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지금껏 정씨가 만든 상품과 디자인의 주제는 모두 영천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천프렌즈’라는 캐릭터다. 설화를 모티브로 삼아 화북면 별빛마을에 사는 댕견·수달·삽살개·뱁새·호랑이 캐릭터를 개발했다. 영천프렌즈는 굿즈로도 제작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며 팔려나가 ‘영천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산품인 복숭아와 포도, 별 보기 좋은 영천 밤하늘도 그의 손을 거쳐 근사한 일러스트로 변신했다.

지역 농가와 협업도 이어진다.

“주변에서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일을 많이 맡기세요. 요즘은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판매하잖아요. 젊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감각적인 상품 로고나 포장재가 필요하죠. 시골 어르신은 디자인에 신경 안 쓸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오히려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요.”

도시에선 창업 5년차 생존율이 30% 안팎이라고 한다. 2018년 문을 연 만복기획은 해마다 성장 중이다. 이젠 직원 4명을 둔 어엿한 중소기업이다.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데는 시골 인심이 컸다. “청년이 잘돼야 지역이 산다”며 이웃 어르신들이 알음알음 일감을 찾아줬고 일이 바쁠 때는 손을 보태기도 했다. 영천 굿즈도 지역 어르신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만들 수 없었다.

정씨는 자신이 받은 만큼 주변에 ‘영천 인심’을 나눠주는 역할을 하고 싶단다. ‘청년고리 로컬마켓’을 여는 이유다. 45세 이하 로컬크리에이터를 모아 동사무소 마당 등을 돌며 장터를 연다. 직접 재배하고 만든 농산물·가공식품·공예품 등을 파는 청년을 한자리에 모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판로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청년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획했는데 오히려 어르신들이 더 좋아했다. 마켓에 구경 나온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오랜만에 놀 곳이 생겼다고 반가워했다. 뜨거운 반응 덕분에 마켓은 3년째 순항 중이다. 올해는 6월 중순에 열릴 예정이다.

만복기획이라는 물꼬가 트이자 청년이 연이어 들어오며 지역에 활기가 돈다. 청년고리 로컬마켓에 등록한 로컬크리에이터가 벌써 70팀이 넘는다.

“영천이 없었다면 만복기획도 없었을 거예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콘텐츠가 무궁무진한데 그걸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요. 계속 굿즈를 만들고 전시·행사도 열어 영천이 얼마나 재밌고 살 만한 곳인지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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