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고래 싸움에 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눈치경영 할 수밖에"

안하늘 입력 2023. 5. 3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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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생태계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불똥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튀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내년 미국 대선도 남아있고 시진핑 체제도 완벽히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두 나라의 갈등은 완화되길 기대하긴 어렵다"며 "중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경영 계획을 짜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줄이고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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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마이크론 규제 이후 삼성·하이닉스 곤란한 처지
반사이익 예상되지만 미 "중국에 팔지 마"
중국도 나름대로 한국에 손 내밀기
2014년 완공돼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 중인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미중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것 같아 큰 문제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

세계 반도체 생태계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불똥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튀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양국은 두 기업을 사이에 두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는 줄다리기를 하는데 사이에 낀 기업들은 어느 쪽도 쉽게 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전자 전체 매출 중 중국의 비중은 18.8%(7조9,153억 원)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회사 전체 매출의 30.4%(1조5,461억 원)를 중국에서 벌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침체 등으로 양 사 모두 지난해 1분기 대비 7.4%포인트, 1%포인트씩 매출 비중이 줄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함께 최대 시장으로 꼽힌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경우 시안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각각 낸드플래시와 D램을 생산하고 있어 그 중요성은 크다. 해당 지역에서 만든 제품은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정보기술(IT) 업체에 판매된다.

반면 미국은 반도체 장비, 설계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한 국가다. 반도체 제조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미국의 장비에 기대고 있다. 미국은 이를 무기로 두 회사의 중국 공장 생산 능력을 제한하는 규제 수준을 정하고 있다.


"미국, 중국 어느 곳도 선택 못하는 입장"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평택=서재훈 기자

양국은 최근 신경전을 벌이면서까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21일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제품에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며 현지 기업에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금지한 이후 양사의 처지는 더 난감해졌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개사의 독과점 체제인 만큼 마이크론을 규제할 경우 현지 기업의 선택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밖에 없다. 이에 따른 반사이익이 기대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지난주(22~26일) 각각 8.7%, 14.9%씩 올랐다.

이러자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최근 한국에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곧바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만난 뒤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의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무적 판단까지 해야 하는 상황…"소극적 경영할 수밖에"

게티이미지뱅크

업계에선 당장 중국 업체들이 마이크론을 통해 공급받던 반도체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주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 스마트폰 수요가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고 IT기업들은 재고를 상당히 쌓아두고 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언제든 반도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만큼 선택을 유예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특히 반도체가 더 이상 특정 제품이 아닌 국가 안보를 결정하는 핵심 품목으로 꼽히면서 국제 정치 속 정무적 판단까지 필요한 실정이다. 최근 중국 내 주요 지역에서 네이버 접속이 차단된 것을 두고 중국 정부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분석도 나왔다.

기업들은 정부가 나서서 두 나라 갈등을 중재하길 기대하는 상황이나 정부도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불확실성은 커지고 기업들은 경영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내년 미국 대선도 남아있고 시진핑 체제도 완벽히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두 나라의 갈등은 완화되길 기대하긴 어렵다"며 "중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경영 계획을 짜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줄이고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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