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그, 그것, 그들…다르게 읽히는 ‘대명사’

김미경 입력 2023. 5. 3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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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명사인가.

'그곳'이라는 제목의 시 3편을 비롯해 그것들(6편), 그것(16편), 이것(1편), 그들(9편), 그(9편), 우리(9편), 너(4편), 나(1편) 전부 대명사들이다.

그는 "'그것'이 '그들'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대명사로 바꾼다면 불친절하지만 접근을 조금 더 투명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수께끼 내듯 제목을 정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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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의 대명사
오은|156쪽|문학과지성사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왜 대명사인가. 58편이 실린 시집 속 제목은 딱 9개다. ‘그곳’이라는 제목의 시 3편을 비롯해 그것들(6편), 그것(16편), 이것(1편), 그들(9편), 그(9편), 우리(9편), 너(4편), 나(1편) 전부 대명사들이다. 대명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대신 나타내는 말 또는 그런 말들을 지칭하는 품사를 말한다.

오은(41)의 여섯 번째 시집은 ‘그’ 놀이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2018, 아침달)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그는 ‘그곳’, ‘그것들’, ‘그것’들을 호명하고 ‘그’, ‘우리’, ‘너’, ‘나’를 불러낸다.

시인에 따르면 제목은 시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지만, 시를 가둘 수도 있다는 것. 그는 “‘그것’이 ‘그들’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대명사로 바꾼다면 불친절하지만 접근을 조금 더 투명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수께끼 내듯 제목을 정했다고 했다.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시선을 따라 ‘그것’이 ‘있었던’ 자리에 머물다가, 불시에 찾아든 감정들에 펄럭거리게 된다. 시집의 해설을 쓴 오연경 평론가에 따르면 “‘그것’이라는 텅 빈 대명사 하나를 던져놓고 신나게 변죽을 울려 우리로 하여금 꽉 찬 의미를 낚아 올리게”한 다음 “‘그곳’에 데려다 놓”는 것이 바로 오은이 시를 쓰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온다 간다 말없이 와서/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을 붙드는,/ 손을 뻗으니 온데간데없는”(‘그것’ 37쪽). “사람은 고유명사로 태어나 보통명사로 살아간다/ 제 이름을 대신하는 명사로 분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분해서 허허 웃어버렸다”(‘그’ 98쪽). 독자의 ‘그’, 혹은 ‘그것’은 다 다르게 읽힌다.

시인은 ‘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로 상실하고 상처받은 이들의 속사정이다. 잃어버리고, 지금-여기 없는 것들을 시인은 대명사로 불러들인다. ‘없다’와 ‘있었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그러니까, 슬픔이다.

오 평론가는 “다짜고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듣는 이를 이야기의 당사자로 호출하는 일”이라면서 “시집은 무수한 ‘그것’과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고 거기에 독자를 연루시킨다. 시인의 대명사는 잃어버린 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있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가 ‘없다’라는 단어에서 ‘있었다’를 목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미경 (mid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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