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 없는 극도의 내향인… 난 오늘도 ‘혼자力’으로 쓴다

곽아람 기자 2023. 5. 3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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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라이터] [8] 20만부 베스트셀러 저자, 김영민 서울대 교수
첫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펼쳐든 김영민 교수. ‘안면 식별이 가능하지 않은 사진을 찍어달라’는 그의 요청에 따라 옆모습을 촬영했다. /이태경기자

사진 기자가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김영민(57)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인터뷰 한 번 할 때마다 한 달치 사회성을 다 써버리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좀 더 웃는 게 좋겠다’는 주문엔 “사람에겐 하루의 웃음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도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그는 ‘극 I’, 즉 ‘극도로 내향적’이다. 신문에 인터뷰 사진이 실리는 것도 부담스럽다며 안면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일상이 방해받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얼핏 까다로운 캐릭터 같지만 김영민은 ‘내향인의 혼자력’에서 쓰는 힘이 나온다고 했다. 2018년 9월 한 일간지에 한국인의 명절을 고찰하며 쓴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석 달 후 낸 첫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8만3000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공부란 무엇인가’(2020·5만2000부),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2021·1만7000부),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2022·3만부) 등으로 누적 20만부가량 팔리며 저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학자인데 칼럼으로만 화제가 돼 아쉽지 않냐” 물었더니 “학술서도 많이 읽힌다. 2021년 나온 ‘중국정치사상사’도 3쇄를 찍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영민 교수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루틴(규칙적인 일상)’이라고 했다. “좋은 루틴이 결국 좋은 글로 이어진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려면 글 쓰는데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져야 한다.” ‘글 쓰는 이에게 적합한 라이프스타일이란 무엇인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글을 쓰거나 읽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혼자 있을 때 하는 일이다. 그 사실이 내게는 매력적이다. 아마도 내향인이라 그런 것 같다. 그 행위는 혼자 해야 잘되는 작업인 동시에 결코 세계와 단절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상상하고 연결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책을 낸 것이 계기가 되어 사회의 많은 지점, 새로운 사람들과 접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 달치 사회성’을 다 써버리고 나면 다시 방으로 들어가 혼자 읽고 쓰는 거다.”

서울대학교 김영민 교수가 책으로 얼굴 반쪽을 가리고 있다. /이태경 기자

그의 글이 대중을 매혹시키는 이유 중 하나는 학자의 글은 ‘엄근진(엄격·근엄·진지)’할 거라는 통념을 뒤집고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위트다.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위트의 비결을 묻자 김영민은 “직업 덕분”이라 답했다.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선생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강의할 때 위트와 같은 요소가 있으면 학생들이 집중을 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위트가 있다면 상당 부분은 직업적인 것에서 온 것일 거다. 세상을 살다 보면 괴로운 일이 너무 많으니 그걸 벗어나기 위해 힘든 상황을 비트는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기도 할 테고.”

저서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좋은 글의 요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훈련의 필요성을 거듭 이야기한다. 김영민은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논술문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많은 이들이 ‘내 생각이 훌륭하니 당연히 사람들이 읽고 받아들이겠지’ 생각하는데 좋은 글을 쓰기에 충분한 자세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좋은 글이란 글을 읽고 얻게 되는 정보나 결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독자들이 읽는 과정 자체를 향유할 만해야 좋은 글인 것 같다.”

‘당신이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좋은 글’에 대한 그의 철학과 상통한다. “단순히 사람들이 반응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글을 쓰고 싶다. 글 자체가 가진 힘으로 재미있게 읽고 나서 100% 이해한 것 같지 않아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이 흔히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는데 정답은 아니다. 너무 쉬우면 다시 읽고 싶지 않고, 어렵기만 하면 읽는 과정을 즐길 수 없다.”

[김영민이 말하는 ‘나의 글쓰기’]

나만의 글쓰기 훈련법

고등학교 때 국공립도서관 독서 모임에서 학생들끼리 매주 책 한 권씩 읽고 토론했다.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유학 시절 좋은 첨삭자에게 굉장히 꼼꼼한 평을 받아본 경험도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글쓰기 모델로 삼는 작가나 책은?

딱히 없다. 다만 항상 문학이든 만화든 뭔가를 닥치는 대로 읽는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웹툰은 ‘앵무살수’라는 무협 만화다. 무술 초짜가 절대강자에게 도전한다는 무협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그림체, 대사, 캐릭터 구축 등 종합적 요소에서 기존 작품들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준다.

앞으로 쓰고 싶은 책

한국정치사상사를 쓰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그리고 읽기에 대한 안내서를 써 보고 싶다. 사람들이 쓰는 건 어렵고 읽는 건 다 할 줄 안다 생각하지만 제대로 읽으려면 고도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읽는 행위는 자기 기분의 땔감이나 불쏘시개 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읽는 행위란 단순히 외부의 아이디어나 정보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머릿속에 있는 어떤 것과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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