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팬덤에 목숨 걸지 말라
출판물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가장 계약하고 싶은 작가는 누구일까. 글을 잘 쓰는 사람? 그런 건 객관적으로 판단할 척도가 없다. 글을 많이 쓰는 사람? 책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다작은 꼭 미덕이 아니다.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 중요한 판단 기준이지만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는 힘들다. 정답은, 팬덤이 형성된 작가다. 써내는 글이 무엇이든 고정적인 판매가 보장되는 작가가 좋다. 책은 한번 인쇄하고 나면 제작비를 회수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판매에 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팬덤의 힘을 한 번 맛본 뒤에는 도전적인 시도나 참신한 기획을 내놓기 힘들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팬덤이 문화의 영역을 탈출한 것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다. 정치·사회 각 영역에서 팬덤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가능해진다. 가장 힘이 센 정치인은 누구일까. 정치를 잘하는 사람? 그런 건 객관적으로 판단할 척도가 없다. 법안을 많이 내는 사람? 의원 발의 법안 통과율이 30%를 밑도는 현실에서 큰 의미가 없다. 이 정답 또한 팬덤이 형성된 정치인이다. 팬은 이제 메시지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메시지를 확산하는 스피커가 되었다. 정치인들이 팬덤에 목숨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팬덤의 요체는 맹신이다. 눈멀 ‘맹(盲)’ 자를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응원부터 하는 것이다. 어느 정치인의 성범죄를 없었던 일로 하려 한다거나, 막말이나 거짓말을 일삼는 이를 덮어놓고 옹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이러다 보니 팬덤의 지지는 절대적이거나 불변할 것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틀렸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을 보유했던 비틀스조차 존 레넌의 이른바 ‘예수 발언 한마디 때문에 눈앞에서 자기 앨범의 화형식을 봐야만 했다. 확장성을 꾀하지 않고 팬덤만 우선시하다가는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반면교사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편 가르기에 취하지 말고, 언제 불타 없어질지 모르는 인기를 한번 더 되돌아보자. 아, 혹시 찔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착각하지 마시길. 팬덤을 우선시해 기획해온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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