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6월을 맞이하며

양민주 시인·수필가 2023. 5.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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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주 시인·수필가

떠나가는 5월은 뒷모습까지도 청춘처럼 푸르다. 5월을 보내며 새로운 어린이 어버이 성년 부부가 연둣빛 새싹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다. 올해는 부처님도 5월에 오셔서 많은 사람이 자비를 받았으리라. 가정 경제야 어찌 되었든 되돌아보는 가정의 달 5월은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달이 되었다고 믿어 본다.

5월은 참 분주했다. 바쁜 만큼 새소리도 짙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구애의 새소리를 들으며 가족의 탄생을 생각하고 연둣빛으로 피어나는 잎사귀에 미혹하여 나무 앞에 한참을 서성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월의 끝자락에 와 있다. 이젠 6월을 맞이해야 한다.

다가오는 6월의 앞모습도 청춘처럼 푸르다. 푸르다 못해 가슴 시리다. 젊은 병사가 자기 키보다 큰 소총을 앞세워 돌격하는 모습이다. 신록의 숲을 헤치고 용감하게 적을 향해 총칼을 겨눈다. 오로지 조국을 위해 젊은 한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이 신성한 행동 앞에 신인들 어찌하랴.

나의 작은아버지도 그랬다. 1930년대 초반에 태어나 10대 후반 한국전쟁에 참전한 참전 용사다. 전쟁 후 공직에 몸담아 36년간 봉직하셨고 공직 생활 초기에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셨다. 작은아버지는 당신 형의 아들 3형제 중 막내인 나를 많이 챙기셨다. 문약한 몸으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형의 살림살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였다.

공무원의 적은 월급으로 가정을 건사하고 절약한 돈으로 나의 학비를 중학 입학부터 대학 졸업까지 대주었다. 등록금 납부일이 되면 나는 작은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작은아버지 전상서로 시작하여 안부를 여쭙고 마지막엔 유자(幼子) 민주 올림이라고 썼다. 그러면 며칠 지나지 않아 등록금이 체신환으로 왔다. 나는 말 그대로 어린 자식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작은아버지의 은혜 덕분이다. 작은아버지는 이태 전 겨울에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국립 괴산호국원에 잠들어 계신다. 나라를 지키고 조카의 교육과 집안을 생각한 그 뜻을 돌아가신 다음에야 깨닫게 되었으니, 할 도리를 다 못 한 게 후회스럽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장(安葬)을 위해 호국원으로 가는 길엔 하늘도 슬퍼서 진눈깨비를 부슬부슬 뿌려주었다. 슬픔은 나누면 적어진다기에 작은어머니와 동행하며 당신에 대한 회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가에 맺히는 눈물은 흐르도록 그대로 두었다. 그때 작은어머니께서 하신 여러 말씀 중 두 가지가 기억난다.

생전에 작은아버지는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아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작은어머니는 당신이 운전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전쟁 당시 차를 몰고 전쟁터를 누비다 사고를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운전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참전 용사는 전사하거나 장애를 입거나 트라우마를 갖는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사촌 동생인 두 딸을 키우면서 딸에게 높임말을 썼다고 한다. 어느 날 작은어머니가 “딸에게 왜 높임말을 쓰느냐”고 물으니, 당신은 “내가 클 때 아버지가 내게 높임말을 썼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뵌 적도 없는 할아버지가 떠오르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내리사랑이 숭고해 슬픔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작은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지켜주셨고 내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교육받게 해주셨다. 작은아버지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을 희생한 분이다. 어디를 가나 기회가 되면 염치 불고 작은아버지 자랑을 한다. 살아가면서 내가 작은아버지의 고마움을 되새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한다. 참전 용사들이 살아계신다면 아흔을 넘긴 연세일 것이다. 6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분을 기려야 하는 달이다. 나라에서도 그분들께 최고의 대우를 해야 한다. 가슴 시리고 푸른 6월을 맞이하며 우리나라의 모든 작은아버지 같은 분께 지면을 빌어 큰절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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