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때 운전대 놓고 흑염소 몰이…연매출 15억 농장 일궈

고영삼 동명대 교수 2023. 5.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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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하여 남 눈치 안 보고 사는데 마침 수입도 빵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시골 출신 베이비 부머들의 인생이모작 로망일 것이다.

보성군 명봉역 인근이라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 시골이란 생각이 들었다.

준비하고서 버린 것이 아니라, 먼저 버려버린 과단성은 미지의 삶에 대한 특유한 영감 때문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가족을 먹여 살려준 키를 저 멀리 던져버렸는데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속박해 온 껍질이 산산이 깨어져 나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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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27> ‘늘푸른흑염소농장’ 추교전 대표

- 개인택시 운영하며 빠듯한 생활
- 이른 나이에 과감히 귀촌 결정
- 마이스터대 입학 … 해외 연수도
- 1200마리 사육…식당·카페 운영

- 매년 고객 선물비만 2000만원
- 신뢰경영에 올 20억 매출 기대
- 해외시장으로 사업 확장 꿈꿔

◇ 추교전의 이모작 귀띔

- 인생 후반기에도 삶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관리하라

추교전 대표가 제1 야외농장 언덕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흑염소 떼를 돌보고 있다.


귀촌하여 남 눈치 안 보고 사는데 마침 수입도 빵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시골 출신 베이비 부머들의 인생이모작 로망일 것이다. 여기 마침 대박 사례가 있다. 젊은 시절에는 넉넉하지 못해 의무 방어전으로 연명하다 귀촌했는데 지금은 연일 역주행이다. 전남 보성군 노동면에서 흑염소 농장을 하는 추교전 대표. 58세인 그는 40대 중반에 낙향하여 농장을 차렸는데, 지금 사업은 번창하고 열정은 폭발한다. 그에겐 무슨 비결이 있는 것일까?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해 주세요.

추교전 대표(앞줄 왼쪽 두 번째)가 지난 3월 부울선교회와 함께 네팔에 가서 7번째 염소 봉사활동을 하던 중 그곳 마을 지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저는 흑염소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성군 청정지역에서 건강 흑염소를 사육하고, 이를 육가공하여 고기와 엑기스를 판매합니다. 또한 가족과 함께 흑염소 전문음식점과 카페도 운영합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언제 시작하셨나요?

▶전남 보성군 노동면 일대에 3곳의 농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총 8000평의 대지에 축사는 800평 정도입니다. 현재는 흑염소 1200마리를 사육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15억 원 정도의 매출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농장은 2010년 그러니까 제가 45세가 됐을 때 설립했습니다. 저는 인생이모작을 보통 사람들보다 10년 정도는 일찍 시작한 셈이죠. 두 번째 농장은 8년 뒤에 열었고요. 그 후로 농장을 더 증설하고 또 음식점과 카페를 시작했어요.

그를 만나러 간 곳은 ‘늘푸른흑염소가든’이었다. 보성군 명봉역 인근이라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 시골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든의 주차장에는 고객의 차량이 10여 대나 주차해 있어 신기했다. 인터뷰 중에도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미 TV를 통해 많이 알려진 듯했다. MBC 생방송 오늘저녁, MBC 테마여행 길, MBN 사노라면, KBS 6시내고향뿐만 아니라 방송인 최불암 씨가 진행하는 KBS의 한국인의 밥상에도 방영되었단다.

-이런 시골에서 급성장한 게 놀랍군요. 어떻게 귀촌하게 되셨나요?

▶저는 젊은 시절 슈퍼마켓을 운영하기도 했고, 귀촌 직전에는 개인택시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만족스러워야 했는데, 아이들 학비 생활비에 항상 빠듯했어요. 40대가 넘어 도시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지만 다른 일거리가 마땅치 않았어요. 개인택시 의무 5년이 지나서 또 고민하다가, 키를 던져버렸어요.

-키를 던져요?

▶자동차 키 말입니다. 제가 가진 기술이라고는 운전이 전부이다 보니 항상 운전을 중심으로 직업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힘겨운 처지를 비탄해 하던 어느 날 키를 던져버린 것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키를 놓아버리니 세상이 환하게 넓어 보입디다.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그 넓어진 시각에서 흑염소 농장을 결심한 것이죠.

-어떻게 하필 흑염소에 꽂혔나요?

▶인생 진로를 고민하던 어느 날 지인에게서 흑염소 이야기에 듣고는 소름 돋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아! 저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료를 막 모아보니 흑염소 전문도축장을 설치하는 등 정부 정책도 좋아지고 있더군요. 그 뒤 무일푼으로 귀촌해 준비했습니다.

준비하고서 버린 것이 아니라, 먼저 버려버린 과단성은 미지의 삶에 대한 특유한 영감 때문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가족을 먹여 살려준 키를 저 멀리 던져버렸는데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속박해 온 껍질이 산산이 깨어져 나감을 느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미친 듯이 일어났다. 두근거리는 삶의 출발점이었다.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흑염소 사육을 위해 성공한 농장들을 방문해 무조건 배웠습니다. 컨설팅도 받고요. 그리고 체계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농업마이스터대학 흑염소학과에 입학했지요. 그곳에서 2년 동안 사육, 질병관리, 사료학뿐만 아니라 유통 경영까지 공부했어요. 대학에는 국내외 연수프로그램도 있는 등 내실이 탄탄했습니다.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준비해 산야를 매입하고 축사를 건축하는 등 확장해 왔습니다.

-성공사례를 충분히 공부한 것이 성공 요건이었나요?

▶일차적으로는 그랬어요. 마이스터대학, 지자체의 염소협회 등을 통한 자문에 기초해서 사전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대학에서 미국 염소박람회 등 국내외 각종 엑스포 연수, 호주 염소 농장 필리핀 염소육종개량 현장 몽골대학 염소프로그램 연수 및 가공시설을 방문하게 한 것은 시야를 넓히는데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비결이 있었나요?

▶가족과 함께함으로써 이해관계를 편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아들 딸의 부부, 동생들 총 8명이 함께합니다. 흑염소 패밀리를 구성한 거죠. 그리고 시작하기 전부터 교회나 지인을 통해 주문자 생산체계를 완벽히 갖추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인심을 얻었던 덕분에 사업 전부터 엑기스와 육고기의 주문을 단단히 받았어요. 판로 걱정 없이 시작한 것이죠.

-손자병법에 싸울 때는 이겨놓고 싸우라는 말이 있는데, 사업에서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셨군요.

▶보통 귀농 귀촌자의 90%가 실패한답니다. 그 이유를 아세요? 대부분 귀가 얇아서 깊이 알아보지 않고 이것 좋다, 저것 좋다 소문만 듣고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산에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면밀하게 준비하지 않고 시작하기 때문이죠. 행운의 여신은 요행을 바라는 자에게 절대 가지 않죠.

-지인들에게만 판매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나요?

▶당연하죠. 저는 신뢰와 감동으로 답합니다. 즉 원재료부터 제조·유통의 각 단계를 관리하는 해썹(HACCP) 인증도 받아 객관적 신뢰요소를 구비했지요. 그리고 저 나름의 감동 마케팅을 합니다. 예를 들어 흑염소 엑기스 주문이 들어오면 진액 본 상품에 보태어 마음을 건드리는 선물을 제공합니다. 수건, 머그 컵, 염소기름으로 만든 비누, 그리고 보성군에서 나온 기능성 쌀 등 4가지를 함께 제공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감동하시더군요. 선물 비용만 해도 일 년에 2000만 원이 넘지만 단기 수익을 넘어선 경영법입니다.

이 가심비 전략 때문인지 그는 올해 2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내다보고 있단다. 13년 전 3억 원을 투자해 시작한 그의 경영법은 들을수록 간단치 않았다. 현재는 수익 구조를 단단히 함을 넘어 이젠 동업자가 된 아들 딸 부부에게 돈을 알차게 쓰는 법까지 가르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흑염소 해외사업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네팔에 해외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지원사업이 7년이 되었습니다. 매년 1000만 원 이상 지원해 왔는데 곧 필리핀에도 갈 예정입니다. 흑염소가 영양이 좋으니 개도국에 도움이 되지요. 그리고 ‘인생은 짧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멋지게 살자’가 저의 좌우명입니다. 보성군 노동면희망드림협의체 위원장으로 나눔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변환점을 돌아 일과 가족과 나눔이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인생이모작에 어떤 이는 성공하고 어떤 이는 실패한다. 뒤늦게 역주행 중인 추 대표에게는 어떤 강점이 있는 것일까? 그는 사업 정체성을 중심으로 일 기본이 되어 있다. 40 중반에 인생이모작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그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열려있고 열정적이다. 아산 정주영 회장을 존경한다는 그의 머리에는 일을 통해 호기심을 채우고 호기심으로 다시 인생 도전을 계속하는 메커니즘이 구축되어 있는 듯하다. 어느 날 흑염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할 첫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농업마이스터대학

-2009년 2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설립한 2년제 평생학습 전문 교육기관이다. 농업 분야의 최신 고급기술 지식 및 경영능력을 갖추고 이를 다른 농업 경영인에게 전문적인 교육 또는 컨설팅을 해줄 수 있는 농업경영인(농업마이스터)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광역 지자체별로 설립되어 있으며 신성장 품목, 핵심 품목 위주로 학과가 개설되었다.

-각 전공은 2년 4학기(32학점, 480시간)로 구성되어 있다. 등록금은 연간 100만 원 이상이지만 총교육비의 70%를 정부가 지원한다. 수료자에게는 정부정책 자금 지원 혜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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