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하늘에서의 ‘로드킬’

허행윤 기자 입력 2023. 5. 31. 03:01 수정 2023. 5. 3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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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야생동물들이 며칠째 방치된다. 외진 산길을 가다 보면 목격할 수 있다. 고속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에선 더 흔하다. 이른바 ‘로드킬’ 사고의 결과물이다.

자동차와 부딪친 야생동물은 거의 죽는다. 살아도 불구가 된다. 상당수 운전자가 신고나 조치하지 않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로드킬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밤에 더 위험하다. 동물의 눈은 사람과 달리 자동차 불빛을 흡수하지 못해서다. 자동차가 가까이 와도 밤에는 피하지 않는다. 인식해도 대응이 늦어 낮보다 사고율이 높다.

운전자 입장에선 도로 안팎에 동물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채고 대처할 시간이 충분하다. 하지만 밤에는 그렇지 않다. 도로 위는 상향등을 이용해 어떻게든 본다고 해도 도로 바깥쪽에 숨어 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동물에게는 대처하기 어렵다.

하늘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활주로에서 이륙 중인 항공기에 부딪치거나 마천루가 즐비한 대도시에선 유리창과 충돌한다. 야트막한 구릉이나 해변에 많이 설치된 해상풍력기와 충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환경당국의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상황은 심각하다. 하늘에서의 로드킬인 셈이다.

최근 충남 홍성군 모산도에서 황새 사체가 발견됐다.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 됐을 어린 개체였다. 근처에 있는 해상풍력발전기 날개에 부딪쳐 폐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해상풍력발전기가 유리창과 방음벽처럼 하늘의 로드킬을 유발하고 있다. 최근 수립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지난해 9.2%에서 올해 21.6% 이상까지 늘었다. 해상풍력발전기도 증가하고 있어 조류 충돌도 빈발할 것으로 우려된다.

생태계도 후손들에게 빌린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의 생존을 보장해야 할 명분은 그래서 명쾌하다. 하늘에서의 로드킬을 줄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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