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공업탑, 아래아한글, 첨단 섬유… “오늘의 대한민국 만든 과학기술 유공자 기억해야”

최정석 기자 2023. 5. 3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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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식 개최
전민제 회장을 생각하면 울산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전 회장이 열정을 바친 곳이다. 울산에 가면 공업탑이 있는데, 전 회장이 1962년에 세웠다. 그때 울산 인구가 20만명이었다. 전 회장이 50만명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업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울산 인구가 120만명이다. 전 회장의 업적이다.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지난 3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23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식’이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7년부터 국가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유공자를 선정해 대통령 명의의 유공자 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81명이 과학기술유공자에 헌정됐는데, 이날은 지난해 헌정된 4명의 유공자에 대한 헌정식이 열렸다.

이번에 새로 헌정된 유공자는 김성호 버클리 캘리포이나대 명예교수, 고(故) 공병우 한글문화원 원장, 고 윤한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고 전민제 전엔지니어링 회장이다. 김성호 명예교수를 제외하면 모두 세상을 떠나 유가족이 대신 증서를 받았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날 헌정식에선 4명의 유공자를 기리기 위한 특별한 순서도 있었다. 과학기술계의 원로인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유공자들의 업적과 국가에 대한 기여를 직접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헌정 강연이 있었다.

김 이사장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신 분들의 공적을 다시금 되새기는 자리”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전민제 회장에 대해 울산을 정유와 화학공업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열정을 받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전민제 회장은 1961년 박정희 정권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할 때, 정유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한 인물이다. 박정희 정권이 정유공장 건설을 확정했을 때 후보지를 물색하고 울산으로 결정한 것도 전 회장이었다. 유공에서 이사를 지내다 물러난 뒤에는 공장 설립 회사인 전엔지니어링을 설립하고 국내에 엔지니어링 산업의 기틀을 잡았다.

그래픽=조선DB

김 이사장은 “전 회장은 울산을 신공업도시로 만들기로 하고 검은 연기가 대기로 뻗어나가는 공업도시를 만들었다”며 “그런데 공업도시 울산의 공해 문제를 해결한 게 또 전 회장이었다”고 말했다. 전엔지니어링을 설립해 공장 설계와 친환경 기술 개발에 크게 기여해 울산의 검은 때를 벗겨내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날 헌정식에 참석한 전 회장의 차녀 전수용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아버지는 스물살 때부터 독학으로 화학공장 설계 방법을 연구했다. 또래가 이성친구를 만나려고 할 때 그런 업적을 이뤘다는 게 지금도 놀랍다”며 “1950년대부터 한국 산업을 일으키려면 석유와 정유산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칠전팔기의 노력을 거듭했다. 고인이 되셨지만 국가에서 그 공로를 인정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헌정식에 참석한 윤태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오늘 소개된 유공자들의 업적이 과학기술 꿈나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전민제 회장이 석유화학 기술이 대한민국을 살릴 것이라는 일념 하나로 일생을 바쳤는데, 이런 자세가 젊은 꿈나들에게도 많이 알려져서 100명 중 한두 명이라도 그 길을 따라가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민제 회장 외에 다른 유공자들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4명의 유공자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김성호 교수는 전달RNA(tRNA)의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내 단백질체학과 유전체학의 새 지평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원로 학자다. 양은경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원장은 “김 교수가 RNA 연구를 계속했다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며 “하지만 김 교수는 상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융합기술을 통해 우리 과학기술의 지평을 넓히는 데 힘썼다”고 설명했다.

고 공병우 한글문화원 원장은 한글의 기계화와 안과 진료의 대중화를 선도한 인물이다. 한국에서 최초의 안과 전문의이자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최초로 만들었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는 “세벌식 한글 타자기와 아래아 한글, 천지인 자판이 모두 공 원장이 시작한 것”이라며 “공 원장 덕분에 우리가 한글을 편리하게 쓸 수 있게 됐다. 사람과 사회를 생각하는 공 원장의 마음이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고 말했다.

고 윤한식 KIST 책임연구원은 아라미드 펄프 제조 공정을 개발해 한국 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린 인물이다. 양은경 부원장은 “윤 책임연구원은 한국 최초로 단독 저자로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인물로 이 기술은 코오롱으로 이어져 지금은 방탄복, 방호복, 고성능 타이어 등에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 부원장은 ‘쉬지 않고 하면 꿈이 이뤄진다’는 윤 책임연구원의 생전 좌우명을 소개하며 “윤 책임연구원은 학사 신분으로 연구를 하다 쉰다섯 살이 돼서야 박사를 딴 사람”이라며 “끈기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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