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대통령 ‘비속어’ 보도 이후 대놓고 공영방송 때리기
최근 KBS ‘앵커 멘트 교체’ 놓고도 여당서 “조작보도” 공세
언론학자 “현 정부, 방송에 영향력 행사할 교두보 만들려 해”
정부·여당의 ‘공영방송 때리기’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여권이 공영방송을 틀어쥐기 위해 본격 행동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찰은 3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자료를 유출했다는 혐의로 MBC 기자 임모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고, MBC 보도국에 대한 압수수색도 시도했다. 경찰이 MBC 보도국에 임씨 물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빈손으로 철수하기는 했지만, 기자 한 명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보도국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날 압수수색을 두고 MBC가 현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 정부와 MBC 간 갈등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표면화됐다.
윤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냐”고 발언하는 모습이 방송기자단의 풀 화면에 촬영됐다. 이 장면을 MBC가 ‘○○○’ 부분을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아 처음 보도하자 대통령실은 몇 시간 뒤 “음성 분석 결과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 반박하면서 MBC에 보도 경위를 밝히라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해 11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주요 20개국(G20) 순방 때는 대통령실이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 이호찬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은 “MBC에 대한 탄압은 ‘비속어 보도’ 이후 본격화되어서 고용노동청 특별근로감독, (방송문화진흥회) 감사원 감사 등 전방위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KBS에 대한 여권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KBS는 지난 18일 <9시 뉴스>에서 민주노총 집회와 관련한 보도에서 앵커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을 받고 녹화 영상의 일부를 교체해 논란이 됐는데, 이를 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엽기적인 조작 보도”라며 KBS를 강하게 비난했다. 지난달에는 대통령실이 KBS에 대해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언론단체와 학계에서는 현 정부의 ‘공영방송 옥죄기’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이전부터 특정 언론에 대한 부당한 대응이 쌓여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MBC 압수수색의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기자나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언론 자유를 고려해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굉장히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금 정부는 공영언론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최근의 사태는 독립성이 부족한 우리 언론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면서 “정치 권력이 공익을 생각하지 않고 이해관계만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은·김세훈·김송이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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