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만은…" 대치동 '초등 의대반' 열풍 이 정도일 줄이야 [이슈+]

김세린 2023. 5. 30. 19: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사 왜 되고 싶니?" "몰라요"
'의대반' 다니는 초등학생들
초등생들 '의대 입시' 과열
SNS, 유튜브에 '공부 인증'
"부모 영향 상당 부분 반영돼"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외과 의사가 목표인 예비 중 1의 15시간 공부 브이로그'
'약대가 목표인 초6의 17시간 공부 브이로그'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0대 유튜버들의 '의대 입시 브이로그(V-log)' 영상 타이틀이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콘텐츠를 뜻한다. 이 같은 영상을 올리는 초등학생들의 하루는 절반 이상이 의대 진학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에 해당한다.

최근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연령이 낮아졌다는 지표가 나온 가운데, 어릴 때부터 의대 입시에 뛰어든 모습을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개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눈에 띄고 있다. 이들은 여러 명이 보는 공개 공간을 활용해 공부했다는 것을 인증하고, 학원, 교재 등 의대 진학을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도 보인다.

유튜브뿐 아니라 서울 강남 대치동 등 주요 학원가에서도 '의대 준비반' 수업을 수강하는 앳된 모습의 어린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소수 정예 의대 반'이 성행하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업은 대체로 10명 이하의 소수 정예로 운영되며, 해당 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높은 경쟁률의 '레벨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치동의 한 입시 컨설팅 관계자 백모 씨(54)는 "의료 업계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보니, 이 분야가 미래에 제일 이상적일 것이라는 인식이 높아진 점이 초등학생들한테까지 퍼졌다"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생 5~6학년 학부모들이 상담이 주를 이루지만, 아이가 수학 등 과목에 재능을 보인다고 여기는 학부모의 경우 1~2학년 때부터 상담받으러 오실 정도"라고 설명했다.

입시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 '가갸거겨고교'에는 최근 '미국 수학 경시대회 푸는 초등 의대 반 수업 현장'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큰 화제가 됐다. 해당 영상에서 초등학생들은 "의사가 왜 되고 싶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나도 누군가의 병을 고쳐주고 싶어서"라고 답하거나 "몰라요"라고 웃어 보이는 등 다양한 답변을 내놨다.

초등생을 위한 의대 준비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일파만파 퍼지자, 각종 공부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는 "나도 들어가고 싶다", "문의해보니 꽉 차서 들어갈 자리 없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의대 준비를 위해 매일 공부하는 일상을 기록하는 '공스타그램(공부스타그램)' 열기도 거세졌다. 기존의 공스타그램은 고시생과 대입을 앞둔 입시생들 위주로 인기였으나, 현재에는 초등생 4~6학년 되는 학생들이 'ㅇㅇ의대 29학번' 등의 목표를 내걸고 서로 공부 인증에 나서는 분위기다.

초등생들에게 무분별하게 '의대 광풍' 현상이 퍼져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메가스터디교육이 지난달 10일부터 같은 달 24일까지 초등부(엘리하이)와 중등부(엠베스트) 회원 13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학 계열 대학 진학이 목표라는 초등생은 응답자(502명)의 23.9%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 초등생 5명 중 1명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셈이다.

초등생들의 '의대 입시'를 다룬 인기 유튜브 영상들.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러 경험으로 재능 찾아가야 할 시기에 '맹목적 의대 지향'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등생들이 실질적으로 특정 학문에 해당하는 것을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다"며 "본인이 병원에 갔던 경험을 가지고 의사가 되고 싶어 하거나, 의학 드라마로부터 간접적 영향을 받거나, 학교에서 배우는 간단한 교재로 의사라는 직업을 아는 정도의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의사나 의대의 관심은 대부분 호기심에서 기반을 뒀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특히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를 준비하게 된 상당 부분의 영향은 부모들로부터 받았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종로학원이 이달 16∼17일 초등학생 학부모 676명과 중학생 학부모 719명 등 13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의 88.2%는 자녀의 진로에 대해 이과를 희망한다고 답했으며, 이들이 선호하는 전공은 의학계열(의대·치대·약대·한의대)이 49.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 양 교수는 "초등학생보다 해당 아이를 둔 부모들은 현실적이기 때문에 본인의 자녀가 성인이 되어있을 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직업을 이끌어 갈 것인지, 그 직업을 했을 때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라며 "현재 초등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는 '의대'가 (해당 기준에 제일) 적합하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인데, 과거에 영재고, 과학고 준비반을 초등학생 때부터 보내려는 부모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