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 밑서 조선 전기 유구 흔적 확인

최다인 기자 2023. 5. 3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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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시대에 축조된 광화문 월대 하부에서 조선 전기의 유구(遺構·역사적 잔존물)가 확인됐다.

30일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의 복원·경비를 위해 실시한 추가 발굴조사에서 고종 연간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유구의 흔적을 일부 파악했다.

특히 조선 전기 문화층은 앞선 2007년 광화문 발굴조사에서도 파악된 층으로, 이번에 발굴한 유구는 고종 연간 월대의 어도지 서쪽 기초시설 하부 약 120㎝ 지점에 있는 문화층 최상단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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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 어도지 서쪽 문화층 최상단서 유구 파악, 석렬 배열 형태
광화문 월대 유구 현황. 사진=문화재청 제공

고종 시대에 축조된 광화문 월대 하부에서 조선 전기의 유구(遺構·역사적 잔존물)가 확인됐다.

30일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의 복원·경비를 위해 실시한 추가 발굴조사에서 고종 연간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유구의 흔적을 일부 파악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언론공개회를 통해 광화문 월대의 규모와 기초시설, 전체 모습 등 그동안 조사가 완료된 성과를 한 차례 공개한 이후에 추가로 실시한 발굴 조사다.

이를 통해 두 가지 성과를 얻었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우선 조선시대 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광화문 앞 공간의 퇴적과 활용 양상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또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됐던 월대 축조 이전에도 광화문 앞 공간이 활용됐다는 사실에 대한 물적 증거까지 최초로 확보됐다는 것이다.

광화문 밖 공간의 퇴적양상은 자연층에서 조선 전기 문화층(14-16세기)과 조선 중·후기 문화층(17세기 이후), 월대 조성층(19세기)을 거쳐 근현대 도로층(20세기)의 순으로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조선 전기 문화층은 앞선 2007년 광화문 발굴조사에서도 파악된 층으로, 이번에 발굴한 유구는 고종 연간 월대의 어도지 서쪽 기초시설 하부 약 120㎝ 지점에 있는 문화층 최상단에서 드러났다.

유구는 사각형 석재 1매(76×56×25cm)를 중심으로 양쪽에 남북방향의 석렬(돌로 열을 지어 만든 시설)이 각각 한 줄씩 배열된 양상이다. 석재의 중앙엔 직경 6㎝의 철제 고정쇠가 박혀 있다.

이런 형태는 궁중 행사에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 차일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양쪽 석렬의 잔존너비는 약 85㎝로 길이 20-30㎝의 크고 작은 석재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형태다. 이러한 모습이 동쪽 어도지 하층 탐색 구덩이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돼 전체적으로 유사한 양상의 조선 전기 유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 중·후기 유구는 손상이 심하며, 민가의 흔적도 파악돼 임진왜란이 지난 뒤 경복궁이 방치돼 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후 관리되지 못하다가 고종 연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월대가 설치됐음을 알 수 있다.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자료를 정밀 분석해 경복궁 광화문과 월대 공간과의 연관성, 활용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며 "국민들이 우리의 역사문화 공간을 바로 알고 향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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