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남루, 이번엔 국보 승격 꿈 이룰까?[디지털 동서남북]

밀양=최창환 기자 입력 2023. 5. 30. 19:01 수정 2023. 6. 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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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남 밀양시 영남루(嶺南樓). 팔작지붕 아래로 정면 5칸, 측면 4칸인 누각은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졌다. 누각에 올라서자 확 트인 밀양강과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구한말 추사체의 대가 성파 하동주가 쓴 현판을 비롯해 누각 천정을 따라 퇴계 이황, 목은 이색, 삼우당 문익점 등이 남긴 현판이 걸려 있었다. 해설사는 “영남루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능파당, 침류각이 날개를 펴듯 태극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며 “이 같은 공간구성은 국내 누각 중 영남루에서만 볼 수 있어 건축학도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물 밀양 영남루. 본루를 기점으로 좌측에는 능파각을 우측에는 침류각을 익류로 거느리고 있다. 지금 밀양에선 영남루가 국보로 다시 승격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밀양=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영남루는 평양 부벽루(浮碧樓), 진주 촉석루(矗石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루로 꼽힌다. 신라 경덕왕(742~765) 때 영남사의 부속 누각으로 세워졌다가 1365년 촉석루를 본 떠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화재, 전쟁으로 몇 차례 소실됐다가 1844년 중건된 후 현재까지 남아있다.

●국보 지정 심판대에선 영남루

지금 밀양에선 영남루가 국보로 승격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밀양은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아리랑의 고장이며, 작은 길모퉁이에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지역”이라며 “그 중심에 우뚝 선 영남루가 가치에 맞는 격을 찾아야 할 때다. 시민의 염원을 모아 영남루가 국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특히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17일 영남루 국보 지정가치 조사를 위한 현지실사를 했다. 실사에는 문화재위원과 문화재전문위원 각 2명, 문화재청 직원 3명이 참여했다. 실사를 마친 문화재위원들이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문화재청에 제출하면 문화재청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심의를 해 문화재위원회에서 국보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박일호 밀양시장(왼쪽 첫 번째)이 지난달 17일 영남루 국보 지정가치 조사를 위해 현지실사를 나온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청 직원들에게 영남루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다. 밀양시 제공


●14년간 국보로 불렸던 영남루

영남루도 한때 국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1933년 보물 지정된 영남루는 1948년 국보로 승격됐다. 14년간 국보 타이틀을 이어갔지만,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변화에 물살에 올라탔다. 정부가 이 법을 근거로 우리나라 문화재를 재평가하면서 그해 다시 보물(제147호)로 내려앉았다. 당시엔 먹고사는 게 더 중요했던 시절이라 밀양시민들의 반대는 크게 없었다. 반세기 가까운 긴 시간이 흘렀고 밀양시민 사이에선 영남루를 국보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목소히가 일기 시작했다. 이에 2014년 밀양시는 첫 번째 국보 승격을 추진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 9명 중 9명 전원이 반대해 실패했다. 당시 문화재위원들은 “규모는 촉석루와 더불어 누각 건축물로는 매우 크며 조선후기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으나 국보로 승격시켜 보존할 뚜렷한 건축적 특성은 찾을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밀양시는 포기하지 않고 2016년 재도전했다. 시민운동차원에서 국보 승격 운동까지 벌였지만, 문화재청 현지실사 이후 국보 승격 관련 신청서를 자진 취하했다. 취하 이유로 밀양시는 ‘영남루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문헌과 자료 추가 조사 후 재신청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문화재위원회의 부정적 기류가 감지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영남루 누각에 올라서 본 확 트인 밀양강과 시가지. 밀양=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국보 승격에 흠 없다”

불굴의 자세로 밀양시는 또다시 국보 승격에 도전장을 냈다. 이번엔 그야말로 총력전이다. 밀양시의회는 ‘영남루 국보 승격 대정부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국회와 문화재청을 비롯한 중앙 관련 기관에 보냈고, 밀양시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 사진축전에서 ‘밀양 영남루 국보승격 기원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밀양시와 밀양문화원,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영남루 국보승격을 염원하는 시민대토론회를 개최해 영남루의 역사·건축학·인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국보 승격 의지를 다졌다. 이 자리에선 문화재 전문가들은 영남루가 건축학적, 인문학적 가치가 국보로 승격하기에 흠잡을 데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호열 부산대건축학과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종교건축의 누정과 개인 소유의 별서(別墅·정원) 건축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영 건축이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 파괴로 입지적 가치를 잃거나 일제 강점기에 해체됐지만, 영남루는 입지적 가치 손상, 해체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정석태 한국고전번역원교육원 교수는 “영남루는 단순한 목조 건축물이 아니라, 방대한 시문(詩文) 작품을 배출하거나 작품의 무대가 됐다”며 “교육, 관광자원으로서 적극 활용하려면 영남루를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필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영남루와 같은 부속 건물을 거느린 누각은 그다지 흔치 않다”며 “누의 좌우에 침류당, 능파당이라는 부속건물이 남아 있는 영남루는 조선시대 누각 배치의 완결”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처럼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지지속에 밀양의 담대하고 간절한 국보 승격의 희망은 이뤄질까. 영남루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길 바라는 한 국민으로 밀양시를 응원해 본다. 결과는 올해 하반기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밀양=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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