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법안 수년째 계류…외국선 연인 전과 기록 요구도

박광온 기자 2023. 5. 3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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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접근금지 등에 관한 법적 근거 없어
반의사불벌죄 적용, 조사 사후 규제 어려워
미국 등 외국선 연인 과거 폭행 전과 정보 제공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데이트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헤어진 연인을 살해한 피의자 김모씨가 지난 28일 오후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금천구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3.05.28.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박광온 김래현 기자 = 최근 서울 금천구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건은 현행 피해자 보호 제도의 허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지만, 관련 법안들은 수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보복 우려 등으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처벌 의사를 내비치지 못하는 데이트폭력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있음에도 스토킹범죄와 달리 접근금지 조치 등을 할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3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데이트폭력'을 별도의 범죄로 규정해 발의된 법안은 총 2개다. 두 법안은 데이트폭력에 임시조치를 가능하도록 근거를 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데이트폭력 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데이트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임시조치가 가능한 가정폭력처벌법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데이트폭력'을 연인 관계에서의 신체적·정서적 폭력은 물론 명시적 의사에 반한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 등을 반복하는 행위까지로 규정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데이트폭력이 지속·반복적으로 행해질 우려가 있거나 긴급을 요하는 경우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데이트폭력범죄에 대해서 형법상 반의사불벌조항을 적용하지 않고, 피해자를 관련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 인도하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이 같은 데이트폭력 법안은 2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가정폭력의 범위를 아예 데이트폭력까지 확대하는 법안도 다수 있다. 지난 2021년 3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정폭력방지법 일부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피의자 격리, 접근 및 연락 금지 명령 등 '임시조치'가 가능한 가정폭력 범위에 교제 관계를 포함하는 내용이다.

이번 금천구 전 연인 살해사건의 경우 경찰은 가해자 접근금지 등 법적 근거가 없는 단순 데이트폭력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이 사건 피의자 김모씨가 피해자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만남을 강요·협박하는 등 스토킹범죄로 볼만한 정황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의 경우 접근금지 조치가 가능한데, 경찰은 '결혼 의사가 없는 연인관계다', '생활비를 따로 쓴다' 등 피해자 진술과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도 볼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그러나 김씨는 피해자가 신고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는 데 화가 나 끝내 범행을 저질렀다.

현재 데이트폭력의 경우,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 형사적 제재를 할 수 없다는 점도 맹점으로 꼽힌다. 범죄 징후가 보여도 상대방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할 경우 경찰 대응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금천구 전 연인 살해 사건에서도 경찰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토대로 위험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거부해 스마트워치 지급, 귀갓길 동행 등 보호조치도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피해자는 지구대에서 나온 지 단 10분 만에 살해됐다.

하지만 권 의원이 낸 개정안은 지난 2021년 3월 소관 상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된 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같은 해 3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아직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처럼 관련 논의가 사실상 중단돼 있는 동안, 데이트폭력 사건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치안전망 2023'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해 9월 기준 5만2767건이었다. 이는 지난 2021년 9월(4만1335명)보다 27.7% 늘어난 수치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은 데이트폭력을 가정폭력의 범주에서 바라보며 발빠르게 대응, 규제를 강화해왔다.

미국에선 지난 2009년 '신변보호명령' 대상을 연인관계로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케이티법'이 도입됐다. 기존에 있는 '가정폭력방지법'에 '연인'을 포함시키며 신변보호, 영장 없는 체포 등 교정 명령을 내리거나, 가해자에게 가중처벌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범죄라는 점에서 '가정폭력'과 유사해, 가정폭력방지법 적용 범위에 '데이트 폭력'도 포함시킨 것이다.

영국의 경우 '클레어법(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이 있다. 연인의 전과 기록 공개를 요구할 수 있으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폭행 위험 상황을 인지한 제3자도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데이트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관계 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스웨덴의 경우 형사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접근 금지 신청이 가능하다. 폭력, 협박, 스토킹 등의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접근금지 명령과 퇴거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한 법안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는 "데이트폭력은 피해자와 피의자의 관계가 친밀해, 신고 당시엔 동정심 등이 작용해 사고 발생 위험률을 높일 수 있다"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 조사를 진행해야 하고, 신고가 들어왔을 때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가능하도록 법제도 빠르게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lighton@newsis.com, ra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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