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큐] '재명이네 마을'과 '건희 사랑'

박종화 2023. 5. 30. 17: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팬덤정치 : 정치인의 팬덤이 된 사람들

팬덤(fandom)은 유명인이나 특정 분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말한다. 팬덤 정치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과하게 지지하는 현상을 뜻한다. 가수의 팬클럽과 달리 정치인의 팬덤은 참여자의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시민 참여 정치’라는 긍정적 의미로도 읽힌다.

요즘 우리 정치권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정치 양극화다.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며 정치인 팬클럽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 팬클럽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팬클럽인 ‘재명이네 마을’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인 ‘건희 사랑’이다. ‘재명이네 마을’과 ‘건희 사랑’은 팬클럽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탄생 과정과 활동은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뉴스타파는 정치 팬덤의 대표적 현상인 두 팬클럽의 기원과 실체를 추적했다. 

‘재명이네마을’과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

이재명 대표의 팬클럽인 ‘재명이네 마을’은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직후, 즉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다. 개설 일주일만에 10만 명이 가입하며 낙선 후보인 이재명의 위세를 확인시켜 줬다. 이재명 대표 역시 카페 개설 후 사흘 만에 가입하고 닉네임을 ‘이장 이재명입니다'로 정하며, 스스로 팬클럽의 수장 역할을 자처하는 등 애정을 보였다.

‘재명이네 마을’ 회원들은 개딸(2030여성), 양아(2030남성), 개이모와 개삼촌(4050세대), 개할머니, 개할아버지 등 가족 구성원을 지칭하는 단어들로 서로를 부르고, 이 모두는 ‘가좍(가족을 거칠게 표현한 말)’으로 묶인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이유로 팬 카페에 가입하게 됐지만 이 '가좍' 공동체는 이재명 대표의 강력한 지지세력이 됐다.

“사실 ‘팬덤 현상, 강성 지지자, 개딸’ 이런 단어들이 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민주당이잖아요. 민주당을 풀어서 보면 민民이 결국 팬분들이에요. 지지자분들이에요. 그리고 주主라는 건 주인이거든요.민주당에서 민주를 하는데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
- 박상현, 활동명 '명튜브'/ 재명이네마을 개설자

“저희한테 강성 지지층이다, 훌리건이다라고 하는 게 우리가 뭘 지지하는지 몰라서 그냥 얘기하는 것 같아요. 뭔가 지키고 싶은 게 있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그걸 하는 것뿐이거든요.” 
- 김ㅇㅇ, 활동명 '파란고양이 9호'

“우리가 윤석열 검찰 독재에 맞서서 우리 민주당을 지키고 또 이재명 당 대표를 지키고 지킬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또 그것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그런 사실을 주지시키자.” 
- 황ㅇㅇ, '파란고양이 11호'

‘개딸’이라는 단어는 성격이 드센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가 처음 지금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즈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였다. 대선 당시 페미니즘을 내세우며 선거운동을 벌였던 이재명 당시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로 마음을 돌린 2030여성들이 스스로를 ‘개딸'이라 칭하면서 만들어진 명칭인 것이다. 그렇게 ‘개딸’은 개혁을 바라는 응집력있는 젊은 여성의 집단이자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대선 당시 위기 오자 팬클럽 창설 요청했다는 김건희 여사

팬덤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측과 여당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를 넉달 앞두고,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주가조작을 비롯해 학력과 경력 위조 의혹이 불거져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때였다. 2021년 11월 16일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인 ‘건희 사랑'이 만들어졌다. 그날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 권오수 회장이 검찰에 출석한 날이었다. 김 여사의 팬클럽을 만든 이는 강신업 변호사다. 그는 한 장애인예술단체를 함께 후원하며 김건희 여사와 인연을 맺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여성조선에는 “통 큰 커리어우먼… ‘건희 사랑’은 여사 요청으로”라는 제목의 ‘건희 사랑’을 만든 강신업 변호사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해당 기사에서 강 변호사는 “사실은 ‘건희 사랑’도 내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고 김 여사의 요청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나서서 자신의 팬클럽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는 김 여사의 요청을 언급하는 대신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건희 사랑'을 만들어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 이재명이 되면 나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그런데 당시에 김건희 여사에 대한 마타도어가 심했어요. 아시잖아요. 마타도어가 너무 심하니까 제가 김건희 여사를 도와주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을 도와드리는 길이다. 그래서 '건희 사랑'을 만들어서 활동한 것 뿐이에요.”
- 강신업, '건희 사랑' 전 대표

수박 색출부터 혐오 문자까지

'재명이네 마을'에서 활동하는 강성 지지자들 중 일부는  '정치 훌리건'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이른바 비명계 정치인들을 향해 문자 폭탄을 보내거나 팩스 테러를 하고, ‘수박 색출'이라는 폭력적 팬덤 행동을 보인 탓이다. ‘수박’은 겉은 푸른 민주당인데 속은 붉은 국민의힘이라는 의미를 지닌 속어로 흔히 비 이재명계 의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실제 지난 3월 이재명 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이 가까스로 부결되자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은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찾겠다며 ‘수박 색출'이라는 혐오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른바 ‘수박’의 이런 행동이 윤석열 정부에 유리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따라서 ‘수박’을 찾아 낙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되는 의원들의 명단이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 공유됐다.

훌리건은 승패에 상관없이 경기장에 난입해 상대 선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관중들을 뜻하는 말이다.  정치권에도 이런 훌리건이 존재하고, 이들은 정치훌리건이라 불린다. 이런 정치훌리건은 자신들의 뜻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폭력적 언행과 욕설,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실제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들의 메시지에는 상상하지 못할 수위의 폭력적 혐오 표현들이 가득했다. 

▲박지현 전 위원장과 박용진 의원이 받은 욕설 문자의 일부. 박 전 위원장은 1만개의 문자를, 박 의원은 수천개의 문자를 받았다.

자신을 민주당 강성 지지자라고 밝힌 한 정치 유튜버는 국회 앞에서 활동한다. 그는 국회 출입구에서 대기하며 정치적 반대자들이 지나가면 급습해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며, 상대를 위협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또다른 민주당 강성 지지 유튜버는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생중계 하며, 박 전 비대위원장의 주소를 공개하고 그의 집 앞에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의 '독려'

이재명 대표는 지지자를 상대로 댓글 작성을 독려하는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한 민주당 지지자가 트위터 상에서 “당원가입은 했고… 이제 뭘 하죠?”라고 질문하자, 이 대표가 “댓글 정화와 커뮤니티"라고 답했던 것이다. ‘댓글 정화’란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관련 기사에 우호적인 댓글을 다는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지자를 동원 대상으로 여기며, 댓글이나 다는 단순한 작업 인부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지지층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더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지지자들을 향한 ‘독려 행위'는 이 뿐만 아니었다. 지난 1월, 성남FC 후원 의혹 등으로 검찰 출석을 이틀 앞두고는 지지층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생방송을 순회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실시간 채팅창에 직접 “총구는 밖으로”, “같이 외쳐볼까요”, “함께 가요"라고 댓글을 쓰면서, 출석 현장에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실제 이 대표가 검찰에 출석한 당일 아침 성남지청 앞은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과 반대자들로 가득찼다.

“윤석열 정부 성공 위해 까불면 모두 제거” 

반대쪽, 즉 국민의힘 진영에서도 강성 지지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걸림돌'이라고 판단되는 정치인을 공격하는 행태가 마치 거울처럼 재현되고 있다. 

지난해 강신업 '건희 사랑' 대표는 성상납 의혹을 받고 있던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를 무고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그는 변호사로서 이 전 대표에게 성상납을 했다고 주장하는 재소자를 대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넉 달 뒤에는 유승민 의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가 뉴스타파에 직접 밝힌 이유는 이들이 “대통령 까대기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 물꼬를 텄다고요, 전부 다. 이준석도 내가 물꼬를 트고 그랬잖아. 유승민도 계속해서 윤석열 대통령 까대기를 했어요. 어쩔 수 없이 11월에 고발을 했던 거고. 전부 다 내가 제거한 거잖아요. 나는 어쨌든 그런 능력이 있어. 소위 까부는 놈들은 다 제거할 거야.
- 강신업, '건희 사랑' 전 대표 

정파 내 반대 세력의 제거에 정치 유튜버가 동원되는 양상도 비슷하다. 윤 대통령 부부와 10년 전부터 이웃 주민으로 지내왔다는 김영윤 씨는 팬클럽 '윤지국'(윤석열을 지키는 국민들)과 윤석열 정부의 국정을 지지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김씨는 주로 이준석 전 대표의 하버드 학력이 허위라는 주장을 하는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김 씨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유 역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다. 

“이준석이 당색은 국민의힘이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진짜 당색은 저는 상대 정당 당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윤석열의 성공한 정부를 위해서 (이준석이) 아웃되면 조금 더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 같고, 윤석열의 성공한 정부가 잘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의 종북 세력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 김영윤 소장, 유튜버 폴리티코 정치연구소
- 김영윤, 유튜버 폴리티코 정치연구소 소장

정치훌리건에 고개 숙인 정치인들

국민의힘 진영에는 정당 내부 질서를 쥐고 흔드는 정치훌리건도 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다. 그는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정치 팬덤의 수장이 아니라 목사로서 축적한 종교적 영향력으로 대중을 동원하며 자신이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며 스스로를 정치 팬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은 보수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국민의힘 당원가입 신청을 받았다. 그러자 후보자들 중 일부가 전광훈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전광훈 목사의 이름으로 가입된 당원들이 실제로 경선에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실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난 후에는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김재원 전 의원이 전광훈 목사를 찾아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전광훈 목사 개인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충성 맹세를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재원 전 의원 뿐만이 아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 역시 2019년 11월, 전광훈 목사를 향해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전광훈 : 당에서 나한테 뭐 해줄래요? 200석 만들어주면?
김재원 : 영웅 칭호를...
전광훈 : 영웅 칭호는 나는 필요 없고
김재원 : 제가 최고회의에 가서 보고를 하고 목사님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도록 하겠습니다.

-
2022년 3월 12일, 사랑제일교회

노무현과 노사모

정치 팬덤의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그 부작용은 분명하다. 

특히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너무 적대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뭔가 정치를 수행하거나 국정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근데 이게 굉장히 위험하게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알 수도 있어요. 이런 형태로 갔을 때는 굉장히 무력해질 수가 있다, 그러면 정치 불신을 비롯해서 대의기구로 전혀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정당이 더 많은 불신을 받게 될 거고 이것은 정당의 입지를 줄어들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사회 구성원들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거죠
- 조은혜/ <'팬덤정치'라는 낙인> 저자

전문가들이 꼽는 최초의 '팬덤 정치' 현상은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를 뒤흔들었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20년 전 노사모에도 과격한 강성 지지층이 있었다. 그러나 노사모의 강성 지지층을 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세는 지금의 정치인들과 달랐다.

노사모는 노무현을 위한 조직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만든 조직입니다. 저도 임기를 마치면 노사모가 될 것입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노사모 창립 8주년 기념식에 보낸 축사 중 (2007년 6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은 재직 중이던 2004년 한 노사모 회원이 집회 중에 분신을 시도하자 바로 다음 날 “노사모 회원 분신 등 과격행동은 절대로 재발돼선 안되는 것”이라며 “모두가 자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시대, 이제 우리 사회는 자신과 다른 생각과 의견에 대해 더 이상의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팬덤 정치와 이를 악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상대 진영에 대한 극단의 혐오를 넘어 토론과 숙의의 공간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팬덤 정치를 악용하는 정치인들의 자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뉴스타파 박종화 bell@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