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알아사드와 김정은의 닮은꼴

2023. 5. 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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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해외유학파라는 공통점
집권초 변화 기대 불렀지만
결코 뒤지지 않는 '악마성'
희망을 압도하는 '철의 논리'

이달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리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12년 만에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이 평화 시위를 유혈 진압하자 아랍연맹은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이 시리아의 연맹 복귀를 주도했고 회원국 절반 이상이 이에 찬성했다. 결정적 배경은 시리아발 마약 캡타곤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의 동생 마헤르가 전 세계 캡타곤 생산의 80%와 밀매를 총감독하며 정권의 돈줄을 관리한다. 특히 사우디는 캡타곤 중독자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기에 시리아 정권에 유인책을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시리아의 마약산업은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을 묻는 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제재하에서 세습 독재정권에 생명줄과 같다. 시리아 정권이 사우디와 아랍연맹의 희망처럼 복귀의 대가로 포기할 리 없는 돈벌이 수단이다.

2000년에 대통령이 된 바샤르는 원래 알아사드 가문의 세습 후계자가 아니었다. 아버지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1984년 자신을 겨냥한 동생의 쿠데타를 진압한 후 큰아들 바실을 후계자로 지정해 승계 작업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스포츠카를 몰고 여성 편력이 심하던 바실이 1994년 과속운전 사고로 죽었다. 바실이 급사하자 하페즈는 영국에서 안과 수련의 과정을 밟던 둘째 아들 바샤르를 불러들였다. 바샤르는 5남매 중 유일한 해외 유학파였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다마스쿠스 의대를 다니던 시절 피를 무서워해 안과 전공을 택했다. 필 콜린스의 팝 음악을 좋아하고 일본 녹차를 즐겨 마셨으며 형이 사귀다 찬 여성들과 데이트했다.

급거 귀국한 서른 살 바샤르는 군사 아카데미에 서둘러 입학해 후계자 수업을 밟았다. 6년 후 아버지가 죽자 바샤르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다당제 도입을 언급해 희망을 줬다. 의사 출신 대통령이 시리아를 치료해 줄 것이란 기대가 넘실댔다. 하지만 정권 엘리트는 속성 후계자 과정을 밟은 유약한 애송이에게 강하게 저항했다. 놀란 바샤르는 아버지가 다져놓은 엘리트 연합 통치 체제를 떠받들겠다고 맹세했다.

바샤르는 곧 영국에서 나고 자란 시리아계 영국인 아스마 아크라스와 결혼했다. '엠마'로 불리던 아스마는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에 다니며 하버드 경영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었다. 알아사드 가문이 소수 시아파 계열 알라위파이기에 세습 후계자의 부인은 다수 수니파 집안에서 골랐다. 사람들은 또 희망에 부풀었다. 아랍어가 서툰 '사막의 장미'가 '지옥에서 온 영부인'이 될 줄은 몰랐다. 아스마는 시댁 식구와의 권력 암투에서도 이겨 정권의 재정을 맡던 사촌을 가택 연금하고 남편의 후계자로 부상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2011년 시작된 내전에서 민간인을 화학무기로 340차례 넘게 공격했다. 드럼통에 폭약과 각종 쇠붙이를 넣어 대인 살상력을 극대화한 통폭탄을 민간인 밀집 지역에 무차별 투하했다. 알아사드 부부는 정권 엘리트의 자율권을 약속하고 군 장성은 정권 수호의 비장한 의지를 다졌다. 결국 50만명이 넘는 시리아인이 잔인하게 목숨을 잃었으나 세습 독재정권은 살아남았다. 영국에서 수련의 경험을 쌓은 독재자와 그의 영국인 아내는 시리아의 희망을 박살 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즈음 김정은이 북한의 3대 세습 후계자로 등극했고 그의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자유화 바람을 불러올 것이란 희망이 퍼졌다.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라며 판문점에서 그를 만날 때도 그랬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거나 기대하면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희망 사항이 확신으로 둔갑할 때 불행은 시작된다. 무엇보다 절대권력이 휘두르는 철의 논리는 모든 희망 사항을 처참하게 압도해버린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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