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담배유해성분 실종사건
어떤 식품이든 포장지나 용기에 자세한 성분 표시가 돼 있다. 콜라캔을 보면 설탕·캐러멜색소·카페인 등 원재료명은 물론 나트륨·당류 등 성분 정보가 빽빽하다. 라면 하나를 사도 밀·팜유·트랜스지방 등 다 읽기도 버거울 정도로 많은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건강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이처럼 구체적인 성분 정보를 제공하는 건 하나의 상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상식이 전혀 통용이 안 되는 제품이 있다. 바로 담배다. 담뱃갑을 보면 니코틴과 타르 단 2가지 성분 표기밖에 없다. 금연 유도를 위해 담뱃갑에 혐오스러운 흡연 피해 사진은 부착하면서도 정작 유해성분 표시는 소극적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담배 유해성분 공개를 권고하고 있고, 대다수 선진국들도 이를 잘 따르고 있는 것과도 배치된다.
국회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9대 국회 안철수 의원 때부터 20~21대 국회까지 여타 식품처럼 담배 성분도 투명하게 공개토록 하는 법안 발의가 잇따랐다. 여야 이견도 없고 정부도 반대하지 않으니 입법이 쉽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12년째 관련 법안이 자동폐기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지난 3월 국회 복지위는 니코틴과 타르 외에 포름알데히드·벤젠 등 다른 유해성분도 측정해 공개하는 '담배 유해성 관리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일주일 뒤 국회 기재위가 사실상 내용이 동일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재부와 복지부 중 어느 쪽이 컨트롤타워를 맡느냐만 다를 뿐이다. 여야 간 첨예한 쟁점도 아니고, 법안 핵심 내용에서 부처 간 이견도 없다.
그런데도 감독권 다툼 탓에 21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자동폐기될 개연성이 크다니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나 싶다. 5월 31일 오늘은 담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WHO가 지정한 전 세계 금연의 날이다. 담배 유해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이 당위적인 일조차 국회와 부처가 좌고우면하고 있다. 무책임한 직무유기다.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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