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교수만큼은 … 기업 기부금으로 제대로 뽑겠다

이호승 기자(jbravo@mk.co.kr) 2023. 5. 30. 17: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금교수제' 추진하는 김동원 고려대학교 총장
대담=이호승 사회부장

◆ 매경이 만난 사람 ◆

김동원 고려대 총장이 최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 총장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대학 전반이 위기에 처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인터뷰 내내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고려대가 갖는 위상을 고려했을 때 혹시 '엄살'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진지했고, 심각했다. 한국 대학이 '양과 질'의 모든 측면에서 위기를 맞았다는 이유에서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입학생이 줄어든 것이 '양'의 문제라면 대학이 현실과 괴리되면서 '질'적 문제까지 불거졌다고 김 총장은 지적했다. 그는 "대학교육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안으로 김 총장은 기업의 기부금으로 수요에 맞는 분야 교수를 채용하는 '기금교수제'를 본격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재정 문제를 극복하고 산업현장 맞춤형 인재를 양성해 당면한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터뷰는 이달 초 서울 성북구 고려대 캠퍼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학이 위기라고 말했다.

▷맞는다. 우선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1960년에 태어난 사람이 109만명인데 2021년에는 26만명, 2022년에는 24만명이다. 몇 년 내 이 수치가 10만명대로 떨어질 것 같은데 이는 한국 사회 전반은 물론이고 특히 대학에 상당히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최근 호주에서 열린 'University21' 대학 포럼을 다녀왔는데 글로벌 대학도 학령인구 감소가 큰 이슈더라. 모든 선진국이 겪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해법이 있나.

▷학령인구 감소는 크게 세 가지 해법이 있다. 외국인 유치, 비대면 강의, 평생교육이 대안이다. 일본 와세다대는 전교생의 30%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우기도 했다. 고려대 또한 교환학생까지 포함하면 80개국 이상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이 있다. 비대면 강의도 외국인을 위한 수업의 일환이다. 과거에 접근이 어려웠던 외국인을 위해 꼭 학점을 따기 위한 강의가 아니더라도 이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 다른 대학의 위기는 무엇인가.

▷현실과 동떨어진 대학교육이다. 학문이 현실과 가까우면 격이 낮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대학 졸업생을 바로 실무에 투입하기 힘든 답답함이 있다. 최근에는 현실과 대학의 간극이 더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기업 인사 담당자와 많이 만나는가.

▷자주 만난다. 기업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와 같은 첨단 기술을 원하는데 대학에서는 유체역학·고체역학과 같이 고전 학문만 배운다고 불만이 상당하더라. 대학을 대체하는 기관이 생기는 이유다. 최근에 부상하는 에듀테크가 일례다. 중세 대학이 지금처럼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만 가르치니 아카데미나 살롱 같은 대체 교육기관이 생겨난 역사도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학문이 지나치게 실용적 도구로 전락한다면 다시 순수 학문에 대한 열풍이 불 것이지만 지금은 좀 더 실용성을 강조해야 할 때라고 본다. 최근 일어나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두 번째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재정 문제도 클 것 같다.

▷대학 등록금이 영어유치원 수준도 안 된다. 대학 등록금이 1년에 800만원 드는 데 비해 영어유치원은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든다. 대학 등록금이 너무 낮은 건 사실인데, 최근 고물가로 학부모와 학생들 부담도 큰 게 현실이다. 등록금 인상은 필요하지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은 민간이 80% 돈을 내고 국가가 20% 돈을 낸다. 민간이 30%, 국가가 70% 대학 운영비를 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초·중·고교는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이 줄어들고 있는데 교육교부금은 남아돈다. 교육교부금 81조원 중 최근 고등교육에 1조5000억원을 투입할 수 있게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보다 적어도 10배는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대학에 대한 정부 교부금이 적은 이유는 초·중·고교는 의무교육에 가깝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하는데 대학은 선택적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재 국내 대학 진학률은 70~80%에 달한다. 정부 논리가 좀 맞지 않는다고 본다.

―대학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부도 중요한데.

▷기부액 목표를 과거보다 2배 높게 정해놨다. 조만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부가 고려대에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과거 국내 대학 기부 중 최대 규모는 이종환 전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사장이 서울대에 도서관을 신축하기 위해 기부한 600억원이나 지난해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노벨상 수상자를 꼭 배출해 달라"며 KAIST에 기부한 766억원 상당 부동산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한 기업과 논의 중인 기부 액수는 이와 비슷하거나 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현재 얘기가 오가는 중이라 자세히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두어 달 지나면 구체화될 것이다.

―기업과 공감대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맞는다. 방법이 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수를 뽑는 것이다. '기금교수제'라고, 기업 기부금으로 교수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100명 선까지 뽑을 계획이다. 예를 들어 기업 측에서 기부를 하며 AI·해운·방산과 같은 특수한 분야의 교수를 채용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지금의 학제는 100년 전에 얼개가 맞춰지지 않았나. 떠오르는 최첨단 산업과는 안 맞는 부분이 있다. 빅데이터, AI, 로봇 등의 분야를 전공한 학자가 많지 않고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모시려 해도 비용이 많이 드는 게 현실이다.

―기금교수제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AI, 반도체, 배터리 등 떠오르는 신산업 분야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기업 후원을 받고 교수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해당 기업명을 교수명 앞에 붙여 예우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과거 고려대 경영대도 SK에서 후원을 받아 기금교수제를 시행한 적이 있다. 다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100명이 넘는 교수를 기금교수제를 통해 채용하려는 것은 처음이다.

―고려대가 구상하는 새로운 사업이 있나.

▷2년 뒤 개교 120주년 기념사업으로 다문화가정 우수 학생 120명을 뽑는 제도를 만들려고 한다. 인구소멸 시기에 접어들면서 다문화나 이민을 존중하고 장려해 우수한 학생을 길러내려는 것이다. 4년간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예산이 40억원 정도 소요되는데 이미 특정 기업이 기부하는 것으로 약정돼 있다. 2026년부터 모집 과정에서 이를 전형화해 신입생을 선발할 것이다. '민족 고대'에서 '민족을 위한 고대'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김동원 총장

△1997년 고려대 경영대 경영학과 교수 △2007년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2014~2015년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2014~2016년 고려대 경영대 학장 △2015~2018년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회장 △2023년 고려대 제21대 총장

[이호승 사회부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