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1천억’ 향해 일단 합쳐?…지방대 20곳 ‘통폐합’ 나서

김민제 2023. 5. 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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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컬대학 추진 방안 확정 뒤 한달 반 촉박하게 달려왔는데요. 마감 하루 전까지도 기획서 검토하느라 정신없네요.”

“대학이 가진 혁신성을 ‘자유롭게’ 보여주라니까, 부담스럽고 어렵죠.”

정부가 비수도권 대학 30곳에 5년 동안 대학당 1천억원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30 사업’의 신청 마감을 하루 앞둔 30일. 사업에 도전하기로 한 지역의 각 대학 관계자들은 막바지 신청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되면 대학 입장에선 천문학적 수준인 ‘1천억원 규모’ 재정 지원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 이들은 대학 간 통폐합을 불사하며 사활을 건 모습이다. 하지만 대학가 한켠에서는 정부 의도에 맞춰 사업을 따내려고 ‘졸속 통폐합’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새어나온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글로컬대학 신청 하루 전인 이날 현재 최소 20곳 이상의 지역 대학이 사업 신청에 맞춰 대학 간 통폐합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경북 4년제 국립대인 안동대와 공립 전문대인 경북도립대는 통폐합에 합의하고, 이런 방안을 담은 혁신기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영남대와 영남이공대, 계명대와 계명문화대도 통폐합을 추진 중이다. 대구대와 대구가톨릭대, 경일대는 각 대학의 형태는 유지하되 교육과정과 산학협력 등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연합대학’을 결성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경남에서는 부산대와 부산교대가, 동서대와 부산디지털대, 경남정보대가 통폐합을 추진하고 글로컬대학 선정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충남대-한밭대, 충북대-한국교통대, 강원대-강릉원주대도 통폐합을 전제로 글로컬대학30 사업에 도전한다. 경상국립대와 통폐합설이 일었던 창원대는 단독으로 사업을 신청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마감을 앞두고 치열한 합종연횡이 이뤄지는 것은 글로컬대학 지정을 위해 통폐합 또는 구조조정이 그만큼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지역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는 ‘혁신성을 보여주라’는데 100% 정성평가다. 추상적으로만 적어낼 수는 없고, 변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대학간 통합을 포함한 혁신방안을 담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글로컬대학의 핵심은 ‘변화’인데 내부적인 혁신에 어려움이 있는 대학들이 이를 대체할 방안으로 ‘대학간 통합 모델’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부는 지난달 발표한 ‘글로컬대학30 추진방안 확정안’에서 ‘대학 간 통합’을 통한 캠퍼스 간 자원 공유, ‘유사학과 통합’을 혁신 사례로 제시하는 등 사실상 ‘구조조정’을 주문한 바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협력해 혁신 방안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광주 서구는 지난 17일 조선대와 글로컬대학 사업 추진을 위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다는 업무협약을 맺었고, 강원도는 글로컬대학 육성 사업을 포함한 ‘강원형 대학지원 4대 중점사업’ 등에 5년간 1조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처럼 글로컬대학 선정을 위해 통폐합이 급물살을 타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학내 구성원 설득과 정교한 구조조정 계획 등을 동반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주명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한신대 교수)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학 간 통폐합에는 구조조정이 뒤따르는 만큼 구성원들의 충분한 동의를 구하고 대학의 연구자산을 충분히 활용하는 방향으로 통폐합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일단 합치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유진상 전국국공립대학 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창원대 교수)은 “대학 간 통합은 대학의 존폐를 좌우하는 문제”라며 “긴 시간을 투입해 논의해야 한다. 아직 실체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설익은 정책에 맞춰 대학들이 통폐합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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