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탐구] 국민의 우리말 지킴이,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한겨레 2023. 5. 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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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연구하는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인터뷰
사진 바림

오늘날 국민들 곁에서 소중한 우리말을 지키는 국립국어원은 나라의 언어를 담는 그릇을 빚고, 우리말의 가치를 온 누리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한국어의 보존과 연구, 보급을 위해 힘쓰는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우리 민족의 고유한 언어이자 미래에도 지켜나갈 유산인 한국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자.

국민의 글벗이자 말벗이 되다

국립국어원은 국민의 바르고 편리한 언어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이다. 어문 규정을 비롯한 국어 생활의 표준을 현실에 맞게 제시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 국어 지식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국가적인 한국어 언어 자원을 구축한다. 국립국어원에서 사업을 보조하고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를 제외하면 언어 연구와 관련된 부서는 총 여섯 개의 과와 하나의 팀으로 구성된다. 공공언어과, 교육연수과, 어문연구과, 언어정보과, 한국어진흥과, 특수언어진흥과, 그리고 사전팀이다. 각 부서에서 맡은 업무에 따라 국어를 연구하며 정책으로 반영하는 사람이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다. 언어는 곧 한 사회 사람들이 소통하는 도구이므로 이를 연구하는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들은 국민들의 언어 능력을 증진하기 위한 소통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문·이과를 아우르는 폭넓은 경험이 중요해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연구직 공무원에 속한다. 그렇기에 국립국어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석사 학위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다. 국어국문학이나 언어학, 국어교육학, 특수언어 계열의 학과로 진학해 공부하면 좋다. 또한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경력경쟁채용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언어와 관련한 기관에서 경력을 쌓는다면 더 유리할 수 있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우리말 연구소나 대학 산하에 있는 사전편찬실 등이 그 예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언어를 분석하고, 말의 맥락을 파악하는 인문학적 감성뿐만 아니라 언어공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을 두루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 국립국어원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학예연구사의 별별 업무 살펴보기

사진 바림

국립국어원은 다변하는 언어 환경에 따라 시대의 흐름에 맞춰 여러 부서를 운영하며 나라말과 관련된 방대하고 광활한 일을 모두 다루고 있다. 국립국어원을 한 바퀴 돌아보며, 각 부서에서 학예연구사가 하는 업무를 함께 들여다보자.

어문연구과

합리적인 국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의 사용 실태를 잘 알아야 한다. 어문연구과에서는 이와 관련해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를 수행한다. 대표적으로 5년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가 있다. ‘자장면’과 ‘짜장면’이 모두 표준어로 인정된 것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을 조사하고 어문 규범을 검토해 현실에 맞는 정책을 고안한다. 또한 남북의 언어와 지역 방언을 조사해서 한민족의 언어를 함께 바라보는 방법을 고민한다.

언어정보과

우리말은 현재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TV를 비롯하여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매체 환경 에서 우리말이 다각적으로 쓰이고, 세대별·지역별로 말 표현이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언어의 사용 실태를 반영한 자료를 수집하고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언어정보과는 하나의 언어 자원으로서 한국어 말뭉치 자료를 만들어 국어 연구의 기반을 다진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바탕이 되는 한국어 자료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공공언어과

공공언어과는 국민 누구나 쉬운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게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또한 생소한 용어로 인해 어려움을 느끼는 국민들이 정보에 소외되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기도 한다. ‘뉴노멀’, ‘부스터 샷’, ‘언택트 서비스’ 등 새롭게 생겨나는 외래 용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새말 모임’을 운영하고, 어려운 전문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등 공공언어를 개선하고 있다.

교육연수과

교육연수과에서는 올바른 국어 지식을 교육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르신이나 청소년 대상의 국어 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국어문화학교 과정을 기획한다. 국어문화학교에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어문 규범과 공문서 작성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 국어에 관심 있는 교사에게 재교육과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능력 확대를 위해 국어 능력 진단 체계를 구축하고, 문해력 향상과 관련한 기초 연구를 수행한다.

특수언어진흥과

농인과 시각장애인의 언어권을 향상하고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힘쓰는 곳이 특수언어진흥과다. 여기에서는 수어와 점자 정책을 전담하며, 특수언어와 관련한 기틀을 마련하는 연구와 사업을 진행한다. <한국수어사전>을 운영하며 수어사전 편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한국수어 문법과 교육 교재를 개발한다. 또, 점자 정보 누리집 등 점자 관련 도구와 자료를 제작한다. 수어와 점자 관련 법규를 재·개정하며 정책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어진흥과

한류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한국어진흥과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기초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국내외 한국어 교육과정과 교재를 개발해 현지에서 활용하는 일을 대표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한국어교원 자격제도를 운영해 교사 양성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하는 한국어 교재를 관리해 우리말 교육 보급에 힘쓴다.

사전팀

어문연구과에 속한 사전팀은 어문 규정을 중심으로 국가에서 최초로 직접 편찬한 ‘표준국어대 사전’의 개편과 운영을 맡고 있다. 사전팀에서는 국민이 함께 참여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단어의 뜻을 게재하는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 ‘우리말샘’을 꾸려가고 있다. 신조어, 고어, 방언, 외래어 등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말을 우리말샘 사전에서는 찾을 수 있다.

■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가 말하는 직업 이야기

유희정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 학예연구사.사진 바림

“한 시대의 아름다운 우리말을 기록하고 기억합니다”

유희정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 학예연구사

사람과의 대화는 물론 글짓기와 작사·작곡, 코딩까지 가능한 인공지능이 등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 ‘챗GPT’의 이야기다. 인공지능이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이유는 ‘말뭉치’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어를 잘하는 일명 ‘K-챗GPT’를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어 말뭉치 자원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유희정 학예연구사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봤다.

국립국어원에서 만드는 ‘모두의 말뭉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요. 우선, 말뭉치가 정확히 어떤 뜻이죠?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습 자료가 필요해요. 더 많은 자료를 학습할수록 똑똑한 인공지능이 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컴퓨터가 사람의 언어를 학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어 자료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환해 구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자료들을 말뭉치라고 부릅니다. 도서, 신문 기사, 방송 대본, 블로그나 게시판의 글, 심지어 메신저의 대화까지도 전부 말뭉치의 재료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다양한 사람의 광범위한 글과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2019년부터 국가적인 공공재로서 대규모의 한국어 말뭉치를 확보하고, 누구나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모두의 말뭉치’를 통해 배포하고 있어요. 이것들은 언어 연구와 어문 정책 수립의 기초 자원이 되고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활용됩니다. 저는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에서 인공지능을 위한 학습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현재는 대화의 맥락을 추론하는 말뭉치를 연구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도 말뭉치로 수집된다니, 신기해요! 실제로 어떻게 말뭉치를 모으고 관리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먼저 ‘어떤 말뭉치를 구축해야 할까?’에 대해 연구 주제를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한 제안 보고서를 작성하고 학교, 기업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공동 연구를 수행해요. 이제 말뭉치를 어떤 기준에 따라서 수집하고 분류할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는데요. 예를 들면 날씨 관련 대화, 공부 관련 대화 등 주제별 대화를 수집할 수 있겠죠?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 연인 사이처럼 대화가 이루어지는 관계를 기준으로 자료를 분류할 수도 있을 거예요.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대화 맥락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말을 모으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고 나서 인구통계학적 분석을 통해 연령별, 성별, 지역별로 비율을 나누어 균형 있게 자료를 수집하도록 합니다. 이때 수집한 언어 자료를 말뭉치로 만들어 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에게 이용 허락을 받아야 해요. 특히 메신저 자료는 개인의 민감 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대화 참여자 모두와 저작권 계약을 맺습니다. 이렇게 저작권 이용 허락 동의까지 마친 언어 자료는 전산화 작업을 거치는데요, 특정 자료에 관한 모든 정보를 사람이 직접 수작업으로 입력해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식에 맞게 변환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산화한 자료에 오류가 없는지 꼼꼼히 검토하면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하나의 말뭉치 구축 사업이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는 꼬박 1년 정도가 걸려요.

언어학 용어인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며 ‘모두의 말뭉치’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한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잖아요. 혹시 이전에도 말과 글을 모으는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있었나요?

그렇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8년부터 10년 동안 ‘21세기 세종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말뭉치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약 2억 어절의 말뭉치를 구축해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앞서는 혁신적인 성과였어요. 여기에는 여러 외국어를 번역한 말뭉치뿐만 아니라 국어 역사 자료 말뭉치도 있어서 우리나라 언어 연구의 바탕이 되는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받았죠. ‘21세기 세종 계획’이 종료된 이후 현재 ‘모두의 말뭉치’ 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통해 변화하는 언어 사용의 실태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어에는 한 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 가치관이 전부 담겨 있잖아요. 지금 제가 수집하는 말뭉치들이 체계적으로 모이게 되면 국민들이 어떤 말을 사용하고, 단어의 의미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알 수 있겠죠? 이처럼 사회·언어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들이 하나씩 쌓여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언어를 연구하는 일이 이토록 중요할 줄은 몰랐어요. 우리 사회에서 이 직업이 필요한 이유가 또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가 만약 제주도에 여행을 가서 해녀 할머니를 만난다면 소통의 장벽을 느끼게 될 수도 있어요. 지역별로 존재하는 방언처럼 같은 나라에서도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저는 이런 언어들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들도 보다 더 풍부한 어휘를 사용할 수 있을 거고요. 그래서 아름다운 말을 후대에 남길 수 있도록 언어를 기록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요. 동시에 언어적인 소통의 벽을 낮춰가는 일이 바로 제가, 국립국어원이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편리한 언어생활을 옆에서 지원하는 친근한 도우미가 되는 거죠.(웃음)

그런데 왠지 국립국어원에서 일하면 평소에도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외래어를 쓰지 않고 순우리말만 써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있어요. 실제로 그런가요?(웃음)

글쎄요. 국립국어원은 국어생활을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선입견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곳에는 각자 다른 역할을 하는 여러 부서가 있답니다. 예를 들면, 대중이 쓰는 언어는 당연히 쉬워야 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공언어과에서는 “올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말은 쓰지 마세요!”라고 말해주는, 마치 훈장님 같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반면 제가 있는 언어정보과는 비교적 관대함이 있어요. 다양한 표현과 말을 모으는 일의 특성상 외래어나 순화어 또한 우리의 연구 대상이기 때문에 언어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편이죠.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와 억양을 듣고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맞히는 능력이 있답니다. 이것도 하나의 직업병일 수 있겠네요. ‘이 말씨는 왜 다를까?’라는 궁금증을 갖는 것이 언어 연구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언어에 대한 호기심을 지녀야겠군요.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세요.

‘우리말을 왜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친구들이 있을 것 같아요. 한국어가 모국어인 우리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국어를 배우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말을 연구하는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오히려 생소하게 느낄 수도 있겠죠. 제가 언어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책을 읽으며 모르는 단어를 찾고 그 뜻을 유추하면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에요. 또,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우리말을 소개할 때도 ‘나의 모국어라고 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부터 사람들이 쓰는 말에 관심을 갖고, ‘이 말은 왜 사용하고, 저 말은 왜 사용하지 말아야 할까?’와 같이 우리 생활 속에서 말의 쓰임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길 바라요. 크고 작은 호기심이 모여 국립국어원에서 학예연구사로 함께 일할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이은주 ‧ 사진 바림 ‧ 자료 제공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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