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 100인분, 생수, 도시락... ‘괌옥’을 따뜻하게 만든 교민들

구아모 기자 2023. 5. 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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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식료품 지원, 공항 차편 제공도
“도울 수 있을 때 돕는 게 사람의 情”
/독자 제공 (왼쪽) 수퍼 태풍 마와르의 여파로 호텔 객실 에어컨이 멈추자 한 한국인 관광객이 직접 렌트카를 몰고 마트를 찾아 한꺼번에 선풍기를 공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쪽 위) 지난 28일 괌 현지 가이드 업체에서 한인식당을 섭외해 불고기 등 한식 100인분가량을 무료로 대접했다. (오른쪽 아래) 30일 오전 괌에 사는 한 교민은 임신 23주차인 박하나(35)씨가 끼니를 거를까 걱정돼 직접 흰 쌀밥, 소세지 계란 부침과 어묵볶음을 담은 도시락을 가져다주었다.

‘수퍼 태풍 마와르’로 한국인 관광객들 3400여명의 발이 묶인지 1주일 가량 됐던 지난 28일.괌 현지에 있는 한식당 ‘세종’에서 불고기 100인분을 준비했으니 먹고 싶은 한국인들은 누구나 오라는 게시글을 ‘괌 자유 여행’ 카페에 올렸다. 괌 현지에 있는 쌀은 한국에 있는 쌀과 다른데, 관광객들에게 고국에서 먹는 쌀밥 맛을 내게 해주고 싶어 찰기가 없는 쌀을 여러 번 물에 불렸다고 한다.

1991년부터 괌에 정착해서 장사를 해왔다는 이 식당 관계자는 “누구나 어려울 때는 돕는 게 맞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왔기에, 모국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고 마음을 전해보았다”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사람의 정(情)인데, 다행히 다치신 분 없이 한국으로 무사히 가게 되어 다행이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교민 나디아(55)씨는 발이 묶인 관광객들을 8인승 승합차로 각 호텔에서 식당으로 픽업해 이동시켰다. 그는 “밥을 먹고 난 어린이들이 사탕하고 껌을 손에 꼭 쥐여준 채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니까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다.

‘수퍼 태풍 마와르’로 괌에 발이 묶였다가 전날부터 귀국한 관광객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극한의 상황에 처했지만 다른 관광객들과 현지 교민들이 나눠준 온정 덕분에 따뜻한 기억을 안고 돌아간다고 이야기했다. 관광객들은 자칫하면 악몽으로만 남을 뻔했던 여행이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나눠줬던 마음에 따뜻하고 감사한 기억들을 안고 돌아간다”고 이야기했다.

태풍 ‘마와르’의 영향으로 괌에 발이 묶여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입국하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폐쇄됐던 괌 현지 공항이 이날 정상화되면서 한국인 관광객 3400여 명이 속속 귀국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특히 재괌 대한체육회 교민들은 관광객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공항까지 이동하는 차편을 제공하거나, 현지 마트에서 생수 묶음 등을 단수된 호텔에 배달했다. 체육회 교민 이종원(56)씨는 ‘수퍼 태풍 마와르’로 일주일간 폐쇄됐던 괌 국제공항이 다시 열린 29일, 총 30팀을 8인승 승합차를 이용해 공항으로 데려다 줬다. 이씨는 “전 세계 어딜 가나 언제 어디서 내가 도움을 받게 될 지도 모르는데, 내가 지금 도울 수 있는 상황일 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게 전혀 힘들거나 아깝지 않다”며 “안전하게 귀국해 감사 인사를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고 했다. 이씨뿐만이 아니다. 재괌 교민들은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자발적으로 햇반이나 반찬 등 식료품을 제공하거나, 샤워할 수 있도록 화장실을 내어주는 것은 물론 노숙 위기에 처한 교민들에게 집 한편을 내주기도했다.

오는 31일 귀국을 앞둔 23주차 임산부 박하나(35)씨는 “현지 교민의 도움을 통해서 화장실을 빌려 샤워를 할 수 있었고, 돌아가는 길엔 19L짜리 큼지막한 물통에 물을 담아서 건네주기도 했다”며 “오늘은 은박지 도시락에 흰쌀밥과 소시지 계란 부침 어묵볶음등을 담아줬는데 출국 전에 물통 돌려드리러 가는 길에 감사 인사라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교민들뿐만이 아니다. 고립된 관광객들은 자발적으로 호텔별 오픈채팅방을 만들어서 남는 식량이나 생필품 등을 품앗이 했다. 관광객들은 라면,씨리얼, 비빔면 같은 식량들과, 해열제, 소화약, 위장약 같은 상비약은 물론 아기들을 위한 기저귀, 장난감 등을 자발적으로 나눴다.

지난 29일 괌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첫 항공편을 타고 무사히 돌아온 이들은 “자칫하면 악몽으로 남을 뻔했던 여행에서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간다”고 했다. 이들은 항공편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무사히 돌아온 게 믿기지 울먹거리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날 한국에 돌아온 구자민(42)씨는 “코로나 때문에 4년만에 아내와 딸과 떠난 해외여행이었는데, 한인마트를 찾아 헤매다 3km씩 걸어간 적도 있는데, 교민분들이 이런 물품, 저런 물품 부족하진 않은지 챙겨주고 돌아가는 길은 차로 태워주기까지 했다”며 “오픈채팅 등을 통해서 정보 주고 온기를 나눠줬던 이름도 모르는 모든 분께 감사 말씀 드리고 싶다”고 했다. 만삭의 아내와 같이 여행을 다녀온 유한결(34)씨는 “아기 기저귀마저도 나누어 쓰면서 서로 도우면서 버텼다”고 했다. 지난 20일부터 괌에 있었다는 소민정(41)씨는 “남편이 갑자기 열이 올랐는데, 호텔 시스템이 고장 나 에어컨 가동도 안되는 상황에서 같은 호텔에 숙박하는 여행객들이 렌터카로 마트에서 선풍기를 공수해와 열을 떨어 트릴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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