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손님들 다 떠나면 뭐 먹고 사나” 폐업 하루 앞둔 화정버스터미널

고양=김태호 기자 2023. 5. 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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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폐업하는 화정시외버스터미널
한때 年 240만명 이용하던 고양시민 교통 요충지
5km 거리에 또 다른 터미널 생겨
인구 감소·코로나 겹치며 이용객 급감
상인들 “상가는 계속 운영하는데…손님 다 떠나”

30일 낮 12시 경기 고양시 화정버스터미널. 몇분 전 강원 속초행 버스마저 떠나고 나자, 터미널에 입주한 한 상점 주인이 다시 무료한 표정으로 상점 안에 비치된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몇 시간씩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소일하는 건 한나절이 지나도록 손님 하나 찾지 않는 상황에서 상점 주인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시간 죽이기다. 한산한 터미널엔 텔레비전에서 나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한층 더 크고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한때 연간 240만명의 이용자로 붐비던 이 터미널은 지금은 손님들이 거의 찾지 않는 정류장으로 전락했다. 현재 하루 방문객은 30명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이용객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화정버스터미널은 결국 31일 폐업한다. 문 연 지 24년 만이다.

시외버스는 1980년대까지는 철도가 없는 수도권 외곽과 비(非)수도권 주민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지자체가 철도가 없는 자리에 수요 대비 과다한 터미널 건설에 나섰고, 여기에다 인구 감소, 철도망 확충,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마침내 폐업 위기에 몰렸다. 남겨진 터미널 내 상가 상인들은 벌써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며 걱정하고 있다.

30일 오후 12시 경기 고양시 화정버스터미널. 화정버스터미널은 31일을 마지막으로 폐업한다. /김태호 기자

30일 고양시와 여객터미널 업계 등에 따르면 화정버스터미널 운영업체인 우리기업은 3년 전쯤부터 경영상 적자를 이유로 터미널 폐업을 신청했다. 지난해 11월에도 우리기업은 경영난 등을 이유로 고양시에 폐업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고양시는 시민들 편의를 위해 터미널 폐업 시기를 늦춰달라고 운영업체와 조율해 최종적으로 이달 말 문을 닫게 됐다.

◇ 철도 없는 자리에 터미널 연달아 개관…경기도서 5년간 5개 폐업

화정버스터미널의 경영상 어려움은 수요 대비 과다한 지자체의 터미널 건설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고양시는 일산신도시 건설과 함께 1992년 군에서 시로 승격했다.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철도 건설은 늦어지자 시는 당시 일산터미널 1개뿐이었던 버스터미널을 2개 더 짓는 내용을 포함한 도시개발계획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99년 화정버스터미널, 2012년 고양종합터미널이 문을 열었다.

화정버스터미널과 고양종합터미널은 불과 5㎞ 거리에 있다. 고양종합터미널 개관과 함께 화정버스터미널의 장거리 시외버스 노선이 전면 이관됐다. 화정버스터미널 운행 노선은 현재 춘천, 강릉, 전주, 충주로 가는 4개뿐이다. 고양시 관계자는 “고양종합터미널이 개업하고 화정버스터미널 이용객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고양종합터미널이 노선도 더 많고 규모도 더 크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터미널 이용객을 크게 줄였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2019년 화정버스터미널 월평균 이용객은 1만425명이었지만 이듬해인 2020년엔 3069명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우리기업이 시에 손실을 시비(市費)로 보전해달라고 주장하면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터미널 매표수입금은 2019년 1억2300만원에서 2021년 3500만원으로 줄었다.

지방 교통망의 근간인 시외버스터미널의 폐업은 더 이상 비수도권만의 일이 아니다. 경기도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도내에서 운영하는 버스터미널은 20개 시군의 28곳이다. 2018년 6월과 비교하면 5곳이 사라지고 1곳이 새로 생겼다. 사람들이 도시 중심부로 몰리며 시외버스 이용자 수는 줄고 대도시를 잇는 철도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협회 관계자는 “2017년에서 2022년까지 6년 동안 터미널을 통한 이용객 수는 연평균 13%”라며 “같은 기간 매표수입금은 연평균 8.4%씩 떨어졌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학생 요금할인 등으로 발생하는 손실은 공적 부담금으로 보전하고 터미널 수입원 다변화를 위해 편익 업종을 일부 허용하게끔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30일 오후 12시 경기 고양시 화정버스터미널 내부. 12시 속초행 차가 떠나자 이용객이 없는 텅 빈 모습이다. /김태호 기자

◇ “터미널 폐업과 함께 손님도 떠나” 상인들 한숨…주민들도 아쉬움

터미널 폐업 소식에 건물에 입주한 상인들의 한숨도 짙어졌다. 30일 현재 터미널 건물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19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다. 버스터미널 폐업 여부에 상관없이 이곳 상가는 그대로 유지된다. 터미널 부지와 터미널 건물 대다수를 우리기업이 소유하고 있지만 용도 변경을 하려면 관련 기관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기업 관계자는 “앞으로 터미널 부지 및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10년 넘게 터미널에서 장사한 50대 상인 A씨는 “터미널이 없어지면 매출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A씨는 “이미 코로나19 전과 지금 비교하면 매출이 70~80%가량 떨어졌다”며 “나는 점포를 임대가 아닌 내가 소유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것도 임대를 내놓을까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40대 상인 B씨는 “터미널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자 인근 주민들이 상가도 없어지는 줄 알고 상가 이용이 줄었다”고 했다. B씨는 “예약 손님 중에서도 ‘상가가 없어지는 것이냐’고 전화로 묻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덧붙였다.

고양시에 시외로 가는 철도가 없어 시외버스를 이용하던 승객들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한 달에 한 번 강원 삼척시와 고양시를 오가며 딸을 만나는 정명화(67)씨는 “딸이 화정버스터미널 근처에 살다 보니 터미널이 없어지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다”고 밝혔다. 1년에 2~3차례 부모님을 보러 전북 전주시에서 고양시에 오는 배모(57)씨는 “20년 넘게 화정버스터미널을 이용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아쉬울 따름”이라면서 “앞으론 고양종합터미널을 이용해야 하니 불편함이 조금 생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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