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조선소 위한 ‘소통’…이주노동자도 서툰 한글로 “안전이 제일”
“갑자기 새벽에 비가 와 상당히 미끄럽습니다…작업하시기 전에 족장(비계) 상태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지난 26일 오전, 울산 동구에 있는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조선소. 하청기업인 ‘금영산업’이 현장위험성 평가 시연에 나섰다. 유인규 팀장이 팀원들을 향해 당부의 말을 전했다. 금영산업 직원 10여명은 ‘툭’하고 옆 사람의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제대로 착용을 했는지 점검한 뒤, 휴대폰 앱으로 그날의 업무지시를 확인했다.
“수직 사다리가 미끄러워 추락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스크로 인해 시야가 좁아져 부딪힘의 위험이 있습니다”
작업자들이 업무 시작 전 10여분간 그날의 작업 환경에 관한 유의점을 공유했다. ‘위험성평가’ 제도는 사업주가 스스로 노동자에게 부상이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찾아내 개선 방안을 자율적으로 세우고 실행하는 자율안전관리제도를 의미한다. 이들이 일하는 조선업 생산 현장은 △다양한 형태의 중량물 작업 △선박 건조가 진행될수록 늘어나는 밀폐공간 내 작업 △고소·화기 작업 △높은 하청·외국인 비율 등 각종 위험이 산재해 안전에 대한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선 폭발 사고가 나며 열린 툴박스 철제문에 하청업체 노동자가 부딪혀 사망했다. 지난해 1월엔 크레인 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2020년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자료를 보면, 1974년부터 그해 4월까지 조선업 현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466명으로, 매달 0.85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급기야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월 기존 안전경영실을 안전기획실로 바꾸고 안전 문제에 대한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다.
사내 하청 의존도가 높은 조선업에서 중요한 것은 원청기업과 하청업체 간 안전에 관한 소통이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조선업 산재 사고로 65명이 숨졌는데, 이 중 47명(72.3%)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고 21명(32.3%)이 3개월 미만 비숙련 노동자였다.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가 작업 중 위험성을 발견할 경우 ‘핫라인’ 등을 이용해 ‘안전작업 요구권(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금영산업처럼 현장 위험성평가를 통해 발견한 위험 사항 중 조치가 필요한 부분을 원청에 바로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물량팀으로 불리는 단기 하청업체의 비중이 작지 않아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는 여전하다고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짚는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최근 정규 등록 업체 외에 프로젝트성 단기업체가 엄청 늘어난 상황으로, 정규업체 외 단기업체들은 위험성평가 등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며 “건의를 하고 나서 바뀌면 좋겠지만 간단한 조치 외에는 대부분 바로 반영이 되지 않는다. 하청업체가 안전 관리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주노동자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며 안전 교육 및 관리 필요성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이날 현장 위험성평가에 참여한 금영산업 소속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팜당콩 역시 개인별 일일 작업서를 들여다보며 팀장의 안내에 따라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위험성평가에 참여했다. 팜당콩의 안전모에는 ‘한국어 소통 수준: 원활 / 주 사용언어: 베트남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팜당콩처럼 한국어가 ‘원활’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현대중공업에는 팜당콩처럼 27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 2400여명이 일한다. 지난해 9월 약 1200명 규모이던 이주노동자는 8개월 만에 2배로 늘었고, 올 연말에는 3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취업비자 정책을 개편하며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다. 5월 현재 현대중공업의 외국인 인력은 중국 597명, 베트남 484명, 우즈베키스탄 367명, 스리랑카 234명 등으로 중국이 가장 많다.
이날도 현대중공업 안전교육센터에서는 7개월차 이주노동자 안전교육이 진행됐다. 베트남과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10여명이 교육을 받았다. 한국인 강사의 말을 베트남어와 태국어로 통역하는 방식이다. 안전교육센터 관리자는 “작년까지는 통역이 없어서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진행했지만, 통역이 생기고 나서 교육에 대한 반응이 더 좋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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