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몸에 '커피 반점'? 이 희귀질환 의심…"무조건 무서워마세요"
3500명 중 한 명이 걸리는 비교적 흔한 희귀질환. 지금도 환우 커뮤니티에는 "9개월 아기에게 커피 반점이 생겼다"는 부모의 불안한 글이 올라온다. 온몸에 종양이 생겨 외모 변형을 유발할 수 있는 이 질환은 '신경섬유종'이다. 종양으로 외모가 심각하게 변형된 환자 사례가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면서 비교적 알려진 희귀질환이다.
"일부 방송에서 다뤄진 것처럼 증상이 아주 심한 경우도 존재하지만, 모든 환자가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 무조건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머니투데이와 만난 김수연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는 신경섬유종증을 이렇게 설명했다. 질환에 걸리고도 관리하면서 일상을 사는 환자가 있다면서 "질병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경섬유종증의 가장 대표적 증상은 몸에 발생하는 종양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총상신경섬유종증'을 동반했을 때다. 총상신경섬유종증은 신경섬유종증의 임상 양상 중 하나다. 얼굴, 목 등 겉으로 드러나는 부위에 5~7㎝ 이상의 종양이 생기면서 외모를 변형시킨다.
김 교수는 "전체 총상신경섬유종 환자의 20~30%가 이러한 증상을 겪는다"며 "특히 어린이 환자는 팔이나 다리에 종양이 크게 자라면 옷을 입는 것조차도 불편해지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심각한 외모 변형이 없더라도 신경섬유종증은 환자에 여러 불편을 유발한다. 종양이 관절, 근육, 뼈에 생기면 보행이 불편해진다. 아동기부터 종양이 계속 자란다면 다리 양쪽 발육 속도에서 차이가 생겨 골격 모양이 틀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기도 부위를 포함해 호흡기계 부위에 종양이 생기면 호흡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생 위치에 따라 종양이 환자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다.
일부 종양은 악성(암)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특히 총상신경섬유종 전체 환자의 2~5%는 종양이 악성으로 변한다"고 덧붙였다.
신경섬유종증의 가장 흔한 증상은 밀크 커피색 반점이다. 대부분 환자에서 발견될 정도로 흔하다. 부모가 신생아 자녀에게서 커피색 반점을 발견하면 신경섬유종증을 의심하는 이유이다. 최근에는 생후 6개월에서 첫돌 사이에 실시하는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질환을 발견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밀크 커피색 반점만으로는 진단이 불가하고 다른 기준을 추가로 충족해야 한다"며 "안과 검사, 정형외과 검사, 엑스레이(X-ray) 등 영상 검사와 유전자 검사를 종합해 진단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에 소개된 환자 사례는 '겉으로 보이는 종양'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이 종양으로 뒤덮였거나 척추가 굽어진 아동 환자가 대표적이다. 이에 부모가 자녀의 신경섬유종증을 매우 크게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모든 환자가 그런 고통을 겪는 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미디어에서 강조되는 모습이 사회적 편견을 유발하고, 이 때문에 환자가 겪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가 인터넷으로 질환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방송으로 보도된 일부 극적인 사례를 접하면서 본인도 앞으로 저렇게 되지 않을까 불안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환자 중 어떤 분은 겉으로 티가 나는데도 '점과 섬유종이 많을 뿐이지 건강에도 이상 없고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며 "어떤 사람은 증상이 아주 심하지 않을 수 있고, 무증상일 수도 있다. 이러한 환자는 적극적인 관리로 일상을 잘 유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신경섬유종증을 치료하는 신약도 국내에 도입됐다. 본래 신경섬유종증은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종양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조직과 섞이는 경우가 많아 완전히 절제하는 게 어려웠다. 완전히 없앨 수 없으니 수술 후 재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신경섬유종증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술부터 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만약 환자가 큰 불편을 호소하지 않는 이상 곧바로 수술을 실시하지는 않는다"며 "종양이 점점 커지더라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우선 지속적인 관찰을 한다"고 말했다.
증상이 심하고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에게는 '셀루메티닙'이란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 2021년 5월 국내에 허가된 약이다. 만 3세 이상 소아면서 수술이 불가능하고, 총상신경섬유종을 동반한 신경섬유종증 1형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런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약물 치료 옵션이 생겼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며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총상신경섬유종에서 수술이 어렵거나, 수술해도 해결되지 않을 환자 대상으로는 지금까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셀루메티닙은 아직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신경섬유종증 유형이 여러 가지인 데다가 증상도 다양해 급여 기준 설정이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건강보험 미적용으로 의료 현장에서는 약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셀루메티닙을 정식으로 처방한 병원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여 적용 이후에도 정말 필요한 환자에게 약 처방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김 교수는 "셀루메티닙은 총상신경섬유종으로 급여 기준이 명확하게 설정될 것"이라며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에게 처방된다면 오히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가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자나 가족도 담당 의사와 상의해 처방 대상이 아니라면 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걸 믿고 따라주었으면 한다. 정부와 전문가는 정말 필요한 환자로 급여 기준을 적정한 선에서 정리하고, 허가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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