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천지원수’ 이집트-이란 관계 회복 시동…당황하는 미국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환영”
대표적인 미국 우방국인 이집트가 반미 최전선에 서 있는 이란과 관계 회복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양국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축출된 이후 관계가 사실상 단절됐다. 하지만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 이란이 지난 3월 중국 중재로 화해한 이후 이집트와 이란 사이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사우디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 질서를 관리해 온 미국은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29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셰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이란을 방문한 하이삼 빈 타리크 알사이드 오만 술탄과 만나 이집트와의 관계 정상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최근 중동 평화 중재자를 자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하이삼 술탄은 지난 21일 이집트를 찾아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과 회담했다.
하이삼 술탄은 이날 하메네이에게 시시 대통령이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에 하메네이는 “이집트가 이란과 관계 회복 의지를 표했다는 오만 술탄 발언을 환영한다”며 “이와 관련해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화답했다. 다만 AFP통신은 “이집트 정부가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수니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집트와 시아파 이란은 중동의 대표적인 철천지원수로 꼽힌다. 팔레비 왕조가 이란을 지배할 때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마지막 샤(황제)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가 이집트에 정착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이집트가 아랍권 국가 가운데 최초로 이란의 앙숙인 이스라엘과 관계 복원까지 선언하면서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집트가 전격적으로 이란에 손을 내민 배경엔 사우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랍뉴스는 이집트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집트 경제 체제의 상당 부분은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국가에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큰손’ 사우디의 외교 정책을 이집트가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집트가 더는 미국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는 “이집트의 독립 외교 정책 신호탄”이라며 “이집트 주권 문제가 걸린 중대한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유출된 미국 정보기관 기밀문건에 이집트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로켓 4만발을 비밀리에 전달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는데, 이집트 정부는 이를 부인하면서도 “이집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양측과 동등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견해를 취해왔다”며 미국과 거리를 뒀다.
미국은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UPI통신은 “이집트와 이란의 이번 제안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테헤란(이란 수도)의 러시아 지원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뤄졌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단일대오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미들이스트모니터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계속 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이집트가 완전히 미국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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