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의 IT프리즘]디지털 신질서와 디지털 권리장전 논의의 고려사항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2023. 5. 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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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서울=뉴스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챗GPT의 등장과 함께 4차산업혁명은 이제 디지털화, 디지털 전환을 거쳐 디지털 심화(digital sophistication) 과정에 이르고 있다. 디지털이 인간을 돕고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인간과 공존할 가능성까지 나타나는 디지털 심화가 진행되고 있다. 챗GPT는 사람을 대신해 문서작업을 하고 자율주행차는 사람 대신 운전을 한다. 이처럼 인간과 디지털이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디지털 질서의 모색이 필요하고, 디지털이 국민의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디지털 권리라는 새로운 권리도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주요국은 인터넷·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권리 헌장,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의 핵심은 국가와 사회가 추구하는 기본 가치, 권리, 또는 책임·의무를 제시하고, 관련 제도를 수립할 때 모든 이해관계자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프레임워크를 확립하는 것이다.

EU는 '22.12월 디지털 권리와 원칙 선언문(European Declaration on Digital Rights and Principles for the Digital Decade)을 발표했는데, 동 선언문은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디지털 관련 권리를 통합하고 EU의 디지털 전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선언문은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디지털 혁신'이라는 공동 목표를 반영하고 있는데, 인간 중심의 디지털 전환((Putting people at the centre of the digital transformation), 연대와 포용(Solidarity and inclusion),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 디지털 공공 공간 참여(Participation in the digital public space), 안전, 보안 및 권한(Safety, security and empowerment),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여섯 가지 분야에서 총 24개의 선언(commitments)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도 ‘22.10월 AI 권리를 위한 청사진(The Blueprint for an AI Bill of Rights)을 발표했다. AI 시대에 미국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화된 시스템의 설계·활용 시 지켜야 할 기본 원칙 및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5대 원칙으로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시스템 제공, 알고리즘 차별에서 보호,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장, 공지 및 설명 제공, 대안으로써의 인간의 대체, 검토가 있다.

한국도 작년 9월 윤 대통령이 뉴욕 구상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디지털 질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디지털 기술은 자유·연대·인권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디지털 생태계는 모든 인류를 위해 존재하므로 디지털 접근성·편의성 제고를 위한 대내외 지원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에서는 디지털을 국민 보편적 권리로 선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디지털 활용을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서 규정하는 '디지털 권리장전' 수립하기로 했다. 디지털 10대 가치로 인간의 존엄성, 조화되는 자유, 주체 간 평등, 거래의 공정·정의, 안전한 기술 이용, 디지털 역량 교육, 공정한 노동 환경, 디지털 민주주의, 평화 관계 구축,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제시했다.

디지털 질서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규범을 의미한다, 디지털의 특성인 무한 복제가능성, 초국경성, 초연결성, 데이터의 집중성, 인간 대체 가능성 등이 가져오는 인터넷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보호, 디지털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 디지털 기술의 공정한 이용과 경쟁 환경 조성, 디지털 격차의 해소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규범을 의미한다. 한국이 디지털 신질서와 디지털 권리를 주창하면서 글로벌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한국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이루어냈고 디지털 대전환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최초의 국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몇 가지 유의할 점도 있다.

첫째, 사실 디지털 질서의 상당 부분은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생기는 부작용, 기존 질서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규범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기술 및 서비스와 기존 아날로그 규범과의 부정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부정합의 본질은 기존 규범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이해관계와의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에 대해 별도의 새로운 규범을 제정하는 방안, 기존 규범을 개정하여 디지털 기술을 도메인별로 수용하는 방안, 디지털 질서에 관한 기본 규범을 제정하고 도메인별로 하위 규범을 정비하는 방안이 있다. 또한 디지털 분야는 국경이 없는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디지털 질서는 국내적 이슈 외에도 글로벌 이슈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하며, 글로벌 디지털 질서는 초강대국에 의해 형성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유의하여야 한다.

둘째, 디지털 신질서는 안보, 경제, 기술 분야에서 파급되거나 이들의 기초가 되면서 미중이라는 초강대국 간 대결로 귀결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디지털 통상 규범 이슈이다. 디지털 통상이란 디지털 기술 또는 전자적 수단에 의한 상품·서비스·데이터 등의 교역 및 이와 관련된 경제주체 간 초국경적 활동 전반을 의미하는데, 전자상거래 원활화, 디지털 제품의 비차별 대우,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자유화, 컴퓨터 설비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공개요구 금지, 개인정보 보호나 온라인 소비자 보호 등에 대한 규범이 논의대상이다. 아직 통일된 국제규범은 없지만, 디지털 비즈니스 자유화를 주장하는 미국,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 수립 계획, 글로벌 플랫폼 기업 규제 경향의 EU, 독자적 디지털 시장 및 규제체계 유지를 주장하는 중국이 서로 다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디지털 통상 논의를 한국의 디지털 신질서의 내용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디지털 권리의 의미와 내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권리는 모든 국민이 디지털 정보, 기기에 대한 접근과 이용 권한을 확보하고, 디지털 기술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등으로부터 보호를 받음과 동시에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적극적 이용권을 보장받고, 디지털 역량을 갖추어 디지털 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장애인, 노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약 계층에 대한 디지털 복지 실현 등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가 되고 있다. 이에 디지털 정보, 기술, 서비스, 제품에 차별 없이 접근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디지털권”으로 정의하고 차후 헌법 개정안에도 이를 반영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신질서는 기술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 의해 주도될 가능성이 높다. 두 국가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그 영향력에 따른 새로운 디지털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합의된 국제규범이 있는 자유주의 질서가 유지되기보다는 기술력, 경제력, 국방력 등 힘에 의존하는 디지털 질서가 수립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 플랫폼, AI 산업 경쟁에서 중국의 국가주도 산업체제의 발전에 위기를 느낀 미국도 중국에 대한 기술통제 등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새로운 디지털 질서에 대해 한국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인앱결제방지법, 망이용대가법안 등에서는 국익 차원의 전략을 취했지만, 모빌리티, 법률 등 전문직 플랫폼, 원격 의료 등에 있어서는 국민적 이익을 고려한 디지털 신질서 창출에 실패했다. 안보, 경제, 기술은 물론 디지털 질서 형성에 있어서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되, 인권과 민주주의 등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까지 포함한 원칙을 정하고, 사안별로 적절한 전략과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haezung22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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