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싼 게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입력 2023. 5. 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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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공공 서비스 위해 적정한 투자보수 보장해야
합리적이고 투명한 요금 결정 시스템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정부가 올 2분기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8원 인상했다. 3월말 정했어야 했지만 45일을 끌었던 2분기 요금 조정이다. 그러나 44조원을 넘어선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한전 경영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2026년까지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올해만 kWh당 51.6원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올해의 인상 폭은 1분기에 13.1원을 올린 것을 포함해도 21.1원이다.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친 여당은 요금 인상으로 고통받을 민심을 내세웠다. 전(前) 정권의 전기요금 인상 기피와 무책임을 비판해 오던 여당도 막상 자기 문제가 되니 다른 방법이 없는 듯하다. 놀랄 일은 아니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고, 그 기반은 국민의 지지에 있다. 여론을 거스르는 정책을 쉽게 펼 수 있는 정당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지금 정치적 요금 결정을 비판하는 언론도 만약 큰 폭의 요금 조정이 있었다면 지나친 요금 인상으로 서민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는 결정을 미루는 것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는 여론에 민감하고 보수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비치는 건 지지 기반의 차이에서 비롯될 뿐이다.

너머서울, 서울민중행동, 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들이 4월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공공요금 인하, 노동탄압 중단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공공요금, 다른 선진국 80~90% 수준

전기요금을 포함해 일반적으로 공공요금이란 공익기업(public utility)이 공급하는 서비스의 가격을 의미한다. 반드시 서비스의 특징에 기초해 정의되는 개념은 아니다. 우리나라 실정법상 공공요금이란 사실상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공익사업의 전매가격과 사업요금을 말한다. 서비스의 독점성과 공익성이 커서 중앙정부 또는 지자체가 직접 가격을 결정하거나 인가하는 요금이다.

대개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정부로부터 인가 또는 승인 등의 결정을 받고, 소비자에게 공시한 후 실시하게 된다. 주무 부처의 장관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결정하거나 주무 부처 장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직접 또는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사업자의 요금을 인가하거나 승인하는 방식으로 결정한다. 형식적으로는 전기요금처럼 관련 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이라는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련 부처가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해 정한다.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과정도 '전기사업법'이라는 법률에 규정돼 있는 대로 한국전력이 조정안을 만들어 산업부에 신청하면 산업부 장관이 전기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최종 인가하게 된다.

정부가 사실상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공요금 결정 방식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물가 행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점이 있다. 공공요금은 거의 모든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연적이든 제도에 따른 결과든 경쟁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떤 형식으로든 정부의 감시와 규제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적정한 요금 책정과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가 충돌하면서 생긴다. 공공요금 현실화는 대부분 물가 관리라는 목표를 위해 미뤄진다. 공공요금 인상 문제를 오로지 경제적으로만 대응하며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 정부란 불가능하다.

원래 공공요금은 적정한 원가와 적정한 투자보수를 회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해져야 한다. 이른바 총괄원가(Gross Cost) 보상의 원칙이다. 총괄원가는 자본투자에 대한 적정보수를 포함하는 경제적 원가, 다시 말해 사업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과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적절한 이윤을 포함한다. 장기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적정한 투자보수를 보장해 줘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원칙은 지켜지기 어렵다. 가스요금이나 전기요금뿐만이 아니다. 철도와 수도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공공요금은 대체로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수도요금이나 철도요금의 원가보상률은 80%에서 90% 수준에 그친다.

국민 생활에 밀접한 공공요금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 맞다. 공기업의 비효율을 요금 인상으로 손쉽게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공공요금 규제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는 공평성과 효율성 외에 안정성도 있다. 공급자의 건전한 재무구조는 안정적인 서비스 공급에 필수적이다. 원가를 무시하고 무조건 싸게만 공급하는 것은 사업자의 재무구조 악화는 물론이고 결과적으로는 투자 부진을 초래해 장기적인 수급 불안을 가져온다. 당연히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라야 한다. 공기업의 부실은 결과적으로는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재정 부담은 모든 국민이 일정하게 이를 감당해야 하는 이른바 '강제승차(Forced rider)'를 의미한다. 수익자가 부담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전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 옳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원칙은 수익자가 부담하는 것이 맞고 취약계층은 별도의 재정 지원을 통해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나치게 시장 상황과 무관한 가격은 신호 기능까지 상실한다. 탄소중립이란 목표를 위해서도 무조건 싼 에너지가 정답은 아니다.

공기업 부실이 재정 부담으로 이어져

합리적이고 투명한 요금 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예측 가능한 결정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은 2분기 전기요금 인상 폭이 왜 하필 8원이 돼야 하는지 설명을 들을 수 없다. 위원회 제도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도 옳지 않다. 결정 과정의 법적 측면은 더욱 체계화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요금 산정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정부나 정치권의 자의적인 개입 영역이 커진다.

결정 과정을 정치로부터 최대한 독립시켜야 정부도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상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분리하는 방안을 국정과제로 제시했었다. 물론 공공요금 인상은 제한적이어야 하고, 결정 과정은 시민의 감시와 일정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설사 독립적인 전기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제도화된 요금 결정 기준이 있어 이를 독립적인 결정 과정에서 적용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합리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정부는 3분기 전기요금을 결정해야 한다. 보통 1년에 1차례 조정해온 전기요금을 분기별로 정하기로 한 것은 정부의 판단이었다. 단번에 전기요금을 올리면 지나치게 늘어날 가계 부담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3분기는 전기 사용량이 최대로 치솟는 시기다. 요금 인상이 쉽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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