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위험성평가 직접 보니…‘노동자 참여’ 핵심, 어떻게 넓힐까

조해람 기자 2023. 5. 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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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사내협력사 금영산업 직원들이 현장위험성평가를 시연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새벽에 비가 와서 상당히 미끄럽죠. 오늘 작업에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지적해주실 분 계십니까?”

지난 26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도색 작업 중인 선박 블록 앞에 도장 작업 전문 사내협력사 금영산업 노동자 11명과 원청 직원 1명이 동그랗게 둘러섰다. 도장 전처리 작업에 들어가기 전 안전점검회의(툴 박스 미팅)를 열어 ‘현장위험성평가’를 시연하기 위해서였다. 위험성평가란 사업주와 노동자가 직접 작업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는 절차다.

금영산업 노동자들은 약 8분 동안 위험성평가를 진행했다. 노동자들은 모바일 앱을 이용해 표준작업지시서를 함께 읽고 이날의 작업을 공유했다. 이어 ‘각자 파악한 위험요소를 말해달라’는 유인규 팀장의 주문에 노동자 3명이 손을 들었다.

박정한씨는 “수직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미끄러져 떨어질 위험이 크다”며 “3타점(한 손+양발 또는 양손+한발로 지지)을 이용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박용수씨는 “족장(발판) 작업 시 떨어질 위험이 있으니 고박(고정) 상태를 확인하라”고, 남승진씨는 “송기마스크 시야가 많이 협소해 블록 바닥의 론지(프레임)에 걸려 넘어질 수 있으니 신경 써서 작업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6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사내협력사 금영산업 직원들이 모바일 앱으로 표준작업지시서를 살펴보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노동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이 같은 위험성평가를 사업장 안전관리의 중심에 놓겠다고 밝혔다. 규제·감독 위주의 안전관리 대신 현장 위험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사업주와 함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해 개선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 원청은 위험성평가를 3단계로 나눠 시행하고 있다. 일상작업에 대해 반기마다 1번씩 진행되는 정기위험성평가, 비일상작업에 대해서나 업무절차가 변경됐을 때 실시되는 수시위험성평가, 매일 작업 전이나 중간에 열리는 안전점검회의에서 이뤄지는 현장위험성평가다. 정기·수사위험성평가는 관리감독자와 노동자가 함께 정성평가를 매긴다. 현장위험성평가는 노동자들이 정성적 평가를 진행한다.

현대중공업은 “위험성평가를 적극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이후 1분기 재해율이 전년 대비 32% 감소했다”고 했다.

지난 26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안전소망나무’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다만 조선업 생산 대부분을 담당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위험성평가 참여가 얼마나 자유롭게 보장될 수 있을지는 물음표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이 소유한 시설에서 일하지만 위험성평가는 사업장 개별 단위로 이뤄진다. 원청의 위험성평가에 하청노동자가 직접 참여해 시설 개선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구조다.

안전 부문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과소 대표돼 온 현실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노조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참여와 문제 제기를 보장해야 위험성평가의 취지가 살 수 있다고 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개선 포인트가 시설적 투자 대상이라면 원청이 개선주체가 되는 게 맞다”면서도 “협력사에도 보장되는 ‘안전작업요구권(작업중지권)’을 통해 개선 포인트를 신고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1년간 875건의 안전작업요구권이 행사돼 크고 작은 조치가 이어졌다.

이 관계자는 “50인 이상 사내협력사들은 안전관리자를 1명 이상 두도록 의무화했고, 안전관리자 선임 비용도 최대 2명에게 1인당 3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현장에서 기자단과 만나 “(원청 위험성평가에 대한)협력업체의 참여와 의사결정 관련 부분은 고민해야 할 지점인 것 같다”며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중소 하청업체에 대한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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