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최우선가치 '안전'…"중대재해 근절 끊임없이 노력"
1년간 '작업 중지권' 875건 행사…하청업체 근로자도 '위험성 평가' 참여
이정식 "현장 제일 잘 아는 노동자 참여 기반으로 안전한 일터 조성해야"
(울산=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오늘 근무할 때 어떤 위험 요소가 있을지 발표해주실 분?" (팀장)
"상부에서 작업할 때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반드시 안전벨트를 활용해 안전하게 작업하면 좋겠습니다." (팀원 A)
"좋은 말씀입니다. 올라가자마자 작업하기 전에 안전 상태를 필히 확인하셔야 합니다. 또 어떤 위험 요소가 있을까요?" (팀장)
"바닥을 보시면, 론지(선박 주판 보강재) 높이가 최소 80㎝입니다. 송기 마스크를 쓰면 시야가 좁아지잖아요? 이동할 때 걸려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팀원 B)
지난 26일 오전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HD현대중공업 야외 작업장. 건조 중인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앞에서 HD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 팀장과 팀원 약 10명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현장 위험성 평가에 한창이었다.
위험성 평가는 고용노동부가 작년 11월 발표한 중대산업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이다. 노사는 정부가 제시하는 규범·지침을 토대로 함께 위험 요인을 발굴·개선해야 한다.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는 기업의 예방 노력을 엄정히 따져 결과에 책임을 묻는다. 위험성 평가를 충실히 수행한 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노력 사항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고려된다.
HD현대중공업은 위험성 평가를 철저히 수행하는 모범 사업장으로 꼽힌다. 그 덕분에 임직원이 1만2천700여명(작년 말 기준)에 달하는 HD현대중공업에서는 최근 1년간 근로자 사망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노동부 출입기자단을 만난 HD현대중공업 한영석 부회장(대표이사)은 "'안전 최우선' 원칙을 기반으로 중대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며 "매 분기 안전 경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안전·생산 심의위원회를 수시로 개최해 '안전 최우선' 가치가 위협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아무리 이익이 나도 재해가 많이 나면 그건 아주 가치 없고 3류 국가의 4등, 5등 회사"라고 말할 정도로 안전을 강조했다고 한다.
작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돼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HD현대중공업은 현장 안전에 더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작년 3월 안전 정책을 총괄하는 안전기획실과 현장 안전을 담당하는 각 사업부 안전 조직을 통합해 안전통합경영실로 개편했다.
최근에는 앞으로 5년간 안전 목표·전략·추진사항을 담은 '비전 2027'을 마련했다.
조선업은 사내 하청업체(협력사) 의존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HD현대중공업의 위험성 평가는 크게 반기에 한 번 이뤄지는 '정기', 비일상적인 작업 전이나 변경 사유가 발생했을 때 이뤄지는 '수시', 작업 시작 전 매일 하는 '현장'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청업체 근로자들도 관리 감독자와 함께 이 같은 위험성 평가에 참여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것도 중공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HD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27개국 출신 2천400여명에 이른다. HD현대중공업은 이들의 안전관리 지원과 정착 지원, 고충 상담 등을 전담하는 외국인지원센터도 운영 중이다.
이날 HD현대중공업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는 베트남과 태국 출신 근로자 총 5명이 안전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국인 교관이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면 2명의 통역사가 각각 자국어로 근로자들에게 전달했다.
HD현대중공업에 갓 입사한 신규 외국인 근로자는 이틀 과정의 안전교육을 받는다. 입사 7개월 차에는 4시간 안전교육을 받고, 반기당 4시간의 특별안전교육도 받는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년간 발생한 산업재해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AI) 시스템도 개발했다. 이 AI는 사고 유형별 발생 확률을 매일 예측해 그 결과를 각 부서로 전달한다.
근로자들이 행사한 '안전 작업 요구권'(작업 중지권)은 지난 1년간 875건에 이른다.
이 요구권의 근거는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근로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보고해야 한다. 보고받은 관리 감독자 등은 안전·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다'고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다.
출입기자단과 함께 사업장을 둘러본 이정식 장관은 "중공업에는 모든 위험의 가능성이 총망라돼 있는데, HD현대중공업은 글로벌 대기업답게 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며 "현장을 제일 잘 아는 노동자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노동부는 전국의 다른 사업장들도 HD현대중공업처럼 위험성 평가를 철저히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도·점검할 계획이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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