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고향에서 추억하는 어머니

2023. 5. 3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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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은 자식들을 위해 어머니가 쏟은 노고와 희생,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다가 1973년부터는 ‘어버이날’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어머니 날’을 기념하는데, 대부분 5월이고, 날짜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미국처럼 두 번째 일요일인 경우가 많다.
 
‘어머니’와 관련하여 ‘스타바트 마테르’라는 제목이 붙은 합창음악 작품이 여러 개 있다. 라틴어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는 ‘어머니(Mater)’가 ‘(그곳에) 있었다(Stabat)’라는 뜻이다. 여기서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말한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이탈리아의 야코포네 데 토디가 쓴 중세의 라틴어 시이다. 이 시는 십자가 밑에서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 작곡가들이 이 제목의 합창음악을 작곡했다.

넬라호제베스에 세워진 드보르작 동상.

안토닌 드보르작의 작품 중에서 어머니와 관련된 음악으로 <스타바트 마테르>와 <어머니가 가르치신 노래>를 꼽을 수 있겠다.

그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매우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음악인 반면 <어머니가 가르치신 노래>는 매우 인간적이고 감동적이서 어머니 날에 어울리는 음악으로도 볼 수 있겠다. 

<어머니가 가르치신 노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가득 차 있는데 ‘늙으신 어머니가 나에게 노래를 가르칠 때 이상하게도 자주 눈물을 흘리셨지.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칠 때, 눈물이 내 뺨에 흘러 내리네’라는 간단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사는 아주 짧으면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데 옛날에 어머니가 가르쳤던 노래들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애틋한 향수와 어머니가 자식을 향한 지속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하며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선율은 체코의 전통적인 민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것은 세대와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이 노래는 문화적, 언어적 장벽에 상관없이 전 세계인에게 울림을 주는 사랑받는 음악이 되었다.
 
이 노래에서 보듯 드보르작처럼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곡들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대곡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스며들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드보르작 생가와 멀리 보이는 롭코비츠 궁.

드보르작이 태어난 곳은 프라하에서 북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진 넬라호제베스. 현재 넬라호제베스의 인구는 모두 1500명도 되지 않는 마을이다. 이 조용하고 평화스런 마을에서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것은 언덕 위에 세워진 품위 있는 성채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우아한 이 성채는 보헤미아의 유력 귀족가문인 롭코비츠 가문이 1623년에 구입한 이래로 롭코비츠 성이라고 불린다.
 
롭코비츠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드보르작의 생가는 아주 잘 보존되어 있고 생가 옆에 세워진 드보르작의 동상은 롭코비츠 성을 바라보고 있다. 드보르작은 1841년 9월 8일에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관과 정육점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민속악기 연주에 뛰어났기 때문에 어린 드보르작에게 풍부한 음악적 감성을 물려주었다. 

드보르작이 유아세례를 받은 성당.

드보르작의 어머니 안나 즈데뉴코바는  롭코비츠 성에서 일하던 집사의 딸이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지만 넬라호제베스에 있는 작은 성당의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어린 드보르작에게 체코의 전통 민요를 불러주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어린 드보르작에게 음악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드보르작이 살던 시대의 체코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공용어는 독일어였다. 그는 12세 때 가까운 소도시 즐로니쩨에서 기본적인 독일어와 음악교육을 받은 다음 16세가 되던 해에 프라하로 향했다. 

프라하에 있는 드보르작 묘소.

프라하에 자리를 잡은 그는 32세 때이던 1873년에 제자의 동생 안나 체르마코바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이름도 어머니처럼 ‘안나’였다.

그는 이 결혼에서 자식을 셋 얻었지만 5년도 되지 않은 기간 안에 어린 자식들은 차례로 모두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드보르작은 이런 불행한 일을 겪으면서 얻은 고통을 이겨내려 했다.

1877년 그는 온힘을 쏟아 규모가 큰 합창곡 <스타바트 마테르>를 작곡했다. 이 곡 후반부에 아이들의 합창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가장 심오한 비극이 희망과 합쳐지는 영광스럽고 거룩한 순간을 느끼게 한다. 그후 드보르작은 여러 명의 자식을 또 얻게 된다.
 
1880년, 39세의 드보르작은 <어머니가 가르치신 노래>를 작곡했다. 당시 그는 프라하에서 활동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 노래는 체코시인 아돌프 헤이두크가 독일어와 체코어로 쓴 ‘7개의 집시의 노래’에 붙인 곡으로 4번째 곡이다.

드보르작이 이 곡을 작곡한 지 2년 지난 1882년에 그의 어머니는 6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보르작도 어머니처럼 62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1904년 5월1일에 숨을 거둘 때까지 이 노래를 읊조리면서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어머니를 추억했으리라.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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