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주로 가는 길 달릴 선수가 필요하다

박근태 기자 2023. 5. 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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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태 사이언스조선부장

국내에선 스페이스X를 세운 일론 머스크나 블루오리진에 투자한 제프 베이조스 정도가 알려진 게 전부지만 최근 세계 우주산업에 역동적 힘을 불어넣고 있는 인물들은 의외로 많다. 에티엔 슈나이더 전 룩셈부르크 부총리도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잘 알려진 전 세계 우주산업의 새로운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경제부 장관을 겸임하던 그는 유럽의 강소국 룩셈부르크의 상업 우주 정책을 주도하며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창업가와 투자가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주는 데 앞장섰다.

슈나이더 부총리를 처음 본 건 2017년 미국에서 열린 ‘뉴 스페이스 콘퍼런스’라는 연례행사였다. 우주가 앞으로 큰 시장이 될 것으로 믿고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사업에 뛰어든 젊은 창업가와 엔젤 투자가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인상 깊었던 점은 좌파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출신의 이 40대 부총리가 공교롭게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나 유럽우주국(ESA)에서 온 관계자보다 각국 기업가들 사이에서 더 인기를 모았다는 점이다. 연단에 오른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룩셈부르크가 우주 자원 채굴에서 전 세계 허브가 되겠다”며 “자원 채굴과 위성을 중심으로 한 우주산업이 국가 미래를 책임질 혁신 경제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그 후로도 국제우주대회(IAC)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에서 열리는 다양한 우주산업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창업가들이 그에게 달려갔고, 젊은 부총리 역시 처음 본 젊은 창업가들이 쏟아내는 말을 경청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일본처럼 독자적인 발사체를 보유하지 않고, 전체 국가 산업 규모도 별로 크지도 않은 유럽의 작은 소국 관료에게 젊은 창업가들이 이처럼 매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얼마 뒤 찾을 수 있었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2019년 한국에서 열린 첫 국제 우주산업 행사에도 초청을 받은 일이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룩셈부르크가 인구 60만 명의 작은 소국이지만 우주에서만큼은 선진국 못지않은 넓은 영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룩셈부르크 우주산업의 특징을 조금만 알고 있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룩셈부르크는 세계 최대의 상업 인공위성 회사인 SES를 보유하고 있고 정부가 직접 우주 자원 광물 회사 스페이스리소스에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우주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학과 기업이 개발한 우주 기술이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일찌감치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세계 곳곳에서 유망기업을 발굴해 유럽의 우주개발에 참여하는 기회를 주는 관문 역할도 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우주의 상업화를 추구하려는 전략은 룩셈부르크 우주산업을 더욱 풍성하고 강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우주라는 새로운 영토에서 기회를 찾는 젊은 창업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주요 선진국들이 룩셈부르크를 지금도 우주산업에서 가장 활동적인 10대 국가에 넣고 있는 이유다.

룩셈부르크의 우주산업과 정책은 한국보다 몇 수 앞서 있다. 사실 우주산업 경쟁력은 단순히 우주발사체 기술을 보유했다고, 위성 제작기술을 가졌다고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보다 앞서 자국 영토에서 위성을 쏘아 올렸지만, 우주산업에서 존재감이 없는 이란과 북한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석하지만 최근 누리호 3차 발사에 성공한 한국도 우주산업에서는 10위권 이내에 들지는 못하고 있다. 기술 확보와 상업성은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위성과 발사체 제조 중심으로 우주산업을 보고 있는 점도 세계적 흐름과 맞지 않다. 미국의 기술분석 회사인 브라이스테크에 따르면 2021년 세계 우주산업에서 발사체와 위성 제작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과 위성 영상 분야 같은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나머지는 지상 장비와 유인우주개발과 국방 분야 서비스가 차지하는데 한국은 이 분야에서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은 누리호가 첫 실전 발사에 성공하면서 언제든 필요한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첫 발사는 실패했지만, 지난해 2차 발사 성공에 이어 실제 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른 3차 발사에 성공했으니 어느 정도 믿고 쏠 수 있는 신뢰를 확보한 셈이다. 게다가 1t 이상 위성을 언제든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7개국에 포함된 점은 매우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대수롭게 보지 않은 성취감에 도취해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누리호보다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발사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우주산업 지형은 급격히 바뀌고 있다. 더 많은 사람과 화물을 더 싸게 우주로 실어나르게 되면서 우주라는 시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주 인터넷 같은 통신과 위성영상 서비스 같은 전통적 서비스 외에도 우주 공장, 우주 재급유 같은, 과거라면 엄두도 못 냈을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아마존과 같은 IT기업과 DHL 같은 물류회사, 일본 스미모토 같은 보험회사들은 우주로 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기업 중심에, 발사체와 위성 제작에 집중된 ‘한국판 뉴 스페이스’는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척박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과 룩셈부르크 같은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들은 물론 록히드마틴이나 레이시언 같은 대기업들은 최근 젊은 창업가들과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뉴 스페이스를 대표하는 모험가적인 도전과 창업, 투자는 보기 어렵다. 젊은 창업가들과 엔지니어, 경영학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리더십도 부족하고 우주산업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사업 아이디어의 발굴도 잘 안 되고 있다. 한국 정치 지도자와 관료, 기성 산업계가 어쩌면 로켓과 위성 기술을 자립하고 대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정도로 뉴 스페이스를 완성했다고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최기혁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장(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직후 제주에서 열린 학회에서 “한국은 위성과 로켓 기술을 모두 보유하게 되면서 비로소 우주로 가는 길을 닦았다. 이제 어떤 차를 타고 달릴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주로 가는 길은 뚫렸으니 이제부터는 새 영토를 넓히러 달려갈 촉망받는 선수들을 발굴할 때이다.

[박근태 사이언스조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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