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를 걷다 구례 견두산] 지리산이 한눈에… 한없이 너그러운 능선길

강윤성 2023. 5. 3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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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두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조망. 발아래 산벚꽃과 산수유꽃이 물든 현천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산동면 산수유마을을 아늑하게 감싼 만복대와 고리봉 너머로 반야봉과 노고단이 솟아 있다.

해마다 사월이 오면 지리산과 어우러진 섬진강변의 산들이 눈에 선하다. 높은 산과 맑은 천이 빚은 봄의 길목에는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특히 매화꽃이 질 무렵이면 산수유꽃을 시작으로 벚꽃, 복사꽃, 진달래꽃 등이 서로 앞 다퉈 피고진다.

4월 1일 봄꽃맞이 산행을 위해 순천완주고속도로 오수IC를 빠져나와 17번국도를 탄다. 곧이어 섬진강을 따라 휘돌아 가는 17번국도를 벗어나 19번국도를 타고 남원을 거쳐 지리산 품에 안긴다. 만복대에서 견두산으로 내리뻗은 산줄기가 포근히 감싸 안은 구례 산동면이다. 수령 1,000년이 넘은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 앞에 선다.

"서울에 벚꽃이 절정이라 산수유꽃이 다 진줄 알았더니 아직도 한창이네요."

"올해는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더만, 늦게 핀 벚꽃이 오히려 일찍 떨어졌네요."

구례 산동면 계척마을의 산수유 시목. 무려 1,000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가져와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나무의 시조다.

수령 1,000년이 넘은 견두산 산수유 시목

견두산 자락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은 무려 1,000년 전 중국 산둥성山東省에서 가져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나무의 시조다. 달전마을의 할아버지나무와 더불어 할머니나무라고 불린다. 산수유 시목은 키가 7m에 이르고 둘레는 성인 남성 세 명이 감싸 안아야 할 정도로 굵다. 그 안정감 있는 자태에서 뻗어나간 울창한 가지마다 노란 산수유꽃이 피어 하늘을 뒤덮는다. 그 뒤편에는 견두산이 아늑하게 솟아 있다. 산동山洞이란 지명 역시 중국 산둥성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시목광장에서 밤재주차장에 올라 견두산 산행에 나선다. 밤재에 이르는 임도는 지리산둘레길 주천~산동 구간에 속한다. 남원시 주천면에서 밤재~산수유 시목지~계척마을~연관마을~현천마을~산동면사무소에 이르는 길이다. 대자연 지리산 노고단과 반야봉을 조망할 수 있고, 봄철이면 계척마을에서 현천마을에 이르는 산수유군락이 장관인 천년의 역사가 스며든 길이다.

"견두산 산행과 더불어 지리산둘레길도 둘러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네요."

지리산둘레길을 따라 밤재를 향하는 도중 햇살에 붉게 빛나는 복사꽃이 유난히 아름답다. 견두산은 봄이면 산수유꽃, 산벚꽃, 진달래꽃 등 온갖 꽃이 피어나는 산이다.

밤재 오르는 임도는 널찍하고 완만하다. 임도는 견두산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올랐다가 휘돌아 간다. 길이 거꾸로 가기에 느림의 미학을 실천할 수밖에 없다. 오름길에 하얗게 만발한 산벚꽃이 장관이다. 또한 햇살에 붉게 빛나는 화사한 복사꽃이 눈길을 잡아챈다. 덩달아 숲 안쪽에는 진달래가 호롱불을 지핀 듯 붉게 피어 있다. 산을 휘돌아 올라서니 서너 명의 여성들이 양지녘 풀밭에서 나물을 뜯고 있다.

"무슨 나물을 그리 열심히 뜯나요?"

"쑥과 쑥부쟁이요."

봄이 되니 꽃과 더불어 나물도 지천이다. 쑥부쟁이 꽃은 알아도 나물은 본 적이 없기에 유심히 살펴보니 파릇파릇한 어린 순이 쑥도 풀도 아닌 게 도드라지게 생겼다. 쑥을 캐러 간 불쟁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 핀 꽃이 쑥부쟁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지리산 쑥부쟁이의 야들야들한 잎 하나를 뜯어 코에 대니 향긋한 향이 피어오른다.

남원과 구례의 경계인 견두산 밤재. 지리산의 웅장한 산줄기가 첩첩이 펼쳐진다. 만복대와 고리봉 산줄기 너머로 반야봉과 노고단이 맨 끝에 솟구쳐 있다.

지리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산

밤재에 올라서니 벤치와 화장실을 갖춘 널찍한 주차장이 자리한다. 단순한 임도인 줄 알았더니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남원과 구례의 경계를 이루는 밤재는 지리산둘레길 22구간의 정상답게 지리산의 웅장하고 첩첩이 펼쳐진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구례군 산동면을 감싸 안은 만복대와 고리봉 산줄기 너머로 반야봉과 노고단이 솟구쳐 있다. 그 모습에 매혹된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우리 나중에 은퇴하면 지리산이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 이곳도 좋고요."

"지리산 조망은 너무 광대하고 평온해서 금세 지루해지지 않을까?"

"나이 들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평온하고 아늑한 곳이 좋지요."

"긴장감 없는 삶은 재미없을 것 같은데…."

행복은 마음의 평정심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산행처럼 저항과 긴장감을 극복하는 과정에 깃들어 있을까. 은퇴 후 삶은 아마 그 중간쯤에서 타협하게 될 것이다.

밤재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능선 끝에 서자 지리산 산하쉼터가 반겨준다. 언제 세워놨는지 나무기둥이 삭아서 곧 무너질 것만 같아 내부를 둘러보다 얼른 뛰쳐나온다. 기와지붕을 인 정자 너머로 지리산 산줄기가 하염없이 펼쳐진다.

견두산은 만복대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밤재(밤재터널)에서 개척봉, 견두산, 천마산을 지나 고산터널까지 북동쪽에서 남서쪽을 향해 일직선을 이룬다. 견두지맥이라 불리는 능선길은 완만하고 곧게 뻗어 지리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걷기에 좋다. 주능선 대부분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때때로 두릅군락지가 나타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내 남원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귀나무쉼터에 도착한다.

견두산 직전 전망대 너럭바위에 오르자 돌맞은 꿩바위가 눈길을 잡아챈다. 돌을 밀면 산 아래 현천마을까지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저기 성춘향과 이몽룡이 거닐었던 남원의 광한루가 보이네요."

"그런데 춘향과 몽룡은 어떻게 남원에서 만났을까요?"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는 남원이 고향이고, 남원부사 아들인 이몽룡이 아버지 따라 왔다가 춘향을 만났고, 나중에 암행어사가 돼서 다시 온 거죠. 원래 고향은 경북 봉화인데 생가가 거기에 있거든요. 예전에 봉화 계서당에 들렀다가 붙들려서 커피 한 잔 얻어먹은 적이 있네요."

"그럼 실제로 둘이 해피엔딩 했나요?"

"소설 속에서는 그렇지만 새드엔딩일 가능성이 크겠죠."

햇살을 머금은 울창한 편백나무숲이 피로를 풀어준다. 견두산은 꽃과 조망, 그리고 치유의 산이 아닐 수 없다.

이몽룡(본명 성이성)은 13세 때 남원부사로 부임한 부친(성안의)을 따라 남원에서 17세가 되던 해까지 살았다. 그때 성춘향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다. 이후 이몽룡이 급제해 경상도와 충청도에 이어 세 번째로 호남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을 다시 찾은 것은 45세 때다. 그때서야 변학도로부터 춘향을 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양반과 기생 집안의 사랑 이야기는 소설로 쓰이면서 미화됐을 터다.

견두산의 완만한 능선길은 체력적인 부담이 없어 산행이 편안하다. 쉬엄쉬엄 조망을 즐기면서 걷다 보니 기이하고 멋들어진 나무들이 눈앞에 연이어 나타난다.

"여기 손가락처럼 뻗은 소나무에 견두지맥이란 푯말이 붙어 있네요."

"견두지맥소나무라 부르죠. 견두산에서 본 제일 멋진 소나무가 아닐까 싶어요."

맑은 시냇물과 초록의 풀밭, 그리고 노란 산수유꽃이 만발한 현천마을 너머로 지리산이 보인다. 지리산 고리봉, 만복대, 견두산이 감싼 산동면은 어느 마을이나 산수유가 지천이다.

"그럼 한 나무에서 두 가닥으로 뻗어 오른 이 굴참나무는 뭐라고 불러야 하죠?"

"형제굴참나무가 맞겠죠? 연리지는 반대로 다른 뿌리를 가진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서 한 몸이 되는 거니까요."

호두산, 범머리산이라 부르던 견두산

주능선이 다소 가팔라지다가 살포시 봉우리를 이루듯 솟아오른다. 위치상으로 견두산 정상과 일치하는 곳이라 살펴보니 측량 기준점이 되는 삼각점이 있다. 775.1봉이다. 산 아래 마을에서 바라보는 산의 형세와는 다르겠지만 정상부의 모습은 다소 높은 능선에 불과하다. 조망도 트이지 않아 견두산이란 이름과는 맞지 않다. 실망하고 길을 재촉한다. 인근에는 계척봉이란 푯말이 나무에 붙어 있다. 계척마을 서쪽에 자리한 뒷산을 뜻한다.

완만하던 산세가 본격적으로 가팔라진다. 머리 위로 암봉과 암릉이 곧추서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니 연분홍 진달래가 산등을 활활 태울 듯 피어 있다. 진달래는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두견새가 밤을 꼬박 새워 울며 피를 토해 물들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암릉을 올라 암봉 정상에 서니 사방팔방으로 조망이 거침없다. 견두산 최고의 전망대다. 멀리 지리산 줄기가 펼쳐지고 남원과 구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견두산 이름에 걸맞은 봉우리가 아닐까 싶네요."

견두산犬頭山은 원래 호두산虎頭山, 범머리산이라고 불렸다. 이름이 바뀐 연유는 견두산의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다. 조선시대 영조 때 수백 마리의 들개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호랑이 모습의 산을 보고 짖어대고, 사람을 해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조선시대 전라관찰사인 이서구가 산의 이름을 견두산으로 개명했고, 그 뒤로 개들이 짖지 않았다고 전한다.

지리산이 항시 굽어보는 산수유마을

암릉을 내려서다 전망 좋고 햇살 좋은 너른 암반에서 한참을 쉰다. 지리산 고리봉과 만복대, 견두산이 감싼 산동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자락 어느 곳이나 산수유가 군락을 이룬 우리나라 제일의 산수유마을이다. 발아래 산벚꽃과 산수유꽃으로 치장한 현천마을도 곱디곱다.

견두산 정상으로 향한다. 암릉을 내려서는 길 너머로 정상이 솟아 있다. 견두산 정상의 공식적인 위치는 계척마을 서쪽에 자리한 삼각점(계척봉)이 있는 곳이지만 주봉은 현천마을 서쪽(뒤쪽) 봉우리다. 높이 또한 GPS로 측정해 보니 804m에 이르며 조망도 뛰어나다. 삼각점이 있는 계척봉보다 무려 29m나 더 높다. 남원시와 구례군에서도 높이는 다르지만 각각 정상석을 세워 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 정상에 무덤이 있네요. 명당인가 봐요."

견두산은 지리산 조망명산답게 산정이나 능선 어디에서든 지리산 산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마치 주인 잃은 한 마리의 개가 지리산을 오매불망 바라보는 형상이다.

견두산 정상에서 현천마을까지는 내리 내리막길이다.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따르다 현천삼거리에서 서쪽으로 내려선다. 시퍼런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 계곡에 닿는다. 의외로 수량이 풍부한 골짜기다. 수려한 계곡에는 너른 암반 위로 맑은 계류가 옥구슬처럼 흐른다. 성적골이 절골과 만나는 곳엔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다. 그 주변엔 힐링의 대명사인 편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맑은 시냇물과 초록의 풀밭, 그리고 노란 산수유꽃이 만발한 현천마을에 내려선다. 고개를 드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지리산이 멀리서 굽어보고 있다.

산행길잡이

견두산은 전북 남원시 수지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를 이룬다. 정상부에 솟은 암봉과 암릉을 중심으로 주능선이 북동쪽 밤재터널에서 남서쪽 고산터널까지 완만하게 굽이지며 곧게 뻗어 나간다.

견두산 정상의 공식적인 위치는 계척마을 서쪽에 자리한 삼각점(계척봉)이며 높이는 775.1m이다. 하지만 이 봉우리는 형세가 능선이나 다름없고 조망이 그다지 트이지 않는다.

실제 주봉은 현천마을 서쪽 봉우리다. 조망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높이도 GPS 측정 상 804m에 이른다. 구례군과 남원시에서도 높이는 제각각이지만 각각 정상석을 세워 놨다.

견두산은 지리산 조망명산답게 산정이나 능선 어디에서든 고리봉(1,309m), 만복대(1,433m), 반야봉(1,740m), 노고단(1,507m), 문바우등(1,196m) 등의 지리산 산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정상 부근 암벽에는 고려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입상(높이 약 3.2m)이 새겨져 있다. 산행은 밤재주차장에서 시작해 현천마을로 하산하는 게 편하다.

차량 회수를 위해 현천마을에서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지를 거쳐 밤재까지 지리산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1시간 30분쯤(5km) 걸린다.

교통·맛집(지역번호 061)

자가용 이용 시 서울-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오수 IC-17번, 19번 국도-밤재주차장/현천마을

산수유마을인 현천마을에서 산동마을 가는 길과 산동마을의 지리산온천관광단지 주변에 맛집이 많다. 우리동네시골밥상(얼큰순두부, 781-8272), 덕인관(죽순추어탕, 781-7881), 산동화덕구이(호박찌개, 0507-1352-1733), 청기와뜰(전복갈비탕, 781-6060), 종가집(두루치기, 782-7272) 등.

등산지도 - 월간산 5월호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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