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리더십』 키신저 “리더는 냉철한 현실인식·전략적 판단으로 변화 주도” [김용출의 한권의책]
프랑스 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에서 개인과 그 개인이 일으킨 사건은 광대한 바다에서 피할 수 없는 조류에 따라 일어난 ‘수면의 풍파’이자 ‘거품 산꼭대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사회 구조와 체계가 개인이나 리더에 본질적이고 압도적인 규정력을 가진다는 취지였다.
이들 리더 6인의 세계 전략 핵심과 주요 성취를 살펴보면, 먼저 콘라트 아데나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집권 하에 두 차례 투옥됐지만, 1949년부터 무려 14년간 서독 총리로 재직하면서 패전국 독일을 이끌고 대서양 동맹에 정박시키는 한편, 기독교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확신을 반영한 도덕 기반을 재건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 이른바 ‘겸손의 전략’을 택했다. 즉, 나치의 범죄에 대해 독일인이 과거를 인정하고 직시해야 미래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독일 부흥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자기 연민의 민족주의 대신 하나의 유럽에서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기갑부대를 지휘했던 샤를 드골은 이른바 ‘의지의 전략’으로서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 재건에 앞장섰다. 1944년에는 조국 프랑스 해방에 앞장섰고, 1958년에는 내전을 막고 알제리을 떼어내는 한편 개헌을 이뤄냄으로써 프랑스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틈바구니 속에서 강대국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사임했음에도, 세력균형을 평화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평형의 전략’을 구사하며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벗어나도록 했고, 중국과 대화를 시작했으며, 중동의 변화를 이끌 평화정착 절차를 시작했다.
키신저는 특히 이들 리더들이 모두 상류층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데나워의 아버지는 군부사관이었다가 나중에 사무원으로 일했고, 드골의 아버지는 교사였다. 닉슨은 서던 캘리포니아 중하층 가정에서 자랐고, 대처는 식료품상 딸이었다. 사다트는 사무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심지어 이집트 사관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낼 때 신원보증인을 찾느라 고생했다. 중국계 싱가포르는 부모를 둔 리콴유는 장학금에 의존해 학업을 이어가는 처지였다.
하지만 여섯 리더를 배출하는데 도움이 됐던 기반이나 환경이 현재 붕괴에 직면했거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키신저는 우려했다.
먼저, 이들이 이른 나이에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게 해준 인본주의적 능력주의의 토대가 된 중등교육과 대학이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중등교육과 대학이 시민 형성의 본연의 임무에서 실패하고 진영주의 및 파벌주의와 경쟁적 시민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와 관련, 유벌 레빈은 현대의 엘리트층이 “자기 힘으로 권력을 일궜다고 믿으며 그 권력이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권한인 듯 가지려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인쇄 문화가 영상 및 시각문화로 전환하고, 인터넷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한 것도 리더 부재를 촉진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영상과 인터넷 문화가 진실과 인본주의가 아닌 진영과 파벌로 분열시키면서 진정한 리더가 탄생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리콴유는 “이 과정에서 또다른 처칠, 또다른 루스벨트, 또다른 드골이 탄생할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사회가 평화로운 시간이라는 축복 속에서 천천히 규범의 부패에 빠진다면 국민은 ‘공동의 자기기만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라 판단되는 자 또는 공공선보다는 특별한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큰 사람들이 내세우는 자’를 따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일깨우는 ‘역경의 시대’가 찾아오면 그 충격으로 ‘자기기만이 드러나고, 필연적으로 국민은 평온한 시기에는 거의 잊혀 있던 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된다.’”(540쪽)
참고로, 키신저는 세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대체로 전략적 대화의 실패 또는 부적절한 실행의 부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즉,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와 유럽의 안보 경계선이 모스크바로부터 48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고, 반면 안보경계선이 우크라이나 서쪽에 확립된다면 러시아군은 부다페스트와 바르샤바의 도발 범위에 주둔할 수 있다고 분석한 뒤, 전략적 대화와 외교적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향후 관측이다.
“결국 미국, 중국, 러시아의 삼각관계가 재개될 것이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한계를 드러내는 한편 자국의 행위에 대한 폭넓은 반발과 광범위하고 강도 높은 제재에 부딪혀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앞으로도 최후의 날 시나리오를 위해서 핵무기와 사이버 무기를 보유할 것이다.”(537쪽)
책은 전후 지역 및 국제 질서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아데나워나 드골, 닉슨, 대처에 더해서 사다트와 리콴유까지 포함하는 넓고 균형 잡힌 시각이나, 이들 리더들의 세계 전략과 리더십의 요체를 추출해내는 키신저의 통찰력이 잘 담겨 있다. 세계로 나가려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원제는 Leadership: Six Studies in World Strategy.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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