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리더십』 키신저 “리더는 냉철한 현실인식·전략적 판단으로 변화 주도”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3. 5. 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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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에서 개인과 그 개인이 일으킨 사건은 광대한 바다에서 피할 수 없는 조류에 따라 일어난 ‘수면의 풍파’이자 ‘거품 산꼭대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사회 구조와 체계가 개인이나 리더에 본질적이고 압도적인 규정력을 가진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1970년대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며 미국 외교정책을 이끌었던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상의 구조와 체계가 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탁월한 리더의 경우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극복하고 오히려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중요성은 이들이 자신이 물려받은 상황을 뛰어넘고 사회를 가능성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다는 데 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키신저는 그러면서 책 『헨리 키신저 리더십』(서종민 옮김, 민음사)에서 전후 격동의 시기에 자신이 살았던 사회와 국제 질서 형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리더 여섯 명의 세계 전략과 특징, 공통점과 시사점을 분석한다. 분석 대상은 전후 독일 총리를 지낸 콘라트 아데나워,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이들 리더 6인의 세계 전략 핵심과 주요 성취를 살펴보면, 먼저 콘라트 아데나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집권 하에 두 차례 투옥됐지만, 1949년부터 무려 14년간 서독 총리로 재직하면서 패전국 독일을 이끌고 대서양 동맹에 정박시키는 한편, 기독교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확신을 반영한 도덕 기반을 재건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 이른바 ‘겸손의 전략’을 택했다. 즉, 나치의 범죄에 대해 독일인이 과거를 인정하고 직시해야 미래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독일 부흥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자기 연민의 민족주의 대신 하나의 유럽에서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기갑부대를 지휘했던 샤를 드골은 이른바 ‘의지의 전략’으로서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 재건에 앞장섰다. 1944년에는 조국 프랑스 해방에 앞장섰고, 1958년에는 내전을 막고 알제리을 떼어내는 한편 개헌을 이뤄냄으로써 프랑스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틈바구니 속에서 강대국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사임했음에도, 세력균형을 평화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평형의 전략’을 구사하며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벗어나도록 했고, 중국과 대화를 시작했으며, 중동의 변화를 이끌 평화정착 절차를 시작했다.

안와르 사다트는 1970년 가말 나세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대통령에 오른 뒤 군사전력과 외교를 기민하게 결합해 이집트의 국가적 자신감을 회복하는 한편 이념을 뛰어넘는 ‘초월의 전략’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평화 공존의 여정을 시작했다. 리콴유는 ‘우월의 전략’을 통해서 다민족 항구도시 싱가포르를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통일성을 갖춘 번영된 도시국가로 변모시켰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1979년 집권한 뒤 과감한 경제개혁을 펼치는 한편 ‘신념의 전략’을 바탕으로 대담함과 신중함을 절묘하게 조화시켜서 포클랜드전쟁과 홍콩반환 등에서 영국의 승리와 쇄신을 이끌어냈다.
“전쟁에서 진 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데나워는 전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독일에 지운 여러 조건과 규제에 대해서 불평하고 볼멘소리를 내는 동료 의원들에게 이같이 단호하게 묻곤 했다. 패전국으로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선 독일이 처한 냉엄한 현실을 먼저 직시하라는 지적이다. 이들 여섯 인물의 능력주의 리더십 공통점과 교훈은 이들이 무엇보다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자주 촉구했다고, 키신저는 분석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이들은 아울러 상황을 꿰뚫어 보는 전략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있었다. 닉슨과 사다트는 전임자로부터 고통스러운 전쟁을 물려받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창조적 외교관계를 시작하려 했다. 아데나워와 대처는 미국과 강력한 동맹 형성이 조국에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통찰한 반면, 드골과 리콴유는 상황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변화가 가능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연계를 선택했다.
이들은 모두 결단이 필요한 시기엔 대담하게 행동할 줄 알았다. 심지어 대외적인 상황이 불리해 보일 때조차도 결단력 있게 행동했다. 대처는 지독한 경제위기와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아르헨티나로부터 포클랜드제도를 되찾기 위해 해군 기동부대를 파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닉슨은 베트남에서 철수가 끝나기도 전에 중국과 전격적으로 수교를 추진했다.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
또한 국민의 이익을 생각하면서도 정치권이나 대중과 불화를 초래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드골은 1960년 알제리에서 폭동이 일어났지만 일부 반발에도 직접 전면에 나서서 위기를 극복했고, 대처의 경우 많은 표를 잃으면서도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아데나워 역시 정치적 반대자들의 혹평과 비판 속에서도 주권 회복을 위해 연합국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사다트는 심지어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위협 속에서도 이스라엘과 평화를 모색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이들은 고독의 중요성을 알았고, 심지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닥친 고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대처는 종종 이른 아침에 홀로 문서를 검토하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했다. 드골은 사저를 적절히 활용했고, 닉슨 역시 백악관을 떠나서 행정동 건물이나 캠프데이비드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사다트는 젊은 시절 옥중에서, 아데나워 역시 히틀러의 나치에 쫓겨서 망명 도중 수도원에서 사색하는 습관을 길렀다.

키신저는 특히 이들 리더들이 모두 상류층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데나워의 아버지는 군부사관이었다가 나중에 사무원으로 일했고, 드골의 아버지는 교사였다. 닉슨은 서던 캘리포니아 중하층 가정에서 자랐고, 대처는 식료품상 딸이었다. 사다트는 사무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심지어 이집트 사관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낼 때 신원보증인을 찾느라 고생했다. 중국계 싱가포르는 부모를 둔 리콴유는 장학금에 의존해 학업을 이어가는 처지였다.

하지만 이들은 변변찮은 배경 때문에 오히려 기존 정치권의 인습적 범주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키신저는 분석한다. 즉, 사다트와 드골은 국가 위기 속에서 권력을 얻게 되는 장교였고, 닉슨과 아데나워는 정치인이었지만 정치적 황야에서 몇 년을 보내야 했다. 대처와 리콴유는 정통적인 방식으로 지도자에 올랐지만, 그럼에도 처음에는 다수파가 아니었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그러면서 아데나워는 도덕성과 끈기, 드골은 결의와 역사적 통찰력, 닉슨은 복합적인 국제 정세에 관한 이해와 결단력, 사다트는 평화를 이룩하려는 정신적 고양, 리콴유는 새로운 다민족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상상력, 대처는 원칙을 따르는 리더십과 고집을 잘 보여준다고 이들의 자질을 평가했다.

하지만 여섯 리더를 배출하는데 도움이 됐던 기반이나 환경이 현재 붕괴에 직면했거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키신저는 우려했다.

먼저, 이들이 이른 나이에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게 해준 인본주의적 능력주의의 토대가 된 중등교육과 대학이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중등교육과 대학이 시민 형성의 본연의 임무에서 실패하고 진영주의 및 파벌주의와 경쟁적 시민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와 관련, 유벌 레빈은 현대의 엘리트층이 “자기 힘으로 권력을 일궜다고 믿으며 그 권력이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권한인 듯 가지려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인쇄 문화가 영상 및 시각문화로 전환하고, 인터넷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한 것도 리더 부재를 촉진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영상과 인터넷 문화가 진실과 인본주의가 아닌 진영과 파벌로 분열시키면서 진정한 리더가 탄생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리콴유는 “이 과정에서 또다른 처칠, 또다른 루스벨트, 또다른 드골이 탄생할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진정한 리더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재능과 인격을 모두 갖춘 인본주의적 능력주의를 되살려야 하고, 이를 위한 인본주의 교육과 문화가 다시 강화돼야 한다고 키신저는 강조했다. 이를 통해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갈등을 넘어 공존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확립하자고 제안했다.
위기의 글로벌 리더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키신저는 리더십은 오랜 평온이 부르는 사회적 권태 때문에 쇠퇴하지만, 결국 역경의 시대가 오면 다시 진정한 리더십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인용으로 답을 대신한다.

“사회가 평화로운 시간이라는 축복 속에서 천천히 규범의 부패에 빠진다면 국민은 ‘공동의 자기기만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라 판단되는 자 또는 공공선보다는 특별한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큰 사람들이 내세우는 자’를 따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일깨우는 ‘역경의 시대’가 찾아오면 그 충격으로 ‘자기기만이 드러나고, 필연적으로 국민은 평온한 시기에는 거의 잊혀 있던 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된다.’”(540쪽)

참고로, 키신저는 세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대체로 전략적 대화의 실패 또는 부적절한 실행의 부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즉,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와 유럽의 안보 경계선이 모스크바로부터 48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고, 반면 안보경계선이 우크라이나 서쪽에 확립된다면 러시아군은 부다페스트와 바르샤바의 도발 범위에 주둔할 수 있다고 분석한 뒤, 전략적 대화와 외교적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향후 관측이다.

“결국 미국, 중국, 러시아의 삼각관계가 재개될 것이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한계를 드러내는 한편 자국의 행위에 대한 폭넓은 반발과 광범위하고 강도 높은 제재에 부딪혀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앞으로도 최후의 날 시나리오를 위해서 핵무기와 사이버 무기를 보유할 것이다.”(537쪽)

책은 전후 지역 및 국제 질서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아데나워나 드골, 닉슨, 대처에 더해서 사다트와 리콴유까지 포함하는 넓고 균형 잡힌 시각이나, 이들 리더들의 세계 전략과 리더십의 요체를 추출해내는 키신저의 통찰력이 잘 담겨 있다. 세계로 나가려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원제는 Leadership: Six Studies in World Strategy.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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